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브> 지난 3월 28일자에 게재된 레르만 기자의 '나는 인간방패였다(I was a human shield)'는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한 한 이스라엘 여성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체험기이다.
그녀의 글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언제 가옥이 파괴될지도 모르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부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동포의 비극을 알리려는 한 팔레스타인 청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절망과 신음의 땅에 온 평화 운동가들…. 그리고 그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변화하는 걸 느낀다.
이 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한복판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이는 어른들의 동화처럼 느껴진다.
모스코나 레르만 기자의 르포 '나는 인간방패였다'(I was a human shield)를 소개한다.(Georerpot 옮긴이)
*라파 난민촌 전경. [출처 www.rafah.vze.com]
"사람은 24시간 동안에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24시간 동안 나는 황폐하고 포위당한 도시 라파에서 살았다. 주민들과 외국인들은 모두 이 곳을 ‘라파 난민촌’이라고 부른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이스라엘인이라는 걸 몰랐다. 그들은 내가 유럽에서 온 기자라고 생각했다. 그 24시간 동안 나는 끔찍하고 무책임하며, 내 나이에는 걸맞지 않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일을 해냈다는 게 기쁘다. 난 지금의 내가 라파에 들어가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사람은 24시간 동안에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내 일정은 오전 8시 30분 텔 아비브에서 시작되었다. 예후다 구발리라는 이름의 친절한 택시 기사는 내게 물과 껌을 건네 주었다. 그는 내가 이렇게 화창한 아침에 그 버림받은 에레즈 검문소(가자지구의 관문 - 옮긴이)에 가려고 하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국제연대운동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그의 반응은 이랬다.
“아, 나도 신문에서 봤어요. 여자가 죽었더라구요. 그 여자 이름이 뭐더라.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 여자가 죽은게 기뻐요. 뭐 때문에 바쁘신 몸이 미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 일에 끼어들죠? 그것도 불도저를 딱 가로막고서! 깔려죽은 것도 당연하죠, 뭐. 아마 그 사람들도 뭔가 배운 게 있을 거예요. 여기는 자기들 나라가 아니란 걸.”
경계선을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과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스라엘군은 어떠한 책임도 없다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한 뒤, 혼자서 에레즈 검문소의 경계선을 통과했을 때 하늘은 흐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히브리어는 절대 쓰지 마세요"
*지난 4월 10일 라파 난민촌 가옥들을 파괴시키고 있는 이스라엘군 탱크와 불도저앞에 서서 항의하고 있는 국제 평화 운동가들. [출처 www.rafah.vze.com]
마지막 벙커를 통과하고 나서 손을 흔드는 군인들에게 답례를 한 뒤, 철조망 근처에서 나를 안내해 주기로 한 팔레스타인인 탈랄 아부 라마를 기다렸다.
사진기자인 아부 라마는 주로 최근의 인티파다를 상징하는 사진을 찍어 왔다. 이스라엘군과 무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교전으로 사망한 아이, 무하마드 알 두라가 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사진도 그의 작품이다.
요즈음 아부 라마는 대단히 바쁘다. 가자지구에서 살고 있는 그는 현재 외국 방송망에서 일하고 있다. 나의 공식 안내인인 아부 라마가 처음 나를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히브리어는 절대 쓰지 마세요. 심지어 나조차도 당신이 이스라엘인이라는 걸 알아서는 안됩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프랑스 기자예요.”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서 나는 차에 탔다.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차로 1시간 반 걸리는 라파 난민촌을 향해 떠났다. 해안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면서 그는 말했다.
“저기 호텔과 식당이 보이죠? 한 때는 저기도 시끌벅적했었죠. 지금은 아무도 저 곳에 가지 않아요. 그냥 버려진 거죠.” 우리는 구시 카티프 이스라엘 정착촌 근처에 있는 아부 훌리 검문소에서 차를 세웠다.
우리는 군인들이 통과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아부 라마는 신경이 예민했다. 그는 계속 줄담배를 피워댔다. 이 검문소는 차에 세명 이상 타고 있지 않을 경우 통과시키지 않는다.
검문소 양쪽 대로변에 아이들이 있는게 보였다. 아이들은 운전수에게 1 세켈(약 4백원)을 받고서 차의 정원을 채워 주었다. 극도로 침체된 경제에서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 중 하나였다.
우리는 기다렸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흘 동안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고 아부 라마가 알려 주었다. 하지만 30분만에 허가가 나왔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줄 지어 선 아름답지만, 그러나 버려진 도로를 따라 라파 난민촌에 도착했다.
라파 난민촌은 넓고 황폐한 곳이었다. 인구 14만명이 살고 있지만 도시라고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불도저, 총격, 탱크를 의미했다
*지난 1월 지붕 위 물탱크를 수리하다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숨진 아베달파아 오라비 만수르. 그의 7살 난 아들이 시신을 지켜보고 있다. [출처 www.rafah.vze.com]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곳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가장 못 살고, 가장 비참하고, 가장 피해를 입은 곳”이라고 한다. 인티파다 기간에 이 곳에서 250명이 사망했고 4백채 이상의 가옥이 파괴되었으며, 사망자 중 절반이 어린이였다.
‘국제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 나는 특히 이 곳에서는 내가 이스라엘인이라는 걸 밝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이스라엘은 가장 사악한 악마를 의미한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불도저, 총격, 탱크를 의미했다. 집을 깔아 뭉개고,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모멸감을 주고, 배고픔과 가난으로 내모는 악의 무리였다.
방에 있던 젊은이들은 프랑스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 등살에 시달렸고, 동료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질문을 던져도 대답하지 않으려 했고, 두 시간 밖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아무도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동행인이 신경질적으로 발을 툭툭 치는 걸 보았다. 결국 내일 다시 와 달라고 그에게 부탁하고 말았다. 내 신상에 관해서 잠시 언쟁을 벌인 뒤,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떠났다.
국제연대운동 회원 중에서 유일하게 나와 대화를 나누려 했던 조 스미스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 가지 않겠냐며 말을 건네왔다. 카페를 향해 걸어 가면서 그는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 말해 주었다.
스미스는 미국 캔사스 출신의 21세 청년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평화 운동가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면서 그들의 사상에 매료되었다. 대학에 들어와 정치학 강의를 들으면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게 되었고, 자신이 특권을 가진 백인 남성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는 슬로바키아에 가서 반자본주의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평생동안 자신처럼 특권을 갖지 못한 약자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나라 정부가 권력을 부여한 독재자들에 항거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 이 곳에 오게 되었다.
“그들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총을 쏜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있는 라파 난민촌. [출처 www.rafah.vze.com]
시내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서 나는 무하마드를 만났다. 그는 “여기는 아주 문제가 많은 곳”이라며 나머지 이름은 밝히려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홈페이지(www.rafah.vze.com)에 올려 놓은 일기와 사진을 보여 주었다.
18세의 섬세한 얼굴을 지닌 무하마드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나는 도박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통역을 하면서 난민촌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조를 카페에 남겨 두고서 무하마드를 따라 난민촌의 중심지인 살라 아딘가를 걸었다.
무하마드가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짓자 무슨 문제가 생긴 거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나에게 케피야(keffiya)를 사서 머리를 감추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눈에도 덜 띄고, 내가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할 거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즉시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제일 처음에 본 가게에 들어가서 케피야를 산 뒤 택시를 세웠다. 약간의 옥신각신이 벌어진 뒤 30분 동안 시내를 도는데 50 세켈을 내기로 합의했다.
택시 기사는 나를 처음 본 순간 국제인들을 만나러 온 기자냐고 물어 보았다. 여기서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다. 기사는 레이첼 코리가 사고를 당하던 그 날 아침 병원에 데려간 게 바로 자신이라고 말해 주었다.
무하마드가 나를 처음 데려간 곳은 라파에서 맨 북쪽에 위치한 G 블록이었다. 가옥 4백채가 파괴된 이 곳에서는 주민들이 천막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탱크 가까이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 당나귀를 탄 한 여성은 “그들은 움직이는 걸 보면 총을 쏜다”며 경고했다.
우리는 거의 기다시피 해서 폐허가 된 거리를 통과했다. 고개를 숙인 채 좁은 골목을 헤치고 나가자, 20미터 쯤 떨어진 곳에 포를 겨누고 있는 탱크가 보였다.
무하마드는 가옥이 대량 파괴된 곳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가 파괴된 집마다 찾아 다니며 사진을 찍어 올려놓은 홈페이지는 전세계에서 매일 9백명이 접속하고 있다.
파괴된 집들이 줄줄이 늘어선 그 곳에는 물건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인형, 가구, 자전거, 책….
"그들은 단 한 시간만에 우리 삶을 망가뜨렸어요"

*지난해 4월 예닌 난민촌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장갑차. [출처 www.aljazeera.net]
우리는 탱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골목을 기어서 통과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아무 때나 공격한다고 무하마드는 말했다. 그 말에 하반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침내 탱크가 점점 더 다가오고 점점 더 황폐한 모습이 드러나자 “이제 그만!”하고 외치고 말았다.
나를 프랑스 기자라고 믿고 있는 무하마드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 곳을 떠났다. 그 다음 우리는 F-16 전투기에 의해 파괴된 알 우부르 비행장과 레이첼 코리가 사망한 장소, 그리고 구급차 두대가 시내를 분주하게 돌아 다니는 작은 병원을 가보았다.
두시간이 지나자 나는 좀 쉬자고 했다. 우리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서 4.5 세켈(약 1달러)을 주고 커다란 피타 빵과 humous(이집트 콩에 마늘과 오일을 첨가한 것 - 옮긴이), tehina(중동지방의 참깨 소스 - 옮긴이), 코카 콜라를 주문했다.
어디에 사냐고 물어보자 무하마드는 이렇게 말했다. “두달 전에 집이 파괴되고 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요.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전부 다 짓밟아 놨더군요. 컴퓨터, 책, 공책, 교재, 하나도 남김없이.
그들이 오면 순식간에 전부 부셔버려요. 우리에게 물건을 운반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우린 모두 거리로 쫗겨 났어요. 나, 아버지, 어머니, 3형제, 할아버지. 제 말을 믿으세요.”
내가 프랑스 기자라고 생각하는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유도 없어요. 우린 아무 잘못도 없는 그냥 평범한 가족이예요. 그런데 그들은 단 한 시간만에 우리 삶을 망가뜨렸어요.”
나는 무하마드가 말하는 걸 지켜봤다. 파괴된 가옥 4백채를 보고 나서야 나는 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회원들은 레이첼이 죽던 바로 그 날 사망한 사람들의 가족을 방문하려던 참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가 함께 가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 택시 한대에 일곱명이 꾸역꾸역 타고서 시내 끝에 있는 식수탑으로 갔다.
공격으로 손상된 수도관이나 전기줄을 보수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도 회원들의 임무 중 하나였다. 조, 로라, 앨리스, 고든이 보수중인 노동자들을 원으로 빙 둘러싸서 이스라엘군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적은 가상적이고 정교하며 접근할 수 없는 물체일 뿐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라파 난민촌 아이들. [출처 rafah.vze.com]
유족의 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마루에 앉아 쓴 커피와 대추열매를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스라엘인’이라는 말은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군인’이라는 말조차도 잘 사용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단지 ‘그들’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거기에 있는 동안 나는 살과 피를 지닌 이스라엘군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인의 눈에 비친 적의 모습은 얼굴도 없고 신체도 없으며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적은 항상 거대한 D-9 불도저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집채만한 그 괴물은 불투명 강화유리로 된 4각형 머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적은 항상 벙커나 감시탑, 금속 탱크 안에 숨어 있다. 적은 얼굴도 없고 표정도 없다.
적은 육중한 카키색 고철덩어리 안에 숨어 있다가 경고없이 불을 뿜어낸다. 이 거리의 사람들에게 적은 가상적이고 정교하며 접근할 수 없는 물체일 뿐이다.
그리고 지저분한 길거리에는 이런 적과 대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찢어진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속에 어떤 이들은 맨발에, 무시당하고, 얼핏 봐도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그들을 보기만 해도 슬픔과 불안, 고통, 잘 먹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5세만 되어도 노인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일자리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여럿이 함께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직업도 없고 갈 데도 없는 그들은 비좁은 집에서 온 가족이 한데 엉켜 살아가고 있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행진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행렬 맨앞에 있는 차에 달린 엄청나게 큰 확성기에서는 요란한 음악이 흘러 나왔고, 복면을 한 젊은이 열명이 손에 칼을 들고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회원들이 “시위다”하고 외치더니 택시에서 내려 성난 사나이들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프랑스 기자인 나도 울며 겨자먹기로 함께 걸어야 했다. 로라, 앨리스, 캐롤, 이 세명의 여성과 계속 눈을 마주치면서 나는 걸어갔다. 팔레스타인 여성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TV로 볼 때 살벌해 보이던 그 시위 행렬에 나도 끼게 된 것이다. 나는 성난 사내들을 바라보며, 저들이 내 주머니속에 들어있는 이스라엘 신분증을 보면 어떻게 나올까하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신분증을 보면 어떻게 나올까하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집이 파괴돼, 홈리스가 된 팔레스타인 가족. [출처 www.rafah.vze.com]
땀에 젖은 얼굴을 보면서 그들이 아직 어리고 필사적으로 행동에 나서길 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앨리스, 로라, 캐롤은 시위대와 함께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구호를 열렬히 외치면서, 레이첼의 얼굴이 담긴 순교자 포스터를 꺼내 들었다.
런던에서 온 26세의 앨리스는 확성기를 들고서 레이첼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했으며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열변을 터뜨렸다. 앨리스는 영어로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연설에 감탄하며 귀를 기울였다.
나는 앨리스가 회원들 중에서 가장 강한 여성이라는 걸 느꼈다. 그녀는 젊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신념이 강하다. 나는 그녀가 잔다르크 이미지의 단단한 껍질에 감추어진 속내를 털어놓을 때까지 무려 열시간 동안이나 기회를 엿보아야 했다.
성을 밝히길 꺼려하는 앨리스는 런던에서 자랐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그녀는 좋은 직장을 다녔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난 부르주아처럼 사는게 허무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고급 레스토랑에 가다가 우연히 길에서 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보게 됐죠.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한동안 공장에서 일했어요.
그리고 나서 난 점점 더 정치적이 되어갔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 했어요. 내가 뭘 먹고 있는지, 뭘 즐기고 있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그 뒤 프라하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어요. 나 자신에 대한 훈련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까지 내 용기를 시험해 봤어요. 여기 생활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힘들어요.
내가 가장 관심있는 건 강자가 약자를 상대로 어떤 전술을 사용하는지 분석하는 거예요. 여기에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맞서는 걸 도울 수 있으니까 내 삶이 의미있다고 느껴져요.“
우리는 20분 동안 격렬한 행진을 한 뒤 대열에서 빠져나와 저녁식사를 위해 장을 봤다. 소금으로 저장한 고기, 국수, 쌀, 설탕, 쿠키, 차.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이 단체 회원들은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들은 1 세켈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기록한다.
우리는 갑자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느꼈다
*이스라엘군 탱크가 오자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건물 담벼락에 몸을 숨기고 있다. [출처 www.rafah.vze.com]
매일 오후 6시에는 회원들이 모여서 그 날의 마지막 회의를 한다. 이 공동체는 엄격한 규칙을 통해 운영된다. 회원들은 밤에는 각자 위험에 처한 팔레스타인 가정으로 흩어졌다가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아파트에 모여 회의를 갖는다.
회원들은 전날 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팔레스타인 친구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들어본 뒤 그 날의 임무를 나누어 맡는다.
회원들은 전기 시설이나 우물을 지키기 위해 인간방패 역할을 맡거나 증언을 수집하고 작은 캠코더로 현장을 찍는다. 그들은 확성기를 들고서 적대적인 고철덩어리와 맞서면서 그 안에 있는 군인들과 대화를 시도해보려 한다.
회원 7명 모두 이 혼란속에서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레이첼의 죽음을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하고도 하루 2시간 밖에는 못 자기 때문에 아직도 충격에서 회복할 만한 시간이 없는 이 젊은이들을 누가 돌봐줄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남겨둔 것이 없었다. 그들은 레이첼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그녀의 부러진 등을 어루만지고, 자신들 손으로 그녀를 시체 안치소에 데려가 수의로 갈아 입힌 뒤 구급차에 태워 텔 아비브까지 동행했다.
그 뜨거운 날 레이첼의 시신에서 김이 피어 오르는데도 검문소에서 자신들을 막아 세우는 군인들과 설전까지 벌여가며.
회원들 사이에서는 1주일 전 남편 고든과 함께 합류한 캐롤 모스코비츠가 어머니 역할이었다. 캐롤은 61세고 고든은 그녀보다 약간 젊다.
캐롤과 고든은 캐나다에 사는 예술가들이고, 지난 석달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던 중 레이첼 소식을 듣고서 나머지 회원들을 돕기 위해 여행 일정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도착한 일요일부터 젊은 회원들을 위해 부모 역할을 맡았다. 차를 끓여 주면서 레이첼의 죽음으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충격과 슬픔을 치료해 주기 위해 애썼다.
캐롤과 고든은 캐나다에 딸 셋이 있다. 한시간 전 캐롤은 어머니 날을 맞아 따뜻한 안부를 전하는 큰 딸의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딸들에게는 자신들이 라파 난민촌에 있다는 걸 숨겼다. 그들은 딸들과 손자·손녀들이 걱정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오후 7시 30분에 나는 로라, 조와 함께 자밀의 집에서 밤을 지새우기 위해 떠났다. 총, 미사일, 로케트가 (그외 또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4시간 동안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어대는 자밀의 집에서 나는 이것이 내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텔 아비브에서 온 이스라엘인이라고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우리를 향해 공격하는 저 군인들 중에 어쩌면 내 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니면 우리 집에 찾아온 아들의 친구들 중 누군가가 저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자 사람들이 서로 쳐다보며 웃기 시작했다. 아기들 셋, 미국인 둘, 팔레스타인 부부, 이스라엘 여성, 이렇게 우리 모두 커다란 샐러드 그릇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 앉아 총알이 씽씽 하늘을 날아다니는 동안 웃기 시작했다.
절망, 불안, 안도의 웃음 속에서 우리는 갑자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운이 좋으면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가면 그 뿐이지만 자밀과 노라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이 사람들은 포화속에서 아이들 셋을 키워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때 로라가 자신도 유대인이라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다소 예민한 관찰력을 소유한 유대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국제연대운동의 ‘잔다르크’이며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앨리스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군인들도”라고 자밀이 말했다. “어두움 속에서, 저 차가운 고철 안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스무살 밖에 안 된 어린 애들에 불과해요.”
우리는 모두 자밀의 말에 동의했다. 삶은 이렇게 짧은데, 인간은 어리석은 피조물이다.-끝-
(Billie Moskona-Lerman / 번역 김지연)
지오리포트 georeport@georeport.net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