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무엇이 문제인가


사진 : KBS노동조합 홈페이지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때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 집단의 과거가 '영광의 세월'과는 거리가 멀 경우 그러한 감정은 고통으로까지 증폭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전망은 과거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KBS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국민의 방송? 정권의 방송!

올해로 KBS는 공사창립 30주년을 맞게 되었다.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공영방송으로서 '법적인 신분보장'을 받은 지도 벌써 30년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30년 세월동안 그 신분보장은 허울에 불과했다.
정권은 끊임없이 방송, 특히 KBS를 장악과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독립성'조차도 실현되기 힘든 '꿈꾸기' 같은 것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의 수장자리는 정권의 전리품처럼 취급되었고, 정권은 사장을 통해 스스로의 이해와 논리를 KBS의 보도와 제작에 투영하고 관철시켰다. 그 사이 KBS에는 '정권의 방송'이란 관제적 이미지가 켜켜이 덧씌워져 왔다. 독재정권 시절 KBS는 철저히 왜곡과 편파를 통해 정권의 이익을 대변했고, 그에 따른 국민적 불신의 폭과 깊이는 점점 더해 갔다. '국민의 방송'이란 스스로의 규정에 대해 정작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는 역설, 그것이 KBS의 현실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80년대 중반, KBS로고가 찍힌 중계차가 시위대에 의해 불타는가 하면 '수신료 거부'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국민의 방송'이기를 포기한 KBS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당연한 표출이었다. 그 사건들은 아직도 많은 KBS구성원들의 기억 속에 잊지 못할 '모멸'로 침윤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모멸감은 결코 퇴행적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수치를 극복하려는 KBS인들의 몸부림과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데 대한 자기반성이 '90년 4월 방송민주화 투쟁'의 촉발로 이어졌다.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씻고자 하는 의지는 뜨거웠고 숱한 희생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폭압적인 정권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비록 현상적으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투쟁은 변화와 개혁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으며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자산을 남겼다. 멀지 않은 미래에 KBS가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 힘은 '90년 4월 방송 민주화 투쟁'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KBS의 또 다른 함정 - '기계적 중립성'

독재정권 시절 KBS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KBS의 '불의에 대한 적극적인 동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후에는 KBS의 '사회적 의제에 대한 소극적 회피'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박권상 사장 체제 5년 동안 KBS에 대한 내외부의 평가는 '기계적 중립성'이란 용어로 압축된다. '관제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온 KBS는 '기계적 중립성'이란 덫에 또 다시 걸려들고 만 것이다. 기계적 균형의 신화에 사로잡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우리사회의 현안들에 대해서 단지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소극적이고 어쩡쩡한 시각에서 접근해온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미군 여중생 살해사건','서해교전 사태'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사이 공영방송의 임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의제설정 기능'은 점점 약화되고 말았다. KBS의 뉴스와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우리사회의 문제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사회적 지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다. 박사장 체제 하에서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시사프로그램들도 소재선택과 제작기법 등에서 연성화된 경향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스스로에게 부여된 여론선도기능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박사장 개인의 철학이나 신념에서 기인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더 큰 문제는 사장 개인의 판단이 여과 없이 관철되는 KBS의 조직문화에 있다.
오랜 기간 KBS를 짓눌러온 '권력의 의지'는 KBS의 조직문화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병들게 했다. 어떤 조직보다 자율과 창의가 강조되어야 할 방송사가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민주적 의사소통이 단절된 조직으로 지속적으로 변질되어온 것이다. 정권에 의해 발탁된 사장은 KBS내에서 제왕적 권한을 행사해 왔다. 이 제왕적 사장 앞에서 상층간부들은 무소신과 보신주의로 일관해 왔으며 그러한 토양에서 제작진의 건강한 자율과 창의는 발붙일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이러한 조직문화의 폐해는 뉴스와 프로그램을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KBS프로그램들이 대체적으로 낡고 경직된 이미지가 강하고 실험성, 다양성이 부족하며 정치적으로는 무색, 무취를 가장한 완강한 보수주의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도 이러한 현실안주형 조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KBS의 진정한 개혁은 과감한 사내민주화를 통해 이러한 조직문화를 일신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TV 정체성의 위기

현재 KBS가 직면해 있는 가장 큰 위기를 '2TV 정체성의 문제'로 꼽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재의 2TV가 지나치게 상업적인 채널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1, 2TV간 차별화도 제대로 담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TV의 상업적인 이미지는 '2TV 분리론과 민영화론'의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다.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채널을 굳이 공영방송이 운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2TV는 끊임없이 민영론자들과 재벌들의 탐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KBS 2TV의 위기는 기간 경영진들이 취해온 2TV에 대한 이중적 접근에 기인하는 바 크다. 대외적으로는 공영적 성격을 표방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상업방송과의 경쟁을 부추겨온 결과다. 지금 2TV의 모습은 과도한 경쟁논리에 매몰되어 경쟁에도 실패하고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에도 실패한 형국이다. 오락, 드라마 장르에서 보다 건강하고 공익적이며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또한, 프로그램의 편성과 제작에 있어서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과감한 실험과 다양성 확보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건강하고 공익적이며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건전한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러한 2TV의 문제는 일정부분 현재 KBS의 기형적 재원구조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은 정치적으로도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자본으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KBS의 재원구조는 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확보하기에는 몹시 취약한 구조에 놓여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몇 줄의 글로 압축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KBS 걸어온 길에는 빛과 그림자, 또한 공과가 공존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공영방송으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생각할 때 '공'보다는 '과'가 훨씬 더 무거우며 스스로 그 책무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겸허하게 반성코자 하는 것이다.
새사장의 취임과 더불어 KBS는 '개혁'이라는 대전환기에 처해 있다. 그것은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KBS가 개혁과 변화를 통해 공영방송으로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참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데에는 안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부에서 이러한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노력할 것이며 외부의 준엄한 질책과 조언을 기대한다.

이훈희 / KBS노동조합 정책실장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클리핑기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