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아산사내하청지회 설립보고대회

‘승리하는 사내하청노조’ 만들기 위한 연대의 장


*사내하청지회의 깃발을 휘날리는 홍영교 지회장(2003.4.16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정문 앞) [사진출처 : 워킹보이스 김경란 ]

월차 내려던 하청노동자가 관리자에 의해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상해를 입은 이른바 ‘식칼테러’ 사건으로 촉발되어 노조 설립까지 이어진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지회장 홍영교)가 16일 오후 노조설립 보고대회를 가졌다.

아산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이날 보고대회에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울산 본조, 전국의 비정규노조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했다. 그 동안 노조 가입 사실도 쉬쉬했던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100여명이나 모였고, 울산 본조에서 현장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아산으로 달려왔다.

갑작스런 노조설립, 갑작스런 정규직 채용공고
지난 3월 28일 오후 4시, 불과 일주일여 전에 있었던 ‘식칼테러’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자아산 사내하청지회가 불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테러사건 이후 노조 설립에 대한 움직임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계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과 현대자동차측이 ‘유령노조를 만들려고 한다’는 정보를 듣자 발족을 서두르게 된 것이다.

사내하청지회 간부들은 야간조 작업이 시작되는 이날 오후 9시 공장을 돌며 노조가입원서를 돌렸다. 불과 두 시간 만에 70여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가입원서를 쓰면서 하청지회의 초반 출발은 희망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내하청지회가 설립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4일 현대자동차는 정규직 채용공고를 내고 협력업체 직원들도 응시하도록 했다. 이는 지난해 임금협상 때 노사가 ‘본사 신규채용 시 협력업체 인원을 40% 이상 채용한다’는 내용으로 합의를 한 사항이었고 ‘식칼테러 사건’에 합의사항에도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아산공장은 올 10월부터 가동할 예정인 세타엔진 공장을 신축했고 이 공장에 충원할 인원을 합의 사항에 따라 선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고가 붙고 나서는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급속히 떨어졌다. 괜히 하청노조에 가입했다가 회사에 밉보여서 신규채용에서 누락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하청노동자들 사이에 팽배하게 퍼졌다.
사내하청지회는 공고가 하청노조 발족과 함께 나간 것에 대해 “96년부터 전면적으로 중단된 정규직 채용을 하고 일정부분을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로 충원한다는 것은 일단은 매우 환영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 가동되려면 시일이 많이 남은 공장 인원 충원을 서두르는 것은 사내하청노조 가입을 간접적으로 막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어렵게 합의된 정규직 채용 합의사항이고 그것도 사내하청노동자를 일부라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회사가 합의사항을 절묘한 시기에 꺼내 들어 하청노동자들에게 ‘하청노조 같은 곳에 괜히 한 눈 팔지 말고 회사만 믿고 따라오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이를 이용하고 있다 해도 이를 '하청노조 가입을 막으려는 방안'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부당노동행위’로 보여진다.

사내하청노조가 만들어지면 원청회사의 간접적인 하청노조 탄압은 비일비재하다. 아산공장의 경우는 지난 테러사건 잠정합의로 도급계약이 해지돼도 소속 하청노동자들을 고용승계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긴 했지만, 대부분의 하청노조는 설립과 동시에 원청업체가 노조원이 있는 해당 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해 노조설립과 동시에 복직투쟁을 해야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규직 노조가 하청노조와 연대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사진출처:워킹보이스]

지원과 연대- 희망을 보여준 ‘지회설립 보고대회’
그런 점에서 이번 보고대회에 울산 현자노조 본조에서 현장 활동가를 중심으로 한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본조는 대규모로 하청지회 보고대회에 참가함으로써 노사 양측에 하청지회에 대한 지원의지를 명백히 보여주었고 노동운동의 메카라 불리는 울산 본조가 사내하청지회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일단 형식적으로는 대내외에 알린 셈이다. 다만 보고대회에 참가한 울산의 활동가들이 울산으로 돌아가 사내하청지회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방안들을 마련하고 실천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이날 있던 보고대회에서 눈에 띠는 또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은 정규직 채용 공고 이후 조직화 속도가 답보상태에 있던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좀처럼 노조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힘든 하청의 상황에서도 100여 명이 넘게 참여 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노조에 가입은 하고 싶지만 파리 목숨 같은 자신들의 처지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조합원 가입원서를 장롱 깊숙이 넣어두고 있다’던 중장년 아주머니들이 당당히 정문을 걸어 나와 보고대회에 참가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정규직 채용을 앞두고 하청노조에 일부러라도 눈길을 피하려 애쓰고 있지만 어디를 가도 일자리 구하기 힘든 중·장년 여성들이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은 하청노조 조직화 투쟁이 희망을 보여주는 단초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날 보고대회에 참가한 24살의 한 하청노동자는 “우리같이 젊은 하청노동자들은 하청노조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들의 투쟁의 성과로 정규직 전환의 기회라도 오면 좋은 것 아니냐는 방관적 자세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며 하청노동자들의 의식전환이 시급함을 말해줬다.

또 하나 주목해야 했던 점은 이날 참가한 ‘빨간조끼’로 상징되는 원청노조 조합원은 대부분 울산 본조에서 왔다는 것이다. 하청지회가 만들어진 아산공장의 정규직 조합원들의 모습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아산지부 차원의 조합원 동원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현대차노조 오점근 아산지부장 역시 ‘연대사’가 아닌 ‘축사’를 하는 것으로 보고대회 마이크를 잡았다. 사내하청지회에 대해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지부가 아직까지 어느 선까지 책임을 가지고 지원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 지부장은 ‘축사’를 통해 “하청노조를 진정한 대중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하청노동자들 스스로가 민주노조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지부도 현대자본이 하청노조 탄압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적극적으로 막아 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적어도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지부차원의 대응을 할 것이라는 정도의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워킹보이스 김경란 기자 eggs95@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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