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나쁜 여자가 되자

김은형(한겨레 문화부 기자)



나는 그룹 핑클의 이효리를 좋아한다. 그를 좋아한 건 가수가 아니라 진행자를 하면서부터다. 가수가 방송진행을 하는 것이 국어 순화 및 건전한 방송문화 창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그렇다. 적어도 내가 본 이효리는 착한여자 콤플렉스에 그닥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 있었다. 신동엽과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담배이야기가 나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신동엽이 “효리씨는 담배 좀 줄였어요?”라고 묻자(농담이었겠지만) 이효리는 “저 금연홍보대사잖아요. 그래서 남들이 안보는 집안에서...”라는 식으로 받아쳤다. 담배를 피우는 게 미덕은 아니지만 그것이 가지는 해악과 무관하게 분명 담배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나쁜 여자를 구성하는 조건의 꽤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 흡연여부와는 무관하게 이효리의 이런 반응은 착한여자 강박에서 다소 자유로워 보여 좋았다.

요즘엔 많이 변하긴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연예인들은, 특히 여성연예인들은 토크쇼 같은 데 나오면 자신이 얼마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는지를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한 토크쇼에서는 나란히 앉은 여성연예인들이 누구네 집의 귀가의무시간이 더 빠른가를 경쟁하듯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화룡점정은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의 경우였는데 그는 잘못을 하면 무릎 꿇고 먹을 갈게 하는 아버지 아래서 자랐으며 텔레비전이 끝날 때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나온다는 거였다. 우리나라가 잘돼야할 텐데 하면서. 그 말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파안대소를 하다가 나중에서 텔레비전을 내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재벌가에 시집가는 것으로 인생의 목표를 이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행동은 순종을 최고의 미덕으로 부각시켜(그것도 거대 미디어의 힘으로!) 동시대 여성들이 살기 더욱 피곤해지는 데 도우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 지경까지는 아니겠지만 요새도 인터뷰를 하다보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맡은 역이야 어떻든 인터뷰이(interviewee)가 자신이 평소에 얼마나 착하고 공손한 인간인가를 보여주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입안이 씁쓸하다.
‘동거, 할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 ‘00양 동거중’이라고 기사를 쓰는 미디어 폭력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이 몸을 사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도발했으면, 좀 더 나쁜 여자가 됐으면 하고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왜 나쁜 여자가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독일의 여성주의 심리학자 우테 에어하르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착한 여자는 죽어서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살아서 어디에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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