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군인들의 희생도 막대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이번 전쟁에서 대략 2천명 이상의 이라크군이 사망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동포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어야 했던 그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였다.
그렇다면 침략 전쟁을 일으킨 미·영 연합군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라크 민간인과 군인 사상자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은 숫자만이 희생당했을 뿐이다. 더구나 그들은 조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고, 사망한 군인의 가족 역시 조국을 위해 희생했다는 이유로 아낌없는 찬사와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그런 찬사와 위로를 한꺼풀 벗겨보면, 그 속에는 일부 미군 병사들의 '안쓰러운' 꿈과 현실이 있다.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던 탱크가 강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라틴계 미군 프란치스코 마르티네즈 플로레스.[출처 www.nandotimes.com]
우선 전쟁 기간에 사망하거나 실종된 미군 병사들 중 유난히 스페인계 성을 가진 이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11일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 인근에서 자살폭탄 공격을 받고 숨진 디에고 린콘, 이라크전에서 최초로 사망한 미군 호세 구티에레즈,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던 탱크가 강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은 프란치스코 마르티네스 플로레스를 비롯한 많은 이가 라틴계였으며 비시민권자였다.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4월 14일자에 소개된 베치 스트라이샌드 기자의 글 ‘라틴 영웅(Latin Heroes)’에 따르면, 라틴계 젊은이들은 (이라크 전쟁에서) ‘제일 먼저 사망하고, 제일 먼저 붙잡힌 군인들’이었다.
미국내 라틴계 공동체는 베트남전 이후 또 다시 자기 민족의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언론에서도 라틴계 군인이 전투부대와 (특히 육군과 해병의) 보급부대에 과도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라틴계를 비롯한 수많은 외국 국적의 젊은이들이 왜 미국을 위해, 더욱이 전세계로부터 침략전쟁이라고 지탄 받는, 힘없는 나라를 상대로 한 전쟁에 몸을 던져야 했을까.
‘시민권’이 그 의문을 푸는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외국인 비시민권자가 미군에 지원할 경우 시민권을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했다.
과거에는 미국에서 최소 3년 이상 거주해야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었으나, 2002년 7월 이후에는 영주권 소지자가 군에 입대하면 즉시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나?”
사실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시민권 신속처리 절차는 시민권 부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군에 입대할 경우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부여된다는 소문이 라틴계 공동체에 퍼지면서, 한달 평균 300명 수준이었던 영주권자의 군 입대가 부시 대통령의 발표 이후 1,300명으로 껑충 뛰었다.
현재 미군 중 대략 3%가 비시민권자이며, 라틴계가 이들 중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치카노’, 즉 멕시코계 미국인들에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입대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별로 없다는 말도 떠도는 실정이다.
시민권 취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명분 없는 전쟁에 뛰어든 라틴계 미군들 역시 이라크인들과 마찬가지로 침략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들인 셈이다.
미군 중 외국 국적의 비시민권자들만이 억울한 희생자라고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미군 병사들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젊은이들이며, 대학이나 직업 훈련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입대를 택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젊은이들이 입대한 동기가 ‘미국의 자유와 이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닌 듯하다. 어엿한 교육을 받아서 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라틴계 미군 병사는 군인모집 광고의 미끼에 걸려든 것이다. 애팔랜치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사가 되기 위해 군에 입대했던 제시카 린치와 같은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이라크전에서 최초로 사망한 미군 호세 구티에레즈가 '사후'에 시민권을 취득한 것과 관련, <타임>은 지난 3월 28일자에서 '한 해병이 일생의 소망을 죽어서 이뤄'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출처 www.time.com]
군대 지원자가 계속해서 부족했던 1990년대 당시, 루이스 칼데라 육군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관료들은 군대에 지원할 수 있는 연령의 인구가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라틴계를 주목하면서 군대 과정에 GED, 우리 식으로 하면 고등학교 졸업 자격증 수료과정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칼데라 장관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히스패닉 시장’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고, 이렇게 해서 군대는 배움을 희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학교’가 되었다.
또 군대에서 3년간 복무하고 명예제대하면 기술교육이나 대학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많은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수단이 되어 왔다.
결국 이라크에 파병된 젊은이들 중 수많은 이가 시민권을 얻는, 그리고 대학에 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바그다드, 나시리야, 모술로 향하는 우회로를 택해야 했던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임무 도중 사망했기 때문에, 사후에나마 시민권을 획득했지만 대학생이 되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라틴계가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적극’ 참여하는 현실을 두고, 미국의 라틴계 공동체는 의견이 나뉘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애국적인 정서가 강한 라틴계 미국인들은 사망한 군인들이 라틴계는 갱단이나 범죄자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자랑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후에 시민권을 부여하는 미국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라틴계도 적지 않다. 그들은 라틴계 이민자들이 미국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베트남전 당시 치카노들이 불렀던 노래 구절처럼, “이 나라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나?”라고 그들은 쓰라린 심정을 내뱉는다.
미국의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사망한 디에고 린콘 일병의 부친 호르헤 린콘이 아들이 사후 시민권을 획득한 것에 대해, “나는 내 아들이 자랑스럽고, 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내 아들이 미군이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 곳에 왔다. 우린 그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민권을 얻고, 교육을 받고, 어엿한 생활인이 되고 싶다는, 그 작고 소박한 꿈들이 왜 하필 전쟁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미국이란 땅에서 이방인의 꿈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Georeport 김지연 midnightblue@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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