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아이들

영화 터미네이터2를 보면 미래의 살인로봇에게 쫓기던 여주인공이 잠시 지친 몸을 쉬며 꾸는 꿈을 통해 전쟁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미끄럼틀과 그네, 모래판 위로 밝은 햇살이 비추는 평화로운 정경.
재잘거리고, 웃고, 뜀박질하고 엄마를 향해 말을 거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
그 순간 거대한 섬광이 지평선 끝에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아이들과 엄마들은 행복한 놀이를 하는 그 모습 그대로 뼈만 남았다가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핵전쟁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영화 속의 이 장면은 전쟁의 공포를 느낄 사이도 없이 지나가지만, 2003년 현재 우리는 매일 매일 다가오는 전쟁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의 취임과 9.11 테러이후 전세계는 계속적인 미국의 전쟁위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뉴욕무역센타에 행해진 테러공격의 충격은 폭력적 의사표현방식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테러와 폭력에 대한 지구시민들의 우려는 전세계적인 반테러연대를 이끌어냈고 미국은 이를 이용하여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반테러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자행한 아프간에 대한 공격 역시 또 다른 폭력임이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공격 과정에서 발생한 무고한 인명의 희생에 깊은 우려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시정권은 침공을 강행했고 결국 세계 최강국 미국의 군사력 앞에 아프간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람들은 무역센타 테러에 대한 놀라움으로 아프간침공의 의미와 그곳에 가해진 폭력사태(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나 미국 내 아랍인들에게 행해진 테러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미국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잇따라 이라크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다시 한번 침략의 가능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유엔의 반대와 세계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 백 만 명의 반전평화에 대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테러의 희생자이자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가면조차 벗어 던진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 오로지 무력을 통해 힘을 행사하려는 깡패에 다름 아니다.


전쟁과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불러올 비참한 결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갈등과 문제해결에 도움은커녕 원한과 복수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평화를 원하지만 다양한 문화와 체계가 존재하는 한 갈등은 항상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힘의 우위를 전제로 자신만의 논리와 정의를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진정한 갈등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다. 진정한 화해는 나눔과 이해와 서로에 대한 용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전쟁의 최대 희생자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이었음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반전평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중학교 3학년이 7살 아이의 장난감을 뺏으면서 “너는 걷는 것이 서툴러서 장난감을 들고 다니다가 넘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 이건 내가 갖겠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우스운가?

지금 미국이 이라크와 북한에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보육교사인 내가 맡고 있는 아이 중의 한 명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억지를 쓰는 중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고 장난감을 돌려주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만약 그 중학생이 우려하는 대로 7살 아이의 서툰 사용으로 장난감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도대체 7살 아이가 초래할 수 잇는 위험의 정도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대로 된 사용법이나 대체 장난감을 제공하는 것 등 문제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 보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의 억지와 독선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하는 것.

전쟁분위기를 기회로 보수언론이 만들어 내는 불안, 불신, 상호비방,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도록 눈과 귀를 똑바로 열고 반전평화의 원칙을 기억하는 것,

내가 돌보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라크나 북한의 아이들과 살아가고 웃고 배우고 놀 권리가 있음을 기억하는 것,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보육교사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당신과 내가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윤 경·한국보육교사회 상임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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