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 정보인권과 함께 가자 ③주민등록번호 문제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 신분 확인을 위한 수단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해왔고 또 그 요구에 응해왔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면 국가나 민간이 구축해놓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에 담겨 있는 개인의 신상과 행적에 관한 모든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돼 있다. 대부분의 데이터베이스가 주민등록번호를 모든 개인정보의 핵심 키 필드로 배열 기준을 삼고, 데이터베이스들을 서로 연결하는 고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주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주민등록번호는 전국민에게 중복 부여되지 않는 유일 독자성을 갖고 있고, 일생 동안 변하지 않는 영구성을 띠며, 전속성으로 개인을 특정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국가 통제 및 감시체제에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국가행정에서 개인 식별을 위한 수단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나 신용조사기관들이 주민등록번호 데이터베이스를 본인 확인 수단으로 민간업체에 유료로 제공하는 것은 중대한 정보인권 침해행위로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이은우 변호사는 이런 관행을 고치기 위해 “먼저 ‘주민등록번호의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공공기관부터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말도록 하고, 각종 데이터베이스에서 주민등록번호를 개인 식별이나 연결고리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며 “검찰과 법원에서도 주민등록번호 유출에 대해서는 중대한 정보인권 침해로 인식해 강력한 처벌과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 주민등록번호 유출 사례=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한 개인정보 도용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그 폐해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찰은 당시 수배중이던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 간부들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적힌 전단지를 전국에 뿌렸고, 이를 본 네티즌이 인터넷에서 신분을 위조하는 데 악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개인 정보인권에 대한 경찰의 무감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2000년 5월에는 주민등록번호 생성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재하지 않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만들어 핸드폰을 구입한 뒤 되파는 수법으로 범죄에 악용한 사례가 경찰에 적발됐다. 주민등록번호 생성 프로그램은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수십 종이 유통되고 있다.
◇ 외국의 경우=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국민 고유번호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또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민간기관도 신분을 나타내는 일련번호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인적사항을 추출하거나 여러 데이터베이스의 연결고리로 사용할 수 없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주거등록 제도와 국가신분증 제도를 두고 있지만 각 제도는 서로 엄격하게 분리돼 있고, 개인별 고유식별번호도 두고 있지 않다. 일련번호를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증’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새 신분증을 발급할 때마다 새 번호가 주어지도록 했다.
프랑스는 1979년 이름과 출생일만 포함된 컴퓨터 가독형 개인신분 확인카드 발급을 계획했으나 그나마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미국은 사회보장번호가 개인정보에 대한 식별자 구실을 하지만 법으로 공개를 금지하고 있으며, 법령이 정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회보장번호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겨레 차한필 기자 hanphi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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