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승소로 현장에 복직하는 태광 해고자 정삼구
태광산업·대한화섬 노동조합 전 위원장
“비록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돈많고 힘있는 자본가에게 이겼다는 것, 그래서 ‘부당한 것에 맞서다 보면 결국 잘 되는구나’ 하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기쁜 소식을 접했다. 해고자인 정삼구 전 태광산업·대한화섬 노조 위원장이 대법원에서 원직복직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정삼구 전 위원장은 88년 3월에 태광산업에 입사해서 올해 3월이면 만 15년이 된다. 태광 노동운동의 부침과 함께 동고동락하다 보니 서른아홉 노총각이 되었다. “이제 가정을 꾸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주변의 시달림에 복직하면 생각해 보겠다더니 어느새 ‘가압류 풀리면’으로 슬그머니 말이 바뀌었다.
대법원 원직복직 판결 후 첫 출근한 21일 저녁, 그간의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대법원 승소, 복직하게 된 경위는?
일반적으로 해고 복직관계에 있어 부당해고 소송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부당해고 소송이 아닙니다.
해고되었다가 회사로부터 복직 통보를 받았고 복직을 하려니 회사측에서 원직복직이 아닌 재입사로, 신원 보증인을 세우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보증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앞에 몇몇 간부들이 그렇게 복직을 했다며 저에게도 회사에서 마찬가지로 요구를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거부를 했지요.
그러니까 회사측은 이후 절차를 밟지 않고 계속 질질 끌고 나갔습니다. 당시 법적인 분쟁으로까지 갈 것이라 생각하기보다 단체 협약이나 해고자 복직 문제와 함께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복직문제가 확실히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원장이 되다 보니 자격시비가 붙은 것이지요.
회사측은 ‘위원장 자격 정지 가처분’에서부터 ‘위원장 자격정지 소송’을 제기했고, 그에 맞서다 보니까 ‘종업원 지위 보존 청구 소송’ 등 지금까지 소송이 이렇게 대법원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승소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 노조위원장 당시 해고자였나?
일반 해고자와는 달리 복직 통보를 받았지만 부당한 회사측의 요구에 대해 불응하고 거부한 상태로 위원장을 했습니다.
때문에 회사는 “복직된 것이 아니므로 위원장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종업원 자격도 없다”는 주장이었고, 우리쪽의 주장은 “자격이 있다. 너희가 안받아 줘서 그런 것이고, 그 당시 복직계는 제출했고 기본 절차는 다 거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면 언제 해고되었었나?
98년도에 7·27 파업을 마치고 구속되고 난 이후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10월 20일 경에 나왔는데 한달 후인 11월 22일자로 해고가 되었습니다. 파업을 마무리할 당시 ‘(해고자 7명 중) 4명은 복직시킨다’는 합의 내용에 따라 다음해인 99년도 3월 복직자로 제가 선정이 되었었지요.
그런데 앞서 얘기한 대로 회사측에서 부당한 재입사 요구를 한 것이고 저는 그것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 다시 출근한 느낌은?
사실 소송을 하면서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2001년 파업 당시 징계해고도 많이 되고, 많은 동료들이 정리해고 되고, 당시 제가 ‘정리해고 저지 투쟁위원회’ 임시 의장을 맡음으로 해서 회사측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회사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대법원으로부터 원직복직시키라는 판결 이후에 강제성을 띤 출근 명령서까지 받은 상태라 출근을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1월 10일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 1월 16일자로 집에 문서로 법원으로부터 통보가 왔습니다. 전화로도 ‘출근하라’고 연락이 왔구요.
그래서 오늘 첫 출근을 하고 나니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기뻤습니다.
대법원에서 강제로 그렇게 한 것일지라도 회사측이 나를 출근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사실 무척 기뻤습니다.
■ 조합원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었나?
안 그래도 조합원들도 만나 본다고 조금 일찍 출근을 했습니다. 정문 휴게실에서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잠시 나누었습니다.
그전 같으면 걸어서 들어가며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었을 텐데, 회사측에서 사람들 만나는 것을 아예 막기 위해서인지 정문에서 차에 태워 데리고 들어가더니 나올 때도 차에 태워 밖으로 내보내더라구요.
오늘은 관리 사무실에서 사원증, 의료보험증 만들고 여러가지 서류들 내고 왔는데, 현장에는 언제 갈지 모르겠습니다.
■ 복직 전에는 어떻게 보냈나?
2001년말에 정리해고에 맞서는 투쟁을 시작했는데, 작년 한해는 정리해고자들의 투쟁에 제대로 결합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투쟁을 못했지요. 생계 문제도 있고 빚은 자꾸 늘어나고 해서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집수리, 인테리어 등 일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는 거의 투쟁에 결합을 못해서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 복직을 하게 되니 주변에서는?
정리해고자 동료들이 무척 반가워합니다.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이 단일 노동조합이었는데 회사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법인체를 따로 분리를 해서 이제는 노동조합도 완전히 분리를 했더라구요. 대한화섬은 400명, 태광은 700명 정도 됩니다.
저는 대한화섬 소속인데, 오늘은 노동조합 위치만 확인하고 왔습니다. 문도 닫혀 있고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 복직하고 난 이후의 행보는?
일단은 어렵게 복직을 했는데요. 무엇보다 제가 비록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돈많고 힘있는 자본가에게 이겼다는 것, 그래서 밖의 해고자들이나 안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부당한 것에 맞서다 보면 결국 잘 되는구나’ 하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역으로 또 아주 불행한 사례로 만들기 위해 회사생활을 고달프게 하기 위해 몰아부칠 것이 예상됩니다.
고소·고발을 당하고 탄압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회사를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 태광도 가압류가 극심한데......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대부분 가압류가 걸려 있었는데, 가압류를 해제시켜 주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시키고 지금은 정리해고자들과 징계해고자들에게 가압류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1차로 40억, 2차로 20억 모두 65명의 정리해고자·징계해고자에게 공동 손해배상 청구·가압류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저는 회사측이 고법에서 지고 나자 따로 1억원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승소한 후 회사측은 밀린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것마저 가압류하고 이후에 일을 해도 임금, 은행 계좌, 집뿐만 아니라 생기는 재산이 있다면 계속 가압류해 들어올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측에서 나에게 쓸 수 있는 압박인 것이죠.
■ 태광 정리해고자들의 상황은?
생계를 위해 ‘민주콜’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자들이 대리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큰 도움은 못되고 있습니다.
출근 투쟁은 원래 각 조별로 돌아가며 하다가 지금은 투쟁 선봉대 10명 내외로 정문에서 출근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 원칙주의자라는 평도 있는데?
이번에 복직 건도 그렇습니다. 전에 주변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많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서 하는 얘기겠지만요. “들어와서 같이 일하면서 하지 다 들어왔는데 혼자 버티며 왜 고집을 피우느냐, 그러다 영원히 못 들어오면 어떡하느냐”, 나쁘게 말하는 쪽은 “괜히 되지도 않는 트집 잡아서 안 들어온다” 이런 식이었죠.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저만 복직에까지 이르게 된 결과가 되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우선 죄송하다는 말부터 우리 동지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투쟁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아서 법으로 이기고 복직이 되었습니다.
저만 복직이 된 상태라 다른 정리해고자와 징계해고자들에게 사실 미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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