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사건을 보며 그 어이없는 대량참사에 분통을 터뜨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형사건 때마다 반복되는 안전불감증을 지적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한 사고대응을 비난한다. 당연한 일이다. 누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아무리 큰 보상과 위로가 주어진다 해도 사고로 가족을 잃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그 엄청난 상실감을 치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고 뒤 신문과 방송은 늘 그랬듯이 앞다투어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고 문제를 찾아내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느라 분주하다. 그렇지만 역시 늘 그랬듯이 나는 언론의 그런 호들갑이 정말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을지 회의한다.
수출용과 내수용의 엄청난 '품질차이'
이 사건 보도를 접하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큰 전동차가 패트병에 담긴 한 줌의 휘발유로 그처럼 순식간에 타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열차가 들어오니 승객 여러분은 할 걸음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라는 경고를 들을 때마다 전동차의 위용에 지레 겁먹고 물러나면서, 설마 그 큰 쇳덩이가 그리 쉽게 타버리리라는 상상을 누가 할 수 있었겠나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절대로 불 따위에는 끄덕 없을 거라 믿었던 그 전동차가 불에 잘 타는 가연성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라운 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 지하철은 대부분 불에 타지 않는 불연성 소재로 내장된다는 것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수출용으로 제작되는 전동차도 불연성 내장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정말이라면 이 사건은 단지 지하철 내부의 사고관리 시스템이나 관련자들의 미숙한 대응 따위에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발전과 성장과 개발의 논리, 그리고 그 속에서 숨죽이며 자기희생을 감내해왔던 우리 모두의 자학적 의식구조 문제를 근원적으로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박정희 시대이래 오래 동안 우리 사회는 성장과 개발의 논리에 지배되어 왔다. 무엇을 짓든 남보다 빨리 짓고, 무엇을 만들어 팔든 남보다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 팔고, 무엇을 달성하든 좀 더 많이 좀 더 빨리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가치로 여겨졌다. 그 속에서 다수의 힘없는 서민, 노동자와 농민은 언제나 희생을 강요당해왔다. 국가적 목표를 위해, 수출신장을 위해, 경제성장을 위해 그저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조용히 살 것을 강요받았다. 꽁치 한 마리도, 동태 한 마리도 잘 생기고 값나가게 생긴 것이라면 우선 수출용으로 써 먹어야 하고 우리는 그저 나머지 쭉정이만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했다. 수출을 해서 돈을 벌고 경제의 양적 팽창을 이룰 수 있다면 이 땅에 사는 힘없는 사람들이야 당장 꽁치 대가리나 뒤지며 산다 해도 우선은 참아야 한다는 논리, 경제주의, 속도주의의 발전논리란 따지고 보면 그런 것 아니었던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수십년 계속된 근대화 논리의 지배 속에서 바로 그런 사고 방식을 스스로 알게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말이다. 바로 그런 사고 방식이 있었기에 수출용은 돈 들여 안타는 재료로 하지만 내수용은 대충 싸게 만들어도 그만이라는 그 어이없는 일이 가능했던 것 아니었는가 말이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결국 나는 이 사건이 90년대이래 되풀이되어온 숱한 대형참사들과 마찬가지로 또 한번 박정희 패러다임의 궁극적 파탄을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라 믿는다. 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도 따지고 보면 그런 패러다임이 낳은 희생자가 아니었을까. 경제주의와 속도주의의 구조 속에서 수많은 사회적 낙오자들을 양산하면서도 그들을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기보다는 체제의 효율성이란 미명하에 끊임없이 체제 밖으로 몰아냄으로써 증오와 공격적 자기학대를 심화시켜온 것 아닌가 말이다. 사고관리 시스템을 정비하고 전동차를 바꾸는 것도 시급하지만 우선 우리 스스로 오래 동안 내면화하고 있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깨끗이 던져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 사회적 목표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김창남 성공회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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