육아로 직장포기했던 여성들 “재취업전쟁 눈물겹네”

주부도 일하고 싶다!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관련 업무를 하던 박진숙(가명․40)씨는 87년 결혼을 하고도 직장을 계속 다녔다. 아이를 2명 낳았지만, 부모님이 돌봐주시는 덕에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6년 전 부모님이 더 이상 육아를 부담스러워하자,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3년 정도 아이를 키우던 박씨는 “외환위기로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주부’ 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 같아서” 38살의 나이에 다시 재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여자’인데다 ‘나이’가 걸려 번번히 좌절했다. 박씨는 정부에서 하루 6시간씩 실시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정을 1년 동안 밟았다. 전문 자격증을 땄지만, 마찬가지였다. 교육기관에서 연결시켜주는 곳은 학원강사 아니면 아파트 관리인이었다. 겨우 들어간 직장도 월급 등 근무 조건이 열악한 데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바람에 자꾸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3년간의 구직 노력 끝에 전공 분야 취업은 포기했다”는 박씨는 최근 한 다단계 판매업체로 발길을 돌렸다.

자녀출산과 동시에 사회단체활동을 포기했던 김현정(가명․40)씨는 첫째 아이가 중학교를 진학하기를 기다렸다가 지난해 다시 사회단체에 들어갔다. 하지만, 7개월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김씨는 “일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미혼 때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쳤”지만, “아이들이 늘 옆에 있던 ‘엄마’의 공백을 크게 느끼는 데다 육아와 가사에 협조적일 거라고 예상했던 남편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른바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해 ‘증권 브로커’로 잘 나가던 이아무개(31)씨는 98년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둔 뒤 지난해초부터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전공을 살리는 것은 포기했다. “여전히 육아 부담이 있는 상태에서 매일매일 급박하게 돌아가는 증권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나이 때문에 받아주지도 않는다”며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부업거리를 찾고 있다.

이혼으로 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 주부 장아무개(44)씨는 “최근 이혼율 증가로 인해 재취업에 뛰어든 주변 친구들이 많은데, 주부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생활설계사나 다단계 판매 또는 가게 점원밖에 없다”며 “아이들 교육비는 커녕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의 생애별 취업 형태는 엠(M)자형을 보인다.(도표 참고) 20대 초반 여성의 취업률은 급격히 치솟았다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는 25~34살 시기에는 취업률이 떨어진다. 초기 양육기를 지낸 30대 후반부터 취업률이 점점 증가하기 시작해 40대 후반에는 20대 초반의 여성취업률에 거의 도달한 뒤 다시 떨어진다. 엠자형 취업곡선의 핵심에는 육아․보육 문제가 있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 김순복 정책실장은 “대부분의 여성이 육아 부담 때문에 일자리를 그만두고 또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육아 문제로 버티기가 어렵다”며 “아이를 저렴한 비용에 믿고 맡길 곳이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김영옥 연구위원은 “여성의 취업연속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보육서비스의 다양화와 확충, 현행 1년의 육아휴직기간의 연장 및 신축성 제고, 경력단절과 숙련마모를 방지하기 위한 단축근무제도 도입 등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개발원이 마련한 토론회 ‘여성의 생애와 취업’에서 동아대 박경숙 교수(사회학)는 “엠자형 취업형태는 여성의 가족역할과 노동역할의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가족과 노동시장 안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 관계를 양성 평등적인 원리로 재편할 것”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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