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라던 '동성애자 해방세상', 우리가 만들겠다.



얼마 전 한 동성애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그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회원이자 올 3월부터 동성애자인권연대사무실에서 상근을 하며 동성애운동에 뛰어든 친구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충격적이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는 이제 갓 스물의 나이에 시조시인의 꿈을 가진 젊은이였으며,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동성애자 억압과 끔찍한 전쟁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진지한 활동가였다. 그는 죽음을 통해 동성애자를 냉대하고 차별하는 이 사회의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 절규했다.

그는 4월 25일 금요일 오후, 다른 활동가들과 메이데이 참가단을 준비하고 일상적인 농담과 대화들을 주고받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날 저녁 사무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는 24일 작성한 6장의 유서와 자신의 재산 34만원을 봉투에 넣어 동성애자인권연대에 남겼다. 27일이 되어서야 빈소가 마련되었고, 28일 부평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그는 그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갔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동인련 토론방에 올라오는 수많은 질문과 논쟁, 특히 종교와 관련된 토론에 지치지 않고 답변했다. 우리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법 동성애차별조항 삭제권고를 내렸을 때 기뻐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국회 앞에서 파병반대를 함께 외치며, 무자비한 경찰들의 폭력에 분노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쟁반대와 성적소수자에 대한 시조를 지어서 보여주기도 하고, 신문에 전쟁과 동성애자 차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투고하던 그의 열정도 생각난다. 전쟁반대집회에서 무지개깃발을 들고 앞서 행진하던 그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동인련에 힘내라는 쪽지와 함께 만원씩의 후원금을 보내며 인연을 맺게된 그는, 순수한 열정으로 동성애운동에 뛰어들었던 젊은 활동가였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한국의 동성애자들에게
언젠가는......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에요. 난 이승에서 사는 게 싫어서 이렇게 떠나가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중한 인생'을 보람되게 사세요.
난 그저 편안히 쉬고 싶습니다.
다들 수고하세요. 나 먼저 갈게요.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세대의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거 잊지 마시구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즐거웠어요.
아, 홀가분해요. 죽은 뒤엔 거리낌없이 당당히 말할 수 있겠죠.
'나는 동성애자다' 라고요.
더 이상 숨길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도 않아요.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몰지각한 편견과 씹스러운 사회가 한 사람을 아니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반성경적 반인류적인지......

고인의 유언 중에서


그는 유언장에서 아비규환 같은 세상이 싫고, 강자도 약자도 없는 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가 자살을 택하는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자신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상에 지쳐 죽음을 택하는 성적소수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사랑할 기본적 권리조차 가지지 못하고, 가정붕괴의 원인, 에이즈의 주범, 더러운 변태로 몰려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정신병원에 끌려가야만 하는 것이 이 사회 동성애자들의 현실이다. 실제로 동성애자들의 우울증과 자살률은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는 동성애자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자를 냉대하고 혐오하는 사회의 문제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더 이상 동성애자들이 차별 때문에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유서에도 썼듯이 그의 소원은 '동성애자 해방'이다. 그는 몇 번이고 동인련의 활동가들에게 열심히 싸워 줄 것을 당부했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또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때문에 우리에겐 절망할 시간이 없다. 그를 잊지 않는 것은 동성애자 해방을 위해 열심히 싸우는 것뿐이다.

우리는 하나를 더 당부하고 싶다. 자살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자살은 동성애자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 억압 없는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 고인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싸우고자 했고, 함께 투쟁하던 공간인 동인련 사무실에서 목숨을 끊었다. 동성애 억압에 맞선 투쟁만이 대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그의 희생 앞에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제 동성애자들에게 자살이 아닌 동성애자 해방을 위한 투쟁에 동참하기를 호소해야한다고 말이다.

추모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엔 한결같이 더는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있고 나서야, 이 얼마나 부당한 현실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수준이다. 고인은 아무리 두들겨도 꿈쩍 않던 동성애 억압의 문제에 돌팔매질을 했다. 그가 일으킨 파고를 우리가 이어가야 한다. 우리는 고인의 바램대로 청소년보호법의 동성애 차별조항이 완전히, 그리고 시급하게 삭제될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고인이 이라크 어린이들의 무고한 죽음에 반대하여 반전운동에 동참했듯이,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억압받는 자들과 언제나 함께 싸울 것이다. 동성애자 해방을 위한 투쟁 속에서 그의 영혼은 다시금 살아 숨쉴 것이다.

지난 메이데이집회에서, 우리는 "동성애 억압 없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배너를 들고 행진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아름다운 동지 육우당의 이름과 함께 투쟁할 것이다. 그가 바라 마지않던 "다른 세계"를 위해서!

지혜 /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전쟁반대 동성애자 공동행동 활동가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클리핑기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