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공연 전성시대



지난 4월 1일에 있었던 ‘빈필오케스트라’의 월드컵 상암경기장 공연에는 우리나라 클래식 공연 역사상 최대 유료 관객인 총 4만 6천여 명이 관람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데다, 지휘자가 주빈 메타였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장영주의 협연이라는 프리미엄이 매혹적었던지, 글래식 관객 저변이 그리 투텁지 못한 한국의 공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빈필의 공연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이 공연이 기념비적이었던 것은 ‘규모의 경제학’ 때문이다. 공연에 투입된 순수 제작비만도 30억원을 웃돌았고, 빈필의 1회 연주 캐런티는 100만달러였으며, 공연음향장비가 100억원대에 육박했고, 최고 18만원하는 로얄석은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매진되었다.

그러나 빈필공연으로 촉발된 ‘규모의 경제학’은 서막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 주 8일부터 11일까지 공연될 예정인 장예모 연출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총 50억원의 제작비 물량을 투입, 상암경기장에 중국의 자금성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화려한 무대를 제작한데다, 공연 출연진과 스텝만 1000여명을 자랑한다. 최고가인 50만원석과 30만원석은 공연 3개월 전에 이미 전석 매진되었다. 블록버스터 공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 가을에 선 보일 오페라 <아이다>는 총 제작비 60억원에 1500명의 출연진, 코끼리와 낙타 등이 실제로 출연하는 초대형 무대를 꾸미고 있다.

작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초대형 공연예술 붐은 예술의 본격 엔터테인먼트화를 알리는 지표가 되었는데, 이러한 공연예술의 상품화는 공연예술시장에 대기업, 금융투자자본의 유입에 따른 것이다. 이른바 공연예술의 스펙타클화는 대중의 문화적 수준의 요구에서, 공연인프라의 성숙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전적으로 투기성 금융자본의 유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작년 공연예술의 산업적 선언의 산파역할을 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총 제작비 170억원에 19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공연기획을 담당한 ‘제미로’는 모기업이 오리온 그룹이며, 최고의 영화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최근 공연기획사 설&컴퍼니가 호주의 RUC와 파트너 십을 맺고 진행하는 뮤지컬 <캣츠> 지방 순회공연에 5억~1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며 ‘CJ클래식’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공연예술 시장에 뛰어들었다. 오페라 <투란도트>는 국내 공연 사상 펀딩에 의해 만들어지는 첫 작품으로 산은투자가 먼저 제작에 참여한 데 이어 ‘KTB’, ‘Q&S’, ‘BTIC’ 등이 가세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형공연들이 공연관객을 증가시키고, 문화적 볼거리의 수준을 높였다는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데다, 국내 관객들은 어쨌든 10만원이 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할만한 경제적 예의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라, 공연예술의 블록버스터화를 대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연예술의 블록버스터화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공연제작과 유통과정에서 선택가능한 한 사례, 말하자면 대형공연으로 돈을 벌고 싶은 문화산업가들의 공공연한 비지니스 전략의 한 사례 정도로 등장했다면 모르겠지만, 그 자체가 독점적인 지위를 강화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형식의 공존을 파괴한다면 대형공연 이벤트는 적어도 문화적 공공성의 차원에서는 ‘공공의 적’이라 부를 만한다. 사실 막대한 제작자본이 투여되고, 홍보매체를 독점한 몇몇 공연예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연들은 물량공세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면서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거액의 로얄티를 주고 유치한 외국 브랜드 공연은 제작비의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개인의 취향에 근거한 공연의 종다양성은 과거에 비해 오히려 더 큰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공연예술이 거대 문화자본을 접수했다기보다는 거대 문화자본이 공연예술을 접수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지적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공연관람은 개인의 문화적 취향의 오랜 축적의 결과라기보다는 사교생활의 일부분으로, 애인을 위한 한밤의 추억의 지표로, 룸살롱에 질린 바이어를 위한 기업인들의 접대수단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형공연의 흥행은 작은 공연의 저변 속에서만, 작은 공연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문화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문화적 힘을 축적하는 새로운 변화로 읽을 수 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 일고 있는 대형공연 붐은 그런 맥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것은 오히려 작은 공연들, 실험적인 공연들을 희생시키고,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결국 대중들에게 쇼비지니스로 산화하는 ‘드라이아이스 쇼’와도 같아 보인다. 한국에서 대형공연의 전성시대가 역으로 공연생태계의 몰락을 알리는 생생한 증거라는 점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동연 /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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