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난민촌 르포 - 나는 인간방패였다<1>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행복은…

이스라엘 일간지 <마리브(Ma'ariv)>의 빌리 모스코나 레르만(Billie Moskona-Lerman) 기자가 라파 난민촌을 찾아간 건 지난 3월 16일 이스라엘군의 만행에 항의하다 숨진 레이첼 코리의 동료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마리브> 지난 3월 28일자에 게재된 레르만 기자의 '나는 인간방패였다(I was a human shield)'는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한 한 이스라엘 여성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체험기이다.

그녀의 글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언제 가옥이 파괴될지도 모르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부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동포의 비극을 알리려는 한 팔레스타인 청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절망과 신음의 땅에 온 평화 운동가들.. 그리고 그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변화하는 걸 느낀다.

이 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한복판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이는 어른들의 동화처럼 느껴진다.
모스코나 레르만 기자의 르포 '나는 인간방패였다'(I was a human shield)를 소개한다.(Georeport)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난민촌에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수심에 찬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출처 nonprofitnet.ca]
내 생애에서 그렇게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지옥에서 무사히 돌아왔다. 지난 주 목요일(3월 20일) 밤, 나는 조와 로라를 따라 동행에 나섰다. 20세의 인권 운동가인 조와 로라는 이스라엘 방위군(IDF)을 막기 위한 인간 방패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함께 갈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때만 해도 내가 어떤 상황에 뛰어들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생애에서 그렇게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내 생명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달려 있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가 힘없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나는 “가겠다”고 했고, 우리는 출발했다. 그 때가 오후 7시 30분이었다. 어두움속에서 우리는 폐허가 된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온통 움푹 패인 구멍과 웅덩이, 찢어진 나일론과 합성수지, 철조망, 쓰레기더미 투성이였다.

문을 연 가게도 여기 저기 보였다. 근처에서 지나가던 소년들이 우리를 향해 “앗 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하고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소년들 중 한명이 우리를 향해 돌을 집어 던졌다. 돌이 공중을 붕 날라서 우리 가까이에 떨어졌다. 조와 로라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저 애들이 증오하는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것뿐”이라고 로라는 말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이집트 국경과 매우 인접한 곳이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우리는 라파 맨 끝자락의 맨 마지막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 집은 무하마드 자밀 쿠시타의 집이었다.

인적이 없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은 뒤 우리는 길고 좁다란 길에 당도했다. 길 끝에는 커다란 기둥이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 기둥이 감시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탑 근처에 다가가자 조와 로라는 손을 높이 들더니 나도 똑같이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도 그들처럼 두 손을 머리 위에 높이 올리고서 빠른 걸음으로 (하지만 너무 빨리 걷지 않도록 하면서) 이스라엘 방위군의 감시탑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가 입은 옷은 밝은 주황색인데다가 밤에는 눈에 더 잘 띄도록 은색 줄무늬까지 있었다. 조는 한 손에는 확성기를, 다른 한 손에는 형광색 판지를 들고 있었다.

감시탑에서 20미터 떨어진 곳까지 가자,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가 아주 중요한 요새지역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라파와 이집트 국경선인 이 곳에는 이스라엘 군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감시탑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까지 오자 로라는 갑자기 나를 작고 어두컴컴한 문가로 밀면서, “여기야, 빨리”하고 속삭였다. 나는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더듬어가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를 으쓱하며 “공중에”라고 답했다. “왜요?” “두려우니까”

*이스라엘군 저격수. [출처 www.aljazeera.net]

어둠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다섯 발자국을 뗀 순간 그만 콘크리트 블록에 이마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 밑을 통과해서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 보니 문이 나타났다.

초인종을 짧게 누르자 문이 열리면서, 무하마드 쿠시타가 환한 미소로 우릴 반겼다.

문가에 서서 미소로 답하면서 이제 고생은 끝났고 우호적으로 보이는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날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상조차 못했다.

무하마드 자밀 쿠시타는 바로 우리가 보호해야 할 집의 주인이었다. 조와 로라는 이미 지난 몇주 동안 밤에는 그의 집에서 지냈다. 그리고 그 날은 프랑스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성까지 데리고서.

프랑스 기자는 나였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내가 텔 아비브에서 온 이스라엘인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문을 연 자밀은 "Tfatdal, Tfatdal" 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어린 아이(낸시)를 팔에 안은 젊은 아내, 노라의 모습도 보였다.

조그만 난로가에 있는 마루 바닥에 앉았을 때는 벌써 8시 15분이었다. 그 때 갑자기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굉음은 아주 아주 가깝게 들려왔다.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귀를 멍멍하게 하는 그 소리는 지옥에서 들려오는 음성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포화속에 놓였다.

나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온 몸이 떨렸다. 내 귀에는 뭔가 엄청난 게 계속해서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쿵, 쿵, 쿵. 나는 그 때 죽음이 눈 앞에 다가온다는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처음 포탄 소리가 들렸을 때는 자밀의 찻잔이 살짝 흔들릴 정도였지만 곧 집이 들썩들썩했다.

노라는 낸시를 꽉 끌어 안았고, 조와 로라는 구석에서 자고 있던 아기(입바산)와 어린 오빠(자밀)의 몸 위에 엎드렸다. 포격은 30분 동안 계속되었고, 포탄 소리가 멈춘 뒤에도 나는 1시간 30분 동안이나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말없이 자밀을 바라보자, 그는 매일 밤 이렇다고 말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누구에게 포탄을 발사하는 거냐고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공중에”라고 대답했다. “왜요?” “두려우니까” 그는 간단히 말했다.

“그들도 어둠속에 혼자 있으면 무서우니까. 그들은 아주 젊어요.”

불도저와 맞서는 위험한 상황을 ‘쥐와 고양이 놀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옥 파괴에 항의하는 미 여대생 레이첼 코리. 이스라엘군 불도저에 깔려 죽기 직전 모습이다. [출처 electronicintifada.net]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지자 나는 왜 애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돈이 없다고 대답했다.

“다른 집을 장만할 돈이 없어요. 가진 돈을 전부 이 집에 투자한데다 빚도 있어요.”

조와 로라가 지난 몇주 동안 밤에는 자밀의 집을 숙소로 사용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집은 이집트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 중에서 맨 마지막 집이다.

이 집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이스라엘 방위군의 요새가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근처에 있는 집들을 모두 철거한 뒤, 라파를 공격하기 위하여 총과 탱크, 박격포를 배치했다. 그래서 조와 로라는 자밀의 집에서 밤을 보낸다.

이 집은 이스라엘군이 헐어 버리려는 집들 맨 앞에 놓여 있다. 군대가 언제 탱크나 D-9 불도저를 몰고서 이 집으로 쳐들어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스라엘군이 집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조와 로라의 임무일 것이다.

조와 로라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항거하여 비폭력 직접 행동을 벌이고 있는 인권 운동가들의 모임인 국제연대운동(ISM)의 회원들이다. 젊고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그들은 아주 급진적이고 단호한 평화주의자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군대가 민간인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들은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밤이면 군인들의 총격에 노출되어 있는, 맨 앞줄에 있는 팔레스타인 집으로 흩어진다. 그들은 형광색 옷을 입고 확성기를 들고 다닌다. 군인들이 총격을 가하거나 불도저가 나타나면, 회원들은 영어로 국제조약을 낭독하면서 군인들이 총을 쏘거나 가옥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상황은 순조로웠다. 회원들이 고함을 치고 경고를 하면서 온 몸으로 불도저를 막으면 군인들은 뒤로 물러섰다. 그러던 지난 3월 17일 그들의 꿈은 무참히 깨졌고,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인권 운동가였던 한 젊은 여성이 이스라엘 방위군의 불도저에 깔려 사망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레이첼 코리였고, 나이는 23세였다. 그리고 조 스미스는 그녀의 생애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레이첼이 불도저를 가로막고서 운전병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국제연대운동 회원들은 자신들이 불도저와 맞서야 하는 이 위험한 상황을 ‘쥐와 고양이 놀이’라고 부른다.

"여러분,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기자입니다"

*이스라엘 여성 경찰이 한 팔레스타인 여성을 곤봉으로 때리고 있다. [출처 nonprofitnet.ca]

레이첼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군인들은 상황을 너무 위험하게 몰고가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위험한 순간 직전에 항상 멈추었다.

하지만 그 날 불도저를 몰던 군인은 멈추지 않았고, 레이첼은 죽었다. 그리고 그녀는 샤히드(순교자)가 되었다.

레이첼의 동료들을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이 전세계에서 쇄도했고, 그렇게 해서 나는 거기에 가게 되었다.

담당자는 내게 단호한 지시를 내렸다. “당신이 이스라엘인이라는 걸 아무도 모르게 할 것. 지금부터 당신은 프랑스 기자임. 이상.”

나는 레이첼의 동료들과 24시간 동안 지냈다. 두렵고 불안하고 미칠 것 같은 시간이었다. 신경은 곤두서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속옷까지 땀에 젖었다. 나는 하루 24시간 내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가는게 어떤 건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죽는다는 건 두려운 것이다. 총과 탱크, 불도저가 내가 사는 집, 침실, 부엌, 발코니, 거실을 노리고 있는데, 자신을 지킬 수도 도망칠 곳도 없다면..

자정 무렵 포탄을 퍼붓는 탱크를 앞에 두고 이게 내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진실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하마스, 탄짐(팔레스타인 무장조직 - 옮긴이)을 비롯해서 내가 이스라엘인이라는 걸 안 순간 즉시 살해해 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절대 정체를 노출하지 말라는 담당자의 지시를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아주 단호한 심정으로 나는 갑자기 털어놓았다. “여러분,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텔 아비브에서 온 이스라엘 기자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자밀이 유창한 히브리어로 말을 시작했다.

“잘 오셨어요. Ahalan Ve'sahalan. 저도 헤르츨리아시 소콜로프가에서 4년 동안 살았어요. 미프가시 하샤론 식당에서 샤와르마(양고기를 커다란 꼬치에 끼워 회전하며 구운 뒤 고기를 잘라서 빵과 함께 먹는 음식 - 옮긴이) 요리사로 일했죠.

네타냐시 압바 에반가와 헤르츨리아 피투아치에 있는 호드 호텔에서도 일했어요.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리틀 텔 아비브 식당에서 체리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가 제일 좋았죠. 거기 아직도 장사해요?”

그날 밤 탄알이 빗발치듯 떨어졌다. 내게는 단 하룻밤이었는데도. 총격은 새벽 1시 30분부터 먼동이 터오르던 4시 15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서 총격은 멈추었지만, 덜덜 떨리는 내 이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 4시간 동안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으아아아아주 가까워” 뿐이었다.

자밀과 노라는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군인들은 우리가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렸죠?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벽을 향해 총을 쏴서 그래요”

그 말에 나는 갑자기 희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그럼 한 번도 이 집을 향해 총을 쏜 적은 없단 말예요?” “어.. 가끔씩은 있어요. 저기 구멍난 거 보이죠?”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보니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벽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수도꼭지, 식탁, 변기, 아이들 침대 옆에 있는 벽도 마찬가지였다.

구멍을 메워 놓은 곳도 보였다. 매일 밤 총격이 끝나면 자밀이 구멍을 하얀 시멘트로 발라 놓기 때문에 벽은 마치 기워놓은 이불같았다. 용기를 내서 창문을 내다보니 자밀과 노라의 집이 폐허로 둘러싸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 도망가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갈 돈이 없는 자밀 가족만이 남은 것이다. 밖은 총알이 씽씽 날아 다니는데 자밀은 가족을 위해 샐러드, 오믈렛을 만들고 피타 빵을 오븐에 구웠다. 총알은 씽씽 날아 다녔지만, 우리는 왕성한 식욕으로 자밀이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총격이 가까이에서 느껴질 때마다 우리는 몸을 숙였다. 인간의 적응력은 정말 놀라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주일 전에는 자밀이 검은색 매직펜으로 “군인들께, 제발 총 쏘지 마세요. 아이들이 자고 있어요”라고 히브리어로 쓴 마분지를 레이첼 코리가 건물 바깥 벽에 걸어놓기도 했었다. 이제 레이첼의 얼굴은 이 집 거실 창문에 걸린 순교자 포스터 속에 있다.

자밀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어쩔 도리가 있겠어요. 알라신이 우리가 죽을 때가 됐다고 하면, 우린 죽겠죠. 모든 건 알라신의 손에 달려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계속-
(Billie Moskona-Lerman / 번역 Georeport 김지연)

지오리포트 georeport@georepor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