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숙한 인물들의 성장 만화
<유리가면>과 <피아노의 숲>은 서로 경쟁 구도에 있는 두 인물의 승부 스토리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두 인물의 성장 스토리이다. 히메가와 아유미와 아마미야 슈우헤이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부모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능력이 되도록 정식 앨리트 교육을 받고 재능을 키워온 인물들이다. 모두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하지만 이들은 잘난 부모도,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연기에 대한, 피아노 연주에 대한 열정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몰입하고, 표현할 줄 아는 기타지마 마야와 이찌노세 카이를 만나고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보다는 서로를 통해 깨닫고,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어느새 서로가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이다.
고전적 순정만화 <유리가면>, 현대 순정만화의 사실적 심리 묘사 <피아노의 숲>
<유리가면>은 1970년대에 시작해서 작가가 스토리가 안 풀려 10년간 연재를 중단했다가 1990년대에 와서야 다시 연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도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다. (하도 연재가 늦어지니까 중간에 작가가 죽었다는 말까지 떠돌았을 정도-_-;) 그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래도 <유리가면>에는 순정만화의 고전적 배경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이나 멋진 인물 뒤에는 각종 꽃들이 괜히 등장하고 (빌딩 숲 배경이 갑자기 화원으로 돌변하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여주인공들은 눈이 얼굴의 1/2을 차지하며, 멋진 말을 할 때는 갑자기 주변이 반짝거리기까지 한다!

-> 이걸 보라! 물컵 하나 들고 어찌나 반짝거리는지!!-_-;;
게다가, 혹시라도 독자들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알지 못할까봐 등장인물들이 기꺼이 스스로 나서서 상황 설명을 장황하게 해주기도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대표적 인물, <슬램덩크>의 안 선생을 떠올려 보라. 그이는 행여라도 독자들이 농구를 잘 모를까봐 상대팀의 전략이나 각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일일이 그들의 전략과 행동을 친절히 파헤쳐 준다. '앗, 아니 저것은! 이렇게 해서 저렇게 하면 그렇게 될 줄 알고, 이러저러그러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이럴 수가! 저런 거였군!'.. 머 이렇게 말이다. -,.- <유리가면>의 관객들이나 제작사 관계자들, 평론가들, 동료 배우들 등등도 이들의 연기를 보며 그들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지 일일이 입에 발리게 설명해주고, 칭찬해 주기 바쁘다. 어찌나 고마운지!!

반면 <피아노의 숲>은 매우 사실적이다. 슈우헤이도, 카이도, 아지노 선생도 그 누구에 대해서도 신비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심리와 노력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령, <유리가면>이 마야 연기의 천재성에 대해 묘사할 때, 다른 등장인물을 통해서 '아..저럴 수가.. 저 아이는 어느새.. 스스로 저런 연기를 터득해서 저렇게 훌륭한 연기를 펼쳐내고 있구나..'감탄하며 마야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지 독자들에게 세뇌시키는 방식이라면, <피아노의 숲>은 카이의 연주를 보며 슈우헤이가 하게 되는 고민과 그 고민을 통한 방황과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래서, 아유미와 마야의 선생 츠기카게는 두 아이에게 일부러 대 놓고 경쟁을 시키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지만, 카이의 선생이자 두 아이 모두의 영웅과 같은 존재인 아지노는 두 아이에게 개입하는 존재가 아니다.
특정한 경쟁 목표를 둔 것이 아닌, 진정 자신에게 자랑스러울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두 아이의 고민과 성장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메이저가 되기 위한 <유리가면>, 마이너리티와 함께하는 <피아노의 숲>
<유리가면>에서 사회의 다양한 주변부 인물들은 그저 엑스트라일 뿐이다. 마야는 어머니와 중국집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연기자가 되면서 메이저 사회로 진입하고, 마야가 연기 생활을 하며 겪는 다양한 수난 속에서도 주변부 연기자들이 그녀의 따뜻한 동료가 되어주기는 하지만 결국 그들은 마야가 주류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 잠시 지나가는 엑스트라들일 뿐이다.

반면, <피아노의 숲>에서 카이는 내내 사회의 주변부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한다. <유리가면>에서는 주변부에 있던 마야가 중심부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피아노의 숲>에서는 중심부 사회에 있던 슈우헤이가 카이를 따라 주변부의 세계로 들어와 많은 것을 배운다.
늘 바다에 가고 싶어해서 자식의 이름마저 카이(바다)로 지었지만 바다에 갈 수 없는 그의 어머니 레이코, 숲의 가장자리에서 구박을 받으며 살면서도 카이를 격려해 주었던 아리사, 카이가 피아노를 가르치는 왕따 소년 다이키, 그리고 아직 전개되지 않은 스토리에서 카이의 연인이 될 듯한 문신 기술사 사에...
그들은 흔히 사회에서 가장 어둡고 우울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밝고, 열심히 살면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며, 삶에서 터득한 '진짜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카이는 명문 학교에 가서도 계속 이들과 함께 하며 여장을 한 채 학교에서 금지하는 '까페 연주 아르바이트'와 '피아노 조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만의 연주'를 찾기 위해 고민하느라 한동안 피아노를 칠 수 없었던 슈우헤이에게 깨달음을 준 것도 바로 이들이었다. <피아노의 숲>은 이렇게, 사회 주변부 소외된 이들의 '진짜 삶' 속에 두 인물들이 자리하게 함으로써 연주와 삶을 연결시키고, 삶에 대한 진정한 고민과 생생한 삶의 모습이 담긴 연주야말로 진정 훌륭한 연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곁다리 하나 붙이며
"첸 카이거 감독이 대중에게 돌아왔다"는 그 영화, <투게더>를 보았다. 샤오천이 아버지를 떠나 선생의 집에서 호위호식하며 좋은 옷 입고 아무 걱정 없이 연주만 했다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던들 대중을 감동시키는 연주를 할 수 있었을까?
샤오천의 최고의 연주는 세계 무대로 데뷔할 절호의 기회인 콩쿨 무대에서의 연주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만을 위한 공항에서의 마지막 연주. 모두의 마음속에 숨막히는 감동을 넣어 준 바로 그 연주였으니!!
틈새 / 문화사회 편집위원 rebel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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