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단지 총알과 폭격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특별인터뷰]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비폭력평화연대 한상진 운영위원

미국의 이라크 경제봉쇄로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가 매달 4천5백∼6천 명 가까이 죽어가고 있다. 이 미친 짓을 끝내야하지 않겠는가? 경제제재를 끝내자. 전쟁을 끝내자. 어느 누구도 이라크 어린이의 살 권리를 짓밟을 수는 없다. 경제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어린이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도 아니다.
- 2000년 5월, 세계 평화단체 '긴급행동(Action Alert)'이 전 세계에 보낸 편지 중에서


91년의 걸프전이 남긴 것은 폭격에 의한 죽음만이 아니다. 의약품과 생필품 부족으로 매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기아와 난민 속에 절망의 땅이 된 이라크. 그곳에 다시 어둠이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 올 2월중에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초읽기에 들어간 이라크 전에 대한 국제적인 반전운동도 만만치 않다. 9·11사태로 가족을 잃은 미국 여성 4명이 지난 8일(수) 바그다드에서 평화 촉구·전쟁 반대를 위한 성명을 발표했다. 반전단체와 시민 2만 여명은 11일(토) LA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국제의료 자선단체인 '국경 없는 의사회(MSF)'는 이라크 전쟁 발발 즉시, 1백 명의 의사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갈리 전 UN사무총장과 나지브 말레이시아 국방장관은 이라크 전쟁이 전 세계 태러 위협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부시의 외교정책을 비난했다.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참전의사를 밝힌 영국에서도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이 전체 국민의 절반을 넘어섰다.
국제적인 반전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그 중 '비폭력 평화연대(이하 평화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상진 운영위원을 만나보았다.

다시는 악몽을 꾸고 싶지 않다
"비폭력 평화연대는 작년 9월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국제적으로 'Peace Force'라는 단체가 있는데, 제가 있는 평화연대는 이 단체의 한국지부라 할 수 있죠."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비폭력 평화연대는 '모든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 평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90년대부터다. 게다가 단체의 차원으로 움직인 것은 몇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이제 막 초창기를 벗어난 평화운동을 꾸려 가는 한상진 씨. 그가 이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전두환 정권기의 군복무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전에는 군 사격장에 민간인이 들어오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사격 표적이 사람 모양으로 생겨서 표적으로 착각하고 발포했다가 애꿎은 목숨을 죽이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상사에게 들었다는 이 이야기는 한상진 씨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 군복무 중에 보았던 모든 일상이 살상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총검술은 사람을 찔러 죽이기 위한 훈련이고, 작전 교육은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훈련입니다. 군부대에 있는 종교단체 역시 사람 죽이는 훈련에서 받는 양심의 가책을 희석시키는 일을 한다고 봅니다."
군복무 시절의 충격 이후 그는 2, 3년 전까지 군대에 다시 끌려가는 악몽을 꾸었고 그런 아픔의 경험이 평화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그 이후로는 악몽을 꾸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한상진 씨에게 연습이 아닌 실제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은 맘 편히 지켜볼 수 없는 일이다.

"저 역시 죽음은 두렵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준비가 끝난 이라크 전쟁을 막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할 생각인걸까?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이라크에 직접 갈 생각입니다. 이미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현지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활동을 벌이는 중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반전평화단체와 함께 활동할 것입니다."
머지 않아 사지(死地)로 변하게 될 이라크. 그곳에 갔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한상진 씨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라크에서 살아가는 무고한 국민들은 그런 공포를 항상 느끼지 않겠습니까. 그런 비극은 막아야죠."
목숨까지 걸고서 선택한 이라크 행이지만 당장 그곳으로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고 한다. 심지어 의약품 공급조차 어렵다. 후세인 정부의 생화학 무기 재료로 쓰일 소지가 있다는 명목으로 미국이 의약품 반입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이라크에서는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의약품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 또한 그곳의 평화운동가들도 풍토병과 의약품 부족으로 항상 죽음을 대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죽음은 단지 총알과 폭격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처럼 한 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뛰어들어 전쟁을 막고자 하지만,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먼 타국의 전쟁에 무감하기만 하다. 한 때 걸프전을 보여주는 CNN의 방송을 화려한 불꽃 쇼나 오락프로처럼 보았던 한국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불감증. 한상진 씨는 이런 모습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 근시안적인 시각이 안타깝습니다. 짧게 보면 나와 관계없는 일일 수 있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라크의 전쟁을 막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입니다."
아프간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對)태러 전쟁은 이라크를 거쳐 북한으로 올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중동을 위협하는 미국의 전쟁을 지금 막을 수 없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입으로 이런 구호를 외쳐야하지 않을까?
"Don't Attack Korea!"

군축은 이상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전혀 없었던 날은 채 한 달도 안 된다. 2천 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은 정신적·사회적으로 쉽게 떨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전쟁에서 승자란 있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매년 공동묘지를 찾아야하는 패전국의 국민들은 영원히 슬픔을 안고 살아야한다. 총을 들고 살상을 저지른 후, 죽을 때까지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리는 승전국의 군인들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 역시 행복한 삶을 살기는 힘들다.
"평화를 위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기르고, 전쟁을 준비해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실질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군축을 해야합니다."
TNT폭탄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던 시절에 세계 각 국의 국방부는 국민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백 여 년이 흐른 지금. 나라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 있는 핵폭탄이 전 세계에 1천 개가 넘는다. 그런 폭탄의 더미에서 우리는 평화로운가? 북한과 대적하는 군사력을 위해 수십 년 간 몇 조의 돈을 퍼부었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평화롭다고 느끼는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군축은 이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한상진 씨는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여러 가지 민감한 사안에 관계하고 있기에 가끔 감시 받는 느낌도 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폭력보다는 평화를 위한 활동이 훨씬 강한 명분을 가진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1시간 여 동안 평화운동가와 나눈 인터뷰는 막막함과 희망을 함께 느끼게 했다. 다시 쌓인 일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 그를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마주한 세상은 그에게 들은 이라크와 너무나 대조되면서 이질적인 평온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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