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지난 2월에 열렸던 WSIS 2차 준비회의 모습이다.
2003년 12월 유엔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서 유엔은 ‘새롭게 형성되어가고 있는 정보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질서를 어떠한 원리에 따라서 규정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정보사회의 효과적인 성장과 정보격차의 해소를 위한 비전과 핵심원칙에 대한 선언을 채택하고, 여러 가지 실천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이번 정상회의에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의 3자 개입구도를 통해서 정보사회의 틀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 선언이 여타 유엔의 선언과 마찬가지로 법적인 강제력은 약하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 합의된 기준으로서 각국의 정보통신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는 올해 12월에 열린다. 그 전에 지역별 국가들의 의견 수렴 및 사전 논의를 위해서 2002년 7월 1차 준비회의, 2003년 2월 2차 준비회의가 이미 열렸다. 또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럽 등의 지역 준비회의를 가졌으며, 올해 9월 3차 준비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각 지역회의의 성과로 제출된 문서들을 통해서, 9월에 논의될 선언문과 실천계획에 대한 초안이 거의 마무리 된 상황이다. 이 선언문과 실천계획에 개입하기 위해서 전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작년 초부터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정부문서에 대한 코멘트 및 시민사회 자체적인 선언문과 실천계획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에 있다.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를 통해서 우리는 단지 정보사회에 대한 비전과 원칙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인권을 구체화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시장중심의 세계화 논리가 가져오는 정보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를 하고, 정보통신기술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인권침해 현상과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원칙 및 실천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정보사회는 사회정의와 평등, 평화와 인권 등에 기반한 사회이다. 또한 이를 위한 소통의 권리(communication rights)는 민중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삶을 증진시키는데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정보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는 정보통신기술 자체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개발의 증진에 이용될 수 있는 기술 개발 및 인권에 기반한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와 그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민주적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감시기술의 발전은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히 침해할 수 있다. ‘국가안보’, ‘불온정보’라는 이름으로 통과되고 있는 인터넷 관련 새로운 법률들은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이라는 미디어의 열린 속성을 위협하고 있다. 점점 강화되어가는 지적재산권 체계는 정보에 대한 공평한 접근은 방해하고 있으며, 정보사회에 있어서 또 다른 격차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보사회의 이슈들은 아직까지 많은 논쟁의 지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체계적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두 번에 걸쳐서 열린 1, 2차 준비회의를 살펴보면, 이런 정보사회에서 인권과 관련된 문제제기들이 선언문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을지,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감시와 프라이버시, 공적영역의 확대와 지적재산권체계의 갈등, 네트워크보안과 정보보안 등과 관련된 사안들에 있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진영의 관점의 차이가 아직까지 별로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WSIS 유엔 사무국은 이번 정상회의의 성공여부는 각국의 정상 등, 비중 있는 인사들이 12월 정상회의에 얼마나 참여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WSIS 선언문 및 실천계획이 각국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담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선언문과 실천계획에 대한 논의가 아직까지 추상적으로만 진행이 되었을 뿐,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논의는 거의 진전된 바가 없는 상태이다. 2차 준비회의는 시간이 촉박하여 많은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3차 준비회의 이전, 7월에 중간회의 (Inter-sessional Meeting)을 한번 더 가질 예정이다.
유엔은 이번 정상회의에 정부, 시민사회, 기업 등 3자 개입구도를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시민사회진영의 공식회의 참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경계하고 있다. 지난 2월 17일부터 28일까지 2주 동안 열린 2차 준비회의의 상황을 살펴보면, 공식회의에서 시민사회진영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전체를 통틀어서, 단 30분만이 주어졌다. 또한 선언문 및 실천계획 작성을 위한 초안위원회(Draft Committee)에는 한명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서 시민사회진영의 항의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구체적으로 반영된 것은 거의 없었다. 작년 1차 준비회의 때 논의된 ‘절차와 인가에 대한 규칙 (Rules of Procedure and Accreditation)’에서도 시민사회진영의 참여를 무척 제한하여,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향후에도 시민사회 등 옵져버(Observer)의 참여문제를 놓고 계속해서 첨예한 공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시민사회진영의 이슈는 ‘유엔이 개최하는 공식회의와는 별개로 시민사회진영의 독자회의 (Counter Summit)을 개최하자’는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는 공식회의에서 시민사회진영의 배제에 대한 강력한 항의와 WSIS 본회의에서 시장중심적인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인한다고 본다. 또한 과연 정부의 이런 교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실제 시민사회진영이 고민하는 인권을 기초로 한 원칙들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겠느냐라는 회의적 전망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는 몇가지 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최근 국제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실제로는 정보사회와 관련된 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은 그렇게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정책들이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문제들만 보더라도 유엔의 구조안에 있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 WIPO)보다도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의 원리로 관철된 WTO의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약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 TRIPs)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소수의 강대국 중심으로 논의되어지는 틀을, 최소한 각국이 공평하게 참여하고 논의할 수 있는 유엔의 틀로 가져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WSIS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시민사회진영에서도 정보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발전되었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사회의 이슈가 단지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된 것으로만 간주되었던 경향에서, 환경, 여성, 장애, 노동, 문화, 교육 등 사회의 대부분의 영역과 관련된 이슈라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이번기회를 통해서 시민사회진영에서도 각 진영과 관련된 정보사회의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한 진단과 검토 및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최근, 5월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정보사회 세계정상회의를 위한 한국포럼을 열렸다. 이번 포럼에는 정부, 시민사회, 민간부문(기업) 등이 공정하게 참가하여 하나의 수렴된 의견을 모아냈다는 데에서, 국제적으로도 아직까지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모범적인 사례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정보사회와 관련된 논의에 있어서 세계적인 논의의 수준을 앞설 수 있을 만큼의 역량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시민사회진영은 정보사회에 대한 세계적인 논의에 바람직한 비전과 원칙을 제시하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단지 유엔이 개최하는 정부차원의 정상회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진영의 진보적인 목소리를 수렴하고 보다 강력한 연대를 통해서, 인간적인 정보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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