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체육, 무엇이 문제인가? :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문제




사례 하나.

내 어릴적 친구로 아이스하키하던 녀석이 있었다. 선생님 권유로 중학교 때부터 했는데, 하다 보니 재주가 있어 국가대표까지 했다. 그 녀석의 학창시절 회고 중 하나이다.
수업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시험시간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답안지 제출하고 나왔단다. 이런 식이다. 선생님이 답안지 먼저 나눠주고 시험지를 나눠주는데, 답안지 받자마자 칸을 광속으로 채운단다. '1111222233334444...' 답안지 칸을 다 채우는 찰나, 앞에서부터 배달된 시험지가 맨 뒤에 앉은 자기 책상 위에 착륙할까 말까한 찰나, 이를 낚아채 답안지와 함께 선생님께 제출한다. 맨 뒤에서 맨 앞까지 걸어나가는데 쑥스럽지 않았을까? 여러분, 그런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당당하게 나가 제출하고 곧장 교실을 빠져 나갔답니다.

사례 둘.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많은 운동부 특기생들이 있었다. 시험 보려고 강의실 문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축구부 후배녀석 하나가 기웃거리며 다가온다. "너 여기 웬일이야?" "기철이형이 가보래서 왔습니다." "?" 정작 시험을 봐야할 내 동기는 합숙소에서 자고 있고 후배를 대신 보낸 것이다. 자기 학번을 적어주며 한마디 했단다. "야. 연필 가져가."
나는 내 시험지 붙들고 정신이 없었지만 아마도 그 후배는 시험지 받자마자 이렇게 적고 나갔을 것이다. "축 구 부 입 니 다."

사례 셋.

또 다른 운동부 친구다. 그 친구는 대학 입학 전까지 온갖 선발에, 대표는 다 거친, 날리던 선수였다. 그런데 대학 들어와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진데다 감독과도 사이가 나빠 결국 3, 4학년은 벤치만 지키다 졸업했다. 그 친구가 그 때 나랑 소주를 마시며 한 얘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가슴 쓰라린 얘기다. "우리 엄마 요즘엔 내 중고등학교 때 앨범 보면서 울어..." 그나마 집안형편이 좋아 졸업 후 결혼하고 양품점한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다.

사례 넷.

대학 들어와 같은 학과 운동부 친구들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2학년이 되어 첨 보는 애가 있었다. 수업 끝나고 밥먹으러 가서 한 얘기같다. "야, 너 왜 1학년 땐 수업 한번도 안들어왔어?" "1학기 때 가긴 갔어. 근데 문 열어보니까 여자애들이 있잖아."
여자학우들 때문에 교실에 못 들어왔다는 그 친구...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겠지.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참사 이후 합숙소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난무한다. 오늘 아침 교육부서 마침내(?) 초등학생 합숙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드디어 바로 잡혔다고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인가? 내친김에 중등학교 합숙도 금지시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게 그렇지가 않다. 합숙소 참변은 나뭇가지 하나 썩어 문드러져 땅에 떨어져 버린 것에 불과하다. 나무 전체를 보아야한다. 줄기를 찾아야 하고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초중고대학생 운동선수들은 연중 합숙을 한다. 이유는 뭘까? 그리고 합숙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바로 감독, 코치, 학교가 얼마나 급하냐, 즉 얼마나 승부에 집착하느냐에 달려있다. 학원스포츠의 감독, 코치는 대부분 신분이 불안정한 관계로 승리와 성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들의 생계와 관련된 목줄인 것이다. 학교측(예를 들어 교장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고 성적이 학교의 위상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운동부가 온종일 연습하는 것을 묵인한다. 교사들도 운동부에 일단 들어간 학생들은 '학생'으로 보지 않는다.
동문회의 압력도 있다. 꼴에 이름과 역사가 좀 있다는 학교들은 운동부의 성적이 변변치 않은 경우 학교당국을 몰아 세운다. 운동부 지원도 끊고 장학금이나 후원금도 끊어버리겠다고... 감독 목숨 파리 목숨 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여기에 뛰어드는 또 다른 집단이 바로 학부모들이다. 이들은 자기 자식들의 교육이나 인격형성에는 관심이 없다. (진짜로 없다니까요.) 오직 자기 자식이 대학에 갈 수 있는가, 프로에 갈 수 있는가, 미국에 갈 수 있는가이다. 이들은 감독이나 학교당국보다도 합숙이 성적과 기량향상의 직빵이라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 자식을 돈으로 보는 부모 요즘 점점 많아진다.

학원스포츠와 연관된 검디 검은 문제점 하나 더. 상황은 이러한데 학교에는 운동부를 위한 예산이 실상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어디서 연 1억을 넘나드는 돈이 나오는가. 바로 학부모다. 합숙을 위한 경비, 대회참가비, 전지훈련비, 감독, 코치 월급까지 모두 학부모들이 갹출한다. 이러한 감독, 학교와 학부모간의 돈거래는 상급학교 스카우트에까지 연결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있어왔던 스카우트 파동은 다 이런 돈거래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각종' 어른들이 똘똘 뭉쳐 어린 청소년들을 몰아 붙인다. 자신의 자리 보전을 위해, 더 좋은 팀으로 가기 위해, 학교를 위해, 동문들 기분 한번 내게 하기 위해, 우리 집안 일어서기 위해, 국제무대에서의 국위선양을 위해 등등.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말이다.
아이들이 혹사당하고 학대당한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것' 이라며 무수한 어른들이 아이들을 다그친다. 어른들의 욕심과 공명심은 아이들의 교육받을 엄연한 권리를 무시해왔고, 가족과의 따뜻한 시간을 빼앗아왔으며, 또 친구를 사귈 틈도 주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성년에 이를 때까지 아르바이트 한번 해 본 적 없고, 십수년 학교를 다녔음에도 운동 외에는 도대체 아는 게 없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제 범인잡기에 나서 보자. 누구인가? 감독? 교장선생님? 동문회? 학부모? 그럴 것도 같지만 이들은 그 하수인일 뿐이다. 아니 어찌 보면 이들도 피해자이다. 수십년 지속된 학원스포츠의 병폐와 그 거대한 자본주의의 위력 앞에 이들도 다른 어느 대중들처럼 순응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됬다는 것을 몰랐다. 감독이나 학교나 다 그랬을 것이다. "남들 다 하는데!"
조금 황당하겠지만 예를 들어볼까 한다. 유명한 흑인 인권목사인 마틴 루터 킹이 인권운동에 뛰어들었을 때 그 아내(역시 흑인)가 따지듯 물었단다. "도대체 인종차별이 뭡니까?!" 비틀린 것이 비틀린 것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고, 압도적 환경 속에 질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속죄양 삼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구성원(사람)에 있지 않다. 시스템에 있는 것이다. 이 요지부동이고 완고한, 난공불락의 거대한 학원스포츠. 그리고 올림픽 메달이나 월드컵 4강 같은, 그 단물만을 빨아먹으면서 사회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학생선수들을 본체 만체 하는 우리의 국가. 여기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고서는 바로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매듭 몇 개 푼다고 학원스포츠가 올바로 설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희준 / 동아대 체육대학 교수 chunghj@daunet.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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