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공공의 권력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1> 20살 이후로 공권력을 미더워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이론보다 앞서는 본능적인 불신이었다.

그리고 나는 신도시 건설을 위해 쓸만했던 모든 것이 철거되고 있는 화성에 살고 있다.
화성은 연쇄 살인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살인의 추억'처럼. 요즘처럼 비가 낮게 내리고 어제까지 있었던 동네 초입의 공장이 이리 저리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만으로 뒹굴고 있을 때 늦은 밤의 귀가는 을씨년스럽다. 국가의 공권력이 데모 진압에 혈안이 되어 촌 동네 여자들이 당하는 무참한 폭력에는 무방비 상태였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영화가 개봉되어서 일까...


2> 선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학생이 있었다. 대부분의 성범죄가 그렇듯이 증거는 없었지만 정황은 사실인 듯했다. 아동상담전문가, 변호사, 여성단체 활동가, 의사들이 여러차례 그 학생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피해사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선후배들도 증인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경찰에서 수사 중이던 이 사건은 어느 날 난데없이 검찰로 넘어갔고, 검찰은 선생에게 사건을 은폐할 수 있는 인신의 자유와 시간을 보장해 주었다. 여학생은 증인으로 나서 주겠다는 선후배들을 만날 수 없었고, 검사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여학생을 모욕했다. 검사 앞에서만 진술했던 여학생의 사생활은 다니던 학교에 발 없는 소문으로 떠다녔고 여학생은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처음부터 선생과 관련협회의 로비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사건이었다.

결국 검찰은 선생을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 그래서 확실하게 우습게 보기로 맘 먹었다.

3> 분위기 좋았다.
이대로 가면 6년 동안 집으로 오지 못하는 아이를 기다리다가 연세대 노천에서 농성까지하는 애비와 애미의 눈시울이 마르겠구나 생각했었다. 한총련 출범식에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을 초청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는 학생들이 심하게 오버하고 있구만, 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강령이나 노선조차 변화되는 마당에 초청이야 못하겠는가.

그런데 역시 대법원이었다. '10기 한총련은 그 강령 및 규약의 내용과 표현을 온건한 방향으로 개정하려고 했으나 이것은 합법적인 단체로 인정받아 활동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조치일 뿐이다.'라고 판결했다. 점잖게 썼지만 풀이해 보면 "처음부터 불순했던 것들은 종신으로 불순하며, 완전히 씨를 말리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공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은 그리하여 내 개인의 소신, 공공의 권력에 대한 불신을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으로 만들어 주었다.

정말 싸우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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