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할인을 허무는 할리우드의 제작방식

지난 글에서 문화적 할인과 문화상품의 특수성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문화적 할인이라는 기제는 문화산업 혹은 문화교역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장벽은 물론 할리우드로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할리우드는 어떻게 이와 같은 장벽을 극복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물론 수많은 답변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들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을 것이나, 여기서는 문화적 할인과 관련하여 할리우드의 제작방식의 변화만을 살펴보도록 하자.


문화적 할인의 가장 큰 요인은 언어임은 지난 글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렇다면 언어적 장벽을 어떻게 우회할 수 있을까? 그것은 소위 “영화 언어”를 음성이나 문자언어라는 복잡하면서 지역적으로 특수한 코드 체계로부터 이미지와 사운드(언어가 아닌)라는 보다 원초적인 코드체계로 이전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주지하다시피 영화는 탄생기에 음성언어를 갖지 못했다. 물론 그 한계는 한 동안은 움직이는 영상 자체가 주는 충격만으로도 상쇄될 수 있었다. 즉, 초기 영화 혹은 원시 영화는 시각적(스펙타클적) 쾌락이라는 보다 원초적인 기제에 의존했다.

물론 음성언어가 없었던 30여년의 기간 동안(1895~1930년 전후) 영화는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을 꾸준히 개발했다. 단순하게는 자막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한 상황 전달에서부터, 의상, 소품, 배경 자체의 의미화, 카메라 앵글의 의미화, 카메라 이동, 편집방식의 개발 등. 이런 식으로 개발된 “영화언어”는 무성영화 말기에 완숙기에 접어들었다. 학자나 몇몇 감독들은 이와 같은 기법의 개발이야말로 다른 어떤 매체나 예술장르가 가지지 못한 영화만의 힘이라 생각했고, 당연하게도 유성영화가 나왔을 때 극렬한 반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몰랐던 것은 이미 영화적 언어가 이미 음성언어의 대체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초기(원시) 영화를 제외하고, 무성영화 기간 동안의 영화언어의 발전은 언어적 구상물인 내러티브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였으며 이미 그 자체로 언어에 종속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음성언어의 탄생은 영화언어의 내러티브 종속이 완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었다. 예컨대 196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영화 이론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영화 기호학은 이러한 경향의 상징적인 징후이다.

하지만 1930년대 음성언어의 광범위한 도입은 영화산업에 있어 예견치 못했던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 영화산업 수출이 위축된 것은 당연하겠지만, 유럽으로서도 당혹스러운 결과를 초래했다. 유럽은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막강한 산업적 힘에 저항하기 위해 ‘영화 유럽’이라는 슬로건 하에 제작과 판매, 관객을 통합하는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성영화의 도입은 자연스럽게 그 통합을 방해했고, 일시적으로 위축된 미국영화산업의 위력은 국가 단위의 시장 구성으로 되돌아가는 효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 같은 경향은 1930년대에 소비에트, 독일, 이태리 등에서 전체주의 체제가 들어서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국수주의 전달 통로로 영화를 이용하였다는 정치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 결과 영화산업의 단위는 명확하게 언어적 장벽으로 나뉘어졌고, 이는 거의 국가 단위와 일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할리우드가 소위 고전적 스튜디오 시스템 시기(대략 1920년대 중반에서 1950년대 중반 사이)에 택한 전략은 언어(내러티브)에 종속되는 영화언어의 개발을 더욱 가속화하는 방식이었다. 즉 내러티브를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제들이 특히 편집 영역에서 개발된다. 180도 가상선, 30도 규칙, 방향의 일치, 시선의 일치, 정사/역사, 설정 쇼트의 활용 등과 같은 할리우드 고전적 편집양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편집이 본질적으로 지닌 시․공간적 단절감을 극복하게 하여 편안하게 내러티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방식이 어찌나 교묘했던지 학자들은 할리우드의 편집방식을 보이지 않는 편집이라고까지 불렀다. 만약 영화언어를 실제 음성언어와 비교할 수 있다면, 할리우드가 개발한 영화 언어는 에스페란토어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한 기제는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지만, 심도 깊은 의미나 미묘한 뉘앙스의 결은 거의 전달할 수 없는...

동시에 내러티브의 상황이나 배경 자체는 대단히 간명해지고, 갈등은 개인적인 차원으로 축소되며, 메시지는 보편성으로 확대된다. 할리우드가 가족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가족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가족은 로컬리티(예컨대 미국 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회피하며, 동시에 로컬적인 특수한 문제를 제기할 때 생길 수 있는 다른 로컬의 수용이라는 문제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지나치게 자명한 영화(이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이론적 별명이다)의 제작규범과 메시지의 의사 보편성은 다른 지역의 문화적 장벽을 효과적으로 허무는 기제로 작용한다.

1970년대 후반 이후 할리우드는 블록버스터의 생산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감행한다. 이는 영화사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전환이다. 즉 블록버스터는 내러티브에 치중한 언어적 전통을 다시 원시 영화의 시각적 전통으로 되돌린다. 우리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스펙타클에 압도될 때, 우리는 칸트가 갈파했던 숭고미 수준의 지각적 체험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칸트는 지각이야말로 사람들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보편적 기제라 간주했다. 물론 이보다 더 문화적 할인의 장벽을 손쉽게 허무는 방식은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우리의 지각적 체험이라는 것이 너무나 쉽게 익숙해져버린다는 것이다. 자극에 맛을 들이면 더 큰 자극에만 만족한다. 할리우드는 일단 자신이 시작해버린 이 확대의 게임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천재적인 시스템(이 역시 할리우드의 별명이다)은 다음 세대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까?

조준형 / 영화인회의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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