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 현지보고 3] 이라크에 전쟁의 기억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

대학생신문 성혜란 객원기자

지난 20일(수) 요르단 시각 새벽 4시 30분 경.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됐다. 아직 캄캄한 새벽,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의 암만 숙소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다. TV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긴장된 얼굴로 CNN이 보여주는 바그다드를 바라본다.
대공포가 쏘아 올려지는 하늘이 가끔씩 밝아지고, TV화면 한 구석에는 미국이 떨어뜨린 폭탄에 불길이 치솟는다. 지난 17일(월), 바그다드를 떠난 후 3일 만에 보는 뉴스 속의 바그다드는, 몸을 떨고 있었다.

전쟁전야
17일 밤 이라크 시각 9시 30분.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4일 동안 이라크에서 활동했던 평화
팀원들이 암만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 밖에는 이들을 배웅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그다드에 더 남겠다는 의사를 밝힌 한상진, 배상현씨와 평화팀의 현지 가이드인 카심과 수하드, 바그다드 곳곳으로 평화팀을 안내한 운전기사 하이달, 하샨을 비롯한 숙소 인근에서 자주 보았던 아이들까지 나와서 눈물 젖은 얼굴로, 씩씩한 악수로, 다정한 포옹으로 평화팀을 보내고 있었다.
남는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 모두, 3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더욱 긴박해진 전쟁의 위험을 말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자고 약속할 뿐이었다.

평화팀은 비자문제로 요르단과 이라크를 왕복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13일에서 17일. 전쟁이 다가온다는 관측 아래 보냈던 이라크에서의 하루하루는 소중했다.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있고 싶고, 전쟁을 막아내고 싶었다. 캠페인을 벌이고, 촛불시위를 벌였다. 함께한 이라크 군인은, 영국이 전쟁에서 빠진다고 했기 때문에 전쟁은 안 날 것이라고, 평화팀이 너무 늦게 온 것이라고 웃음을 머금으며 이야기했었다. 평화팀 또한 마음 깊이 그것을 바라며 함께 웃었다. 여행 가이드 카심은 함께 플래카드를 거느라 새까매진 손을 내보이면서 연신 '행복하다'며 흐뭇해했다. 전쟁 발발 6일 전의 일이다.
사재기도, 줄 이은 피난도 볼 수 없는 전쟁 직전의 바그다드와 바그다드 사람들은 그랬다. 전쟁이 안 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전혀 두렵지 않으며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그러나 큰 목소리로 외치는 '사담!'이라는 구호가,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이, 평범하게 이어가는 그들의 일상이, 전쟁에 대한 의연함 때문은 아니었다.
"80년에 일어난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몇년 지나지 않아 91년에 걸프전이 일어났고, 몇년 지나니까 다시 전쟁이다. 언제나 전쟁이다."
20대 중반인 평화팀 숙소의 직원은 인생의 절반을 포탄 속에서 보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바그다드의 촛불
유엔의 최종 결의안 마감일. 전쟁 시작이 예견되던 17일 저녁, 평화의 초가 해가 기웃하는 티그리스강 위의 알 라쉬드 다리를 밝혔다. 기름이 떠다니는 티그리스강에 평화의 배가 항해를 시작했다.
알 라쉬드 다리 위에 모인 반전운동가와 이라크인들은 초를 발 앞에 내려 놓고 손을 맞잡았다. 각 나라의 말로 '평화'를 읊조렸다. 다리를 내려와 강가에 모인 시위 참가자들은 각자의 초를 강 위에 띄워 보냈다. 한국 평화팀이 만들어 온, 색색의 초를 꽂은 나무배가 강에 뜨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고, 티그리스강 주위의 빌딩들 사이로 환한 보름달이 떠있었다. 만월. 미국 공격을 3월 중순으로 예상한 이들의 단서 중 하나였다.

전쟁 직전 이라크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평화팀원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남아있는 3명의 생사를 파악하느라 분주해졌다. 쉴새없이 한국 언론사들의 전화를 받으며 죽었는지, 살았는지 말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이제 막 알게 된 그 많은 이름들과 얼굴들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생사만이 아니다. 그들이 그곳에 남기로 한 의지다.
요르단 암만 캠프에 머물러 있는 10명의 평화팀은 전쟁의 피해자로 그들의 땅에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난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난민지원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팀원 중의 하나인 임영신씨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단식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22일 현재 3일 째 단식 중이다.
떠나는 날, 평화팀을 배웅 나와 작은 주먹을 모아 흔들며 '아메리카와 싸우겠다'고 말해 평화팀의 마음에 멍을 들인 하샨이, 훗날 "언제나 전쟁이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이것이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의 바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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