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부시, 바그다드

미국의 러시아인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자유롭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브레즈네프의 소련을 떠났다는 러시아인들이 이제 미국이, 부시 대통령이 바로 과거 자신들이 떠났던 러시아이며, 브레즈네프와 같다고 말한다.

1991년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 살고 있는 니나 크루시체바(Nina Khrushcheva)는 2003년 5월 19일자 <네이션>에 발표한 '브레즈네프, 부시, 바그다드’라는 글에서 크레믈린 지도자들이 “제국주의, 사회주의, 세계 평등, 평화, 안보 등의 단어를 마치 고장난 레코드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듯 끊임없이 반복”했던 것처럼 백악관의 지도자들의 머릿속에는 “악, 자비, 테러, 국가안보, 해방, 민주주의 진작 등, 몇 가지 키워드가 모아져 있는, 보이지 않는 테이프가 있는 듯이 보인다”고 말하며,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하고 묻는다.

니나 크루시체바는 미국이 현재 사용하는 방식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목적’이라고 하는 ‘독재의 방식’임을 지적한다. 또한 러시아에서 십여 년 동안 ‘미국식 해방’을 적용하려고 했음에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이라크의 상황전개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눈을 보내고 있다. <편집자>



*‘부시네프’, 이미지 합성.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브레즈네프의 소련을 탈출했다. 그런데 이제 미국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그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로만 카플란(Roman Kaplan)이다. 레닌그라드(오늘날의 페쩨르부르그) 출신인 카플란은 뉴욕시에서 ‘러시안 사모바르’라고 하는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이 레스토랑은 여행객이나 이민자 등 러시아인이나 동유럽 출신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로만 카플란은 이 레스토랑을 1986년 두 사람의 소련 이민자와 함께 열었다. 한 사람은 고인이 된 시인 조셉 브로드스키이며 다른 한 사람은 무용가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다.

카플란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우리에게 이상향이었어요. 자유의 마지막 프론티어였던 거죠. 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삼십 년 전에 내가 ‘브레즈네프의 세계(Brezhnevland)’를 끝내기 위해 소비에트를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요!”

1991년 나도 미국의 자유를 붙잡기 위해 소련을 떠났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는 고르바초브의 글라스노스트가 한창이던 때다.) 그것은 정치와 상관없는, 나 자신이 되고자 하는 어떤 자유였다. 그런데 오늘날 나도 똑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러시아에 체재하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당황하고 있다. 그들은 공산당원들을 파멸시키는 미국의 원조를 환영했지만, 이제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뒤, 백악관이 크레믈린을 비난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 즉 팽창주의적인 외교정책과 여론에 대한 무시, 선전에 사용하는 레토릭, 조작 등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있다.

로봇과 비슷한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방송을 꺼버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텔레비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출현하면 꺼버림으로써, 과거와 같은 상황판 위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시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악, 자비, 테러, 국가안보, 해방, 민주주의 진작 등, 몇 가지 키워드 모아져 있는 보이지 않는 테이프가 있는 듯이 보인다.

소련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크레믈린의 지도자들도 이와 유사한 단어와 캐치프레이즈를 수십년간 계속해서 반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브레즈네프도 전기 소켓에 끼워져 있는 것처럼, 제국주의, 사회주의, 세계 평등, 평화, 안보 등의 단어를 마치 고장난 레코드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듯 끊임없이 반복했다.

부시가 악의 독재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말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가 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그런 말들은 끊임없이 반복하는, 기계적인, 브레즈네프와 같은 특질로 말미암아 거의 믿을 만한 것이 못되고 있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는 ‘강력한’ 이유를 대량살상무기에서 테러로 또 민주주의로 바꾸면서 왜곡된 증거를 바탕으로 일관성도 없이 주장할 때는 특히 그랬다.

“모든 선전은 진실을 말할 때조차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던 조지 오웰이 옳았다. 신어(新語, newspeak)는 크레믈린의 용법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말이 백악관을 적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신어란 조지 오웰의 작품인 <1984년>에 나오는 말이다. 오웰은 정부 관리가 여론 조작을 위해 쓰는 애매한 표현법을 비꼬기 위해 이같은 말을 새로 만들었다. <1984년>의 부록에는 ‘신어의 원리’가 붙어 있다. 신어는 새로운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기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유’는 정치적 자유나 정신적 자유가 아니라 ‘이가 없는(free from lice)' 개와 같은 용법으로만 쓰인다. 역자 주)

전쟁에 대한 단호한 메시지는 브레즈네프가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할 때와 비슷하다. 양쪽 모두 공개적인 토론을 결여하고 있으며, 말단까지 통제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은 분명 석유와 돈과 힘이라는 고귀하지 않는 동기와 더불어 이라크의 해방이라는 고귀한 동기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주의 형제애라는 생각도 또한 본래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것이 어떤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펼쳐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름 아니라 동유럽에서 거두었던 미국의 성공이라는 미덕 때문에(그리고 그것이 유럽이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부시가 ‘평화와 자유’라고 하는 ‘고귀한 동기’로 백지위임장을 요구할 때 거기에는 분명 ‘소비에트’ 방식의 어떤 것이 있다.

나를 오해에 빠드리지 말기를. 나는 그 차이를 인정한다. 여기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고 소련에서 그랬던 것처럼 살해되거나 강제 노동수용소에 감금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프로세스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떤 쓸쓸하면서도 희망 없는 느낌은 (수개월 동안 전세계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항상 불가피한 것이었다) 30년 전의 브레즈네프 체제나 오늘날의 부시 체제, 이 양체제의 특징이다.

처음부터 백악관은 한 국가를 자유롭게 폭격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망각한 채 수단을 정당화하는 목적이라는 ‘독재의 방식(autocratic formula)’을 사용했다.

피터 대제와 스탈린은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써 러시아를 서구화하고 산업화하려고 했다. 공산주의가 종말을 고한 초기의 도취적인 분위기가 지난 후,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일반 국민과 함께 정식으로 국가의 미래를 논의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문제가 많은 것이 되고 말았다.

2003년이 되었음에도 러시아는 여전히 체첸과 2백 년 묵은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대통령은 자유와 언론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 국민들은 여전히 최상층에 의해 지배되는 편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식 해방(American liberation)’을 위해서 수년을 보냈다. (그리고 러시아는 명목상이기는 하지만 유럽의 일부다.)

그러니 이라크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한번 상상해보라. 이라크에는 민주적인 과정을 실행에 옮길 지도자도 없으며, 비록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행복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이라크 국민에게는 책임있는 정부나 시민권의 경험도 없으니 말이다.(번역 안찬수)

지오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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