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스포츠투데이(폭행 물의를 일으킨 선수가 상벌위원회 자리에서 화해를 하고 있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프로야구가 일부 선수들의 폭력문제로 골치인가보다. 두산의 모 선수는 올 초 해외전지훈련에서 음주폭행에 휘말려 하와이경찰에 벌금까지 물고 나왔다 하고, 시즌 시작 후 기아의 모 선수가 폭행에 연루되어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SK의 어느 선수는 나이트클럽서 만난 여성을 성폭행했다가 다행히(?) 합의에 성공해 풀려 나온 모양이다. 모두들 경찰서에서 '죄인' 취급당하며 응분의 수모를 당했으리라.
비슷한데 조금 다른 경우가 있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의 주장 유모 선수(월드컵 대 폴란드전 둘째 골의 주인공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상대의 거친 태클에 뚜껑이 열려 사과의 표시로 손을 내미는 상대방에게 발길질에 주먹질을 함께 주었다. 결국 같이 퇴장 당하는데 당당하게 나가는 상대선수의 그 '꼴'에 속이 뒤틀려 경기장 밖에서 또 쫓아가 주먹질로 끝끝내 분풀이를 했다. 며칠 뒤 리그에서 중징계 결정을 내려 유모 선수는 벌금 820만원에 다섯 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다 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왜 그 선수는 경찰서에 안 끌려갔지? 몇만 관중에 그 몇 십 배는 넘을 시청자가 증인인데 왜 경찰은 가만히 있고 프로축구연맹이 벌을 주지? 주먹질에 발길질에, 또 일 다 끝난 다음에 다시 쫓아가 깐 데 또 까는 '악질' 폭행범인데 왜? 하긴 권투 같은 스포츠는 피가 철철 흘러도 이기기만 하면 박수 받고, 안 때리면 좀 때리라고 당장 경고가 들어오니 스포츠와 폭력을 어찌 정리해야할지 애매하다.
거의 모든 프로스포츠는 어린이, 청소년, 여러분에게 꿈·희망·미래를 들먹이며 친해지려고 애쓴다. 그리고 경기장 폭력은 용납하지 않으며 단호하게 대처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경기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선수가 있다면 벌금에 몇 게임 출장정지가 아니라 아예 '제명'해야하는 것 아닌가? 분명한 '폭행'에 대해 벌금에 몇 게임 출장정지 물리는 것은, 내가 보기엔 이렇다. "뭐 정 못 참겠으면 한 번 기분 풀어. 대신 벌금은 내야되. 그래두 사람들 보니까 웬만하면 좀 참구."
분명 스포츠는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뿐 아니라 적어도 경기장 안에서의 폭력이라면 그 행위자들을 보호해준다. 경찰에 넘겨야 할 선수들을 얼렁뚱땅 징계하고 계속 뛰게 해준다. 어떤 측면에선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라운드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벤치에 앉아 있으면 벌금이 떨어지기도 하고 야구에서는 동료들의 요구에 의해 빈볼이 던져지기도 한다.
스포츠에서 드러나는 폭력의 일상화는 결국 남성성과 맞물려 들어간다. 스포츠는 이제 사회에서 몇 남지 않은 남성성의 장이다. 멀쩡하던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갑자기 짝다리에 침 찍찍 뱉고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것처럼 스포츠도 남자를 더욱 남자답게(?) 만든다. 아주 노골적인 남성성의 과시가 빈번하고 때론 단순무식한 꼴통 남성 우월주의가 유치찬란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하이파이브도 모자라 팔뚝 부딪히기, 배 부대끼기, 삼진 아웃 후 배트 부러뜨리기, 득점하고 옷 벗어 재끼기, 침뱉기, 집단 패싸움하기 등등. 경기장에서의 무식한(?) 폭력성 내지 남성성은 선수의 가치를 되려 올려놓는 경우도 잦다. 우선 구단과 동료로부터 인정받는다. 그리고 상품성이 오르기도 한다. 월드컵 대 미국전에서 보여준 거친 플레이와 상소리 구사능력, 그리고 미국놈 여섯에 둘러 쌓여도 맞장불사의 그 남성적 모습 덕분에 김남일은 무수한 대한민국 여성을 자지러지게 만드는 '남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박찬호는 1999년 나이가 열살이나 많은 상대투수에게 발차기를 하고도 네티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LA에서의 인기도 그 덕에 올라갔다. 그 때 만루홈런까지 맞아 6:0까지 벌어져 열 받은 김에 발길질을 해 퇴장 당했는데 결과는 다저스의 역전승이었다. 경기 후 동료들의 반응이 가관(?)이다. "찬호가 동료들의 투지를 되살렸"고 "하나로 뭉치게" 했단다. 며칠 후 열린 팬사인회에서도 LA의 젊은 백인팬들이 "챈호, 챈호"를 연호했단다. 거 참 이해 못 할 남자들이야.
'만약 남자가 생리를 한다면'이라는 궁금증을 풀어쓴 책을 본 적이 있다. 갑자기 생리가 자랑스러운 것이 될 것이고, 남성들만의 신성한 고통이 될 것이며 암보다도 더 많은 연구비가 생리연구에 투입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럴 듯 하다. 내가 있던 부대가 더 힘들었고 내가 더 많이 맞으며 군생활 했다고 갖은 거짓말까지 만들어 내던 것처럼, 아마도 누가 더 양이 많은가를 놓고 밤새 논쟁을 벌이기도 할 것이고 진검승부도 불사할 것이다. 아마도 여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하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니들이 생리를 알어!?"
남자들은 욕설에 주먹질, 발길질을 해도 인기가 오른다는데 나도 경우를 한 번 바꿔 보겠다. 어느 골프대회 최종일 박새리가 우승을 다투며 박빙의 승부를 펼친다. 그런데 상대방이 들릴 듯 말 듯 욕을 하고, 폼 다 잡고 치려는데 얄밉게 살짝살짝 움직이고 해서 가뜩이나 열 받아 있는데 마침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길래 상대방(애니캬 소렌스턈!)을 주먹과 발로 두들겨 팬다. 사람들이 말려 두 선수를 떼어 놓았는데 소렘스턈이 인종차별적 욕설을 해 (저런~) 박새리가 쫓아가 다시 주먹을 날린다. 이러한 비숙녀적인 행위로 인해 LPGA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3개 대회 출장정지에 벌금 8천달러를 부과한다. 박새리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소렌스턈과 팬들에게 사과한다. 언론도 박새리를 나무라지만 젊은 층에서는 옹호하는 소리도 높다. 특히 어느 네티즌은 박새리가 좀 더 '제대로' 팼어야했다고 주장한다. 여성다움이 증명된 박새리는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지고 특히 남고생들 사이에서 그녀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끊겼던 광고섭외도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희준 / 동아대 체육대학 교수 chunghj@daunet.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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