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쟁점으로 떠오른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남동발전 매각 위해 실사작업 ― ‘사유화’가 아니라 ‘공공성의 강화’가 대안
지난해 봄 발전소 사유화를 반대하며 38일간 전면파업을 벌였던 발전산업노조(위원장 이호동)가 최근 전면적인 투쟁에 다시 나서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
‘발전소 매각 저지’ 전면투쟁을 다시 준비하는 발전노조
지난해 발전노조의 파업과정에서 ‘전 국민의 80% 이상이 발전소 사유화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전력은 화력발전 5개 자회사에 대한 순차적 매각 방침을 고수하고 있고, 지난해 7월 우선매각 대상으로 선정된 남동발전에 대한 인수의향 기업들의 실사가 이번 달 10일부터 각 발전소별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2월 안에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발전산업노조는 남동발전 매각이 눈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실사가 진행되는 발전소마다 실사단 저지 투쟁을 전개(위 사진)하고 있고, 오는 16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본부 총력 결의대회’를 기점으로 적극적인 매각 저지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투쟁이 다시 정세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인수위, ‘사유화 정책은 지속하되 여론 화살 피하고 전선교란으로 각개격파’
한편 노무현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준비하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전력·철도·가스 등 국가기간산업 사유화에 대한 입장을 최근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수위가 마련한 방향은 사유화 정책을 지속하되 전반적으로 추진 일정을 유보 내지 재검토하는 것으로 기조를 잡는데, 다만 전력의 발전 부문에 대해서는 예정대로 화력발전 5개 자회사에 대한 순차적인 매각을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한마디로 사유화 정책을 지속하되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반대전선을 교란시켜 각개격파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유화 추진 일정을 전반적으로 유보 내지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지난해 이후 사유화를 반대하는 발전·철도·가스 노조의 투쟁이 계속 이어지고, 최근에는 배달호 열사 분신으로 한국중공업 사유화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으로 인해 강하게 대두된 사유화 반대 여론을 일단 피하자는 계산인 것이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발전부문은 예정대로 매각한다면서 전반적으로는 유보·재검토하겠다는 것은, 당장 발전소 매각 저지 투쟁으로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사유화 저지 투쟁전선을 분열시켜 각개격파하려는 노림수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산업자원부와 기획예산처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은 사유화를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내고 있다. 결국 사유화 일정의 전반적인 유보 내지 재검토라는 것도 공허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노무현 정부 또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 온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정책을 거의 그대로 답습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기간산업·공기업이 나아갈 길은 ‘사유화’가 아니라 ‘공공성의 강화’다!
국가기간산업(공기업)을 사유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흔히 공기업 체제로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민간자본에 매각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유화와 시장경쟁 도입으로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은 철저히 ‘자본의 무한 이윤 확대’라는 관점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지 ‘국가기간산업이 가져야 할 공익적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효율성을 높인다는 얘기가 아니다.
따라서 전력·철도·가스 등 국가기간산업 사유화는 그것을 인수한 자본에게만 막대한 이윤을 안겨다 줄 뿐이며, 그들의 이윤이 확대되는 만큼 국민 전체(특히 노동자·민중)는 피해를 볼 뿐이다. 요금 인상, 장기적 투자 회피로 인한 대형사고와 불편 초래 등은 그 전형적인 형태다.
실제 한국전력 강동석 사장은 2월 7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국내 전기요금이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전력산업 구조개편(=사유화)이 이뤄지면 요금이 오를 것 같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발전노조 파업 당시 TV토론회에서 “발전소를 매각해도 전력요금은 오르지 않을 것”이라던 주장이 ‘거짓말’임을 스스로 실토한 것이다.
한편 외국에서도 사유화 정책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1998년부터 전력산업 사유화를 단행한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발전소 추가 건설이 되지 않으면서 전기요금이 무려 19배까지 치솟기도 하고 심지어 전기공급이 중단되는 전력대란을 겪는 등 대혼란을 겪은 끝에 2002년 1월에 사유화 정책 자체를 전면 폐기처분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96년 국영철도를 여러 개 회사로 나누어 사유화하였으나 정비불량과 신호체계 혼란으로 인한 대형사고가 속출한 끝에 2001년 10월에 토니 블레어 총리가 철도 사유화 정책의 실패를 공식 선언하고 재국유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공기업 형태의 국가기간산업에 국민 예산을 낭비하는 비효율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노동자와 국민 대표가 참여하는 민주적 경영체제를 도입하여 해결할 일이다.
배달호 열사의 죽음을 몰고 온 “한국중공업의 사유화”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 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 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 내가 먼저 평온한 하늘나라에서 지켜볼 것이다.”
1월 9일 두산중공업의 노동탄압에 항거하며 분신한 故배달호 열사가 남긴 말이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중공업(두산으로 인수된 후에 두산중공업으로 변경)의 사유화를 지난 5년 동안 줄기차게 추진한 공기업(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아 왔다. 그러나 배달호 열사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 바로 한국중공업 사유화였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 사유화 정책에 따라 흑자 우량기업이던 한국중공업을 사유화하면서, 자산가치 5조원의 한국중공업을 두산그룹에 불과 3,057억원이라는 헐값으로 매각했다.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며 두산그룹은 자산가치가 11조를 넘어서면서 재계 순위 10위권에 진입한다.
그런데 2001년 두산은 한국중공업의 자금으로 한국중공업 자회사를 통해 한국중공업의 1/5에 불과한 두산기계를 3,000억원에 인수한다. 헐값으로 치른 한국중공업 인수대금마저 다시 주머니에 챙겨 넣는 두산의 교묘한 방법이었다.
이어서 두산은 한국중공업의 자본금으로 1,207억원의 주식을 추가 매입하여 한국중공업의 최대주주(51%)가 된다. 그리고 한국중공업의 이름을 두산중공업으로 바꾼다.
자산 5조의 한국중공업을 사실상 거저 챙긴 두산은, 2001년 ‘명예퇴직 사전 합의’가 명시된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협박과 위협으로 1,124명의 노동자를 ‘명예퇴직’이란 이름 아래 강제로 내몰았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며 흑자기업으로 만들어온 노동자들을 거리로 밀어낸 것이다.
두산은 과도한 명예퇴직으로 인원이 부족해지자 명예퇴직한 사람들을 그 전 급여의 절반 수준으로 재채용하기도 했다. 힘없는 식당 노동자들을 강제로 명예퇴직시키고 다시 파견업체를 통해 전보다 훨씬 낮은 임금으로 같은 일을 시켰고, 운전직 노동자 14명을 강제로 퇴직시킨 후 그 중 10명을 다시 외주업체에 채용시켜 2/3의 낮은 임금으로 같은 일을 시켰다.
2002년 두산의 노동탄압은 극에 달한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개정시한을 넘긴 단체협약이 무효화되도록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이에 맞선 노조의 파업을 이유로 (협약체결 이후에) 노조간부 89명을 징계(18명 해고)하고, 총 6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재산 가압류 신청으로 노동조합 무력화를 시도했다.
한편 검·경찰과 사법부는 노조간부 22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구속된 노조간부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두산을 강력하게 지원했다. 자산가치 5조원의 공기업을 거저 챙기도록 해주고, 극악한 노동탄압을 뒷받침해주면서, 국가권력은 사유화로부터 노동탄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 두산과 한 몸이 되어 움직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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