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위기와 촛불시위, 무엇을 내걸고 싸울 것인가?
남북미 평화협정으로 한반도 비핵지대화 + 이라크 전쟁반대로 전세계 반전평화 연대
미군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을 추모하고 ‘부시 미국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소파 전면 개정’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수십만 군중의 참여 속에 지난해 말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한나라당마저 소파개정 서명운동에 나서고 이회창 후보가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촉구하고 나설 정도로, 두 여중생 추모시위는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에 정치군사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상황이 한층 복잡하게 발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민족의 생존권이 걸린 북핵 위기를 선차적으로 해결한 후에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소파 개정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며, 추모 촛불 시위 자제를 요청했다. 1월 1일 새벽에는 경찰이 여중생 범대위의 농성천막을 강제 해산했다.
촛불시위의 방향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두 개의 촛불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복잡한 상황 앞에서 어떻게 투쟁의 방향을 설정해 나갈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북핵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내걸고 싸워야 할 것인가? 함께 짚어보자.
한반도에 휘몰아치는 핵전쟁 위기
지금의 북핵 위기가 발생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10월 캘리 미국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여 제기한 핵개발 의혹에 대해 북한이 사실상 시인한 사건이다.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협정을 위반했다며 중유 제공을 중단시켰고, 북한은 제네바 협정을 성실히 이행해 오지 않은 미국이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제네바 협정에 근거한 핵사찰 프로그램 중단 및 사찰요원 추방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아직까지는 관련 당사국들이 북핵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가 엄청난 재앙에 휩싸일 수도 있는 핵전쟁 위기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분명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지난 90년대 초반 발생한 북핵 위기 당시에도 제네바 협정 체결로 평화적인 결말을 보긴 했지만, 도중에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폭격 계획이 실행 일보 직전까지 나아갔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낮은 가능성이기는 하지만 언제 핵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뒤덮을지 모르는 상황이 다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핵 위기가 발생한 배경은?
그런데 북핵 위기가 다시 발생한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로 볼 때 필연적인 것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부시 정권의 등장 이후 노골화된 미국의 군사제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은 끝없는 침체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세계자본주의, 특히 그 정점에 있는 미국자본주의의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해 전쟁과 전쟁위기를 인위적으로 확대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축적된 군수물자를 전쟁으로 대량 소비함으로써 새롭게 활기를 띠게 될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성장(이윤확대)의 동력을 얻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라크 전쟁 추진, 한반도 북핵 위기 조성 등은 모두 한 묶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이라크 전쟁의 경우 석유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 결합되어 있는 반면에, 한반도 북핵 위기 조성은 군산복합체에 최소 1천억불 이상의 엄청난 재원을 끌어다 준다는 이른바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을 위한 명분 확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핵 위기의 또다른 당사자인 북한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북한 또한 체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민족의 공멸을 불러올 수도 있는 핵개발을 협상카드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으로 정치군사적 고립이 심각해진 지난 90년대 초반 이후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 추진을 카드로 하여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확약받으려는 협상 전술을 지속해 왔다.
북한은 지난 9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서 한·미·일이 제공하기로 약속된 경수로 발전소 건설이 늦춰지면서 에너지난을 실질적으로 해소하지 못했다. 또한 제네바 협정에서 누락되어 있는 북한의 체제 보장을 명시적으로 확보하려는 것도 당연한 요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 위기에서 보다 본질적인 지점은 정치군사적 고립이라기보다는 탈북자를 양산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위기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정치군사적 위기를 고조시키는 벼랑끝 협상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약속받는다고 하여도 북한의 체제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일관되게 반핵평화 전략을 펼쳐 한반도를 비핵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갈 때, 사회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내부적인 정치·사회·경제 개혁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정권과 부시정권이 갈등하는 이유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방법을 둘러싸고 김대중(노무현)정권과 미국의 부시정권 사이에 일정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부시정권은 이른바 ‘맞춤형 봉쇄전략’을 검토하는 등 강력한 경제봉쇄 등으로 북한을 압박하며 긴장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정권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미국의 북한체제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타협을 조기에 성사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중재안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만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북한의 핵개발 포기가 선행되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정권이 다소나마 미국의 부시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대 정권이 미국에 대해 굴욕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어떻게든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보려는 부시정권의 의도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반대 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공멸을 의미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남한 자본의 경제적 이해관계도 중요하게 한몫을 하고 있다.
거대 시장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 육로로 연결할 수 있다면 남한 자본은 경제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을 경유하는 철도가 이것을 보장해 준다.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북한에 대한 자본 투자는 남한 자본에게 저임금을 통해 많은 이익을 줄 것이다. 따라서 남한 자본은 북한 정부와의 협력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최근 김대중(노무현)정권의 태도는 이러한 남한 자본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남한 정부 및 자본의 태도는 주일·주한미군을 통해 동북아시아에 대한 정치군사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특히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에 도전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미국에 대한 정치군사적 종속 상태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로 거듭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북핵 문제에 관련해서는 다소나마 다른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지만, “소파 개정을 요구함으로써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대중들의 투쟁은 대선 승리로 활용가치가 없어지자 곧바로 탄압하고 나선 것이다.
노동자는 무엇을 내걸고 싸울 것인가? ― 민족자주성 회복을 넘어 반전평화투쟁으로!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는 5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를 거부하고 자주권을 회복하려는 남한 민중의 투쟁이 대중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상징하는 소중한 사건이다.
그러나 민족자주성 회복이라는 점만이 주요하게 제기된다면 사태가 발전할수록 투쟁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촛불시위의 방향도 상당한 혼란을 빚고 있다.
지금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에 맞서 민족자주성을 회복하려는 투쟁은, 한반도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미국에 맞서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투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배가 지속되는 것은 단지 여중생 사망에 대한 무죄 평결처럼 민족의 자존심을 짓뭉개는 사건이 지속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의 먹구름이 수시로 한반도를 뒤덮게 된다는 더욱 심각한 본질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만들어 이윤확대의 위기를 돌파하려 하는 미국의 군사제국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해 내기 위해 전 세계의 반전평화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하여야 할 것이다.
전쟁위기의 근원에 자본의 무한정한 이윤확대 욕구가 놓여 있다면, 전쟁에 반대하여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세력은 바로 노동자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자들이 반전평화투쟁에 적극 참여할 때다.
남·북·미 3자 평화협정 및 불가침조약 체결로 한반도를 비핵평화지대로 만들 것을 요구하는 투쟁, 나아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전 세계 반전평화운동에 연대하는 투쟁에 바로 우리 노동자들이 앞장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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