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 「호텔 아프리카」by 박희정



이야기로 엮인 이야기

앨비스 프레슬리를 보기 위해 대도시로 상경한 시골 소녀 아델라이드는 우연히 클럽에서 고아로 자라난 흑인 가수 트란을 만난다. 한 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린 아델라이드는 곧 트란과 동거를 시작하고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행복은 잠시. 트란은 공연 중 감전 사고로 돌연사를 당하고 만다. 사랑하는 트란을 잃은 아델라이드가 뱃속의 앨비스와 함께 귀향하여 연 숙박시설의 이름이 바로 '호텔 아프리카'이다.

이 이야기는 그 '호텔 아프리카'를 머물다 간 이들과 앨비스의 유년시절, 그리고 현재 뉴욕에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앨비스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메딕.

'호텔 아프리카'는 치유의 능력을 지닌 곳이다.

자살소동을 벌이던 쿤과 넬리, 앞 못보는 소년 라이너와 양엄마 마리아, 평생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산 에이미 스콧 부인 등 '호텔 아프리카'에는 세상과 가정으로부터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이 찾아오지만 모두 이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고 돌아간다. 하지만 '호텔 아프리카'가 그들을 치유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이 곳에서 자신의 상처를 내어 놓음으로써 스스로 치유되어 가는 것이다. '호텔 아프리카'는 그런 곳이다.

너무 힘들고 지쳐 어디론가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런 간섭 없이 들어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할 때 절망의 끝에서 찾아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이 작품은 만화 속의 '호텔 아프리카'가 그러하듯,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도 같은 치유의 효력을 발휘한다. 이들이 그 큰 절망 속에서도 새 삶을 위한 희망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보는 이 역시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 스며드는 따스함과 희망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

사랑은 인생의 가장 큰 화두이다.

인생은 두 인생이 사랑으로 맺은 결실로부터 시작되고, 수많은 이들과의 사랑속에서 진행되다 마감된다. 그러나 인생이 언제나 예측불허이듯, 사랑도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인생도, 사랑도 그 의미를 지닌다. (주 :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 순간 놓친 후 평생 만나지 못하기도 하며, 자기 일생에서 처음으로 온 맘을 다해 사랑하던 사람이 불시에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생의 어느 순간에서 동성을 사랑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호텔 아프리카>에는 이 모든 사랑이 있다.

예측불허의 인생에서 예측불허의 사랑을 경험한 이들이 예고도 없이 찾아드는 그리움과 가슴 아픈 추억에 맞서며, 때로는 세상의 편견과 맞서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 당신의 사랑도 있다.




가슴 깊이,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력.

박희정은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을 전달하고 그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작가이다. 한 컷, 한 컷마다 그녀는 배경을 통해서, 인물의 눈빛을 통해서, 숨소리 하나, 대사 한 마디,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통해서 온전히, 그리고 세심히 그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 그대로 전달한다. 심지어 어떤 작품은 대사가 거의 없는데도 그 공간의 분위기와 인물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박희정의 작품을 보다 보면 종종 숨이 막히고, 심장이 뛰고, 가슴이 저려온다.

<호텔 아프리카>는 이런 박희정의 탁월한 능력이 그대로 녹아든 작품이다.
특히 '호텔 아프리카'에 머물며 조심스럽게 아델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는 인디언 지요의 자연과 인생에 관한 주옥같은 대사들과 애드가 사랑하는 이안을 회상할 때 표현되는 인물들의 감정과 그들 사이의 분위기,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그대로 담아 보여주는 눈빛 등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이야기에 한층 몰입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요 며칠 간은 <호텔 아프리카>를 다시 찾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많이 힘들고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당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호텔 아프리카>는 "힘 내"하고 속삭여 주었다. 오늘, 당신도 <호텔 아프리카>를 읽고 작지만 따스한 행복을 함께 느껴보기를....

『손가락을 벌려 해를 향해 펼쳐봐라. 손가락 사이로 빛이 들어오지.이것은 너희들의 미래이자 야망, 꿈, 미래 등이다. 눈이 시릴 정도로 밝게 빛나지만 너무 눈부셔 바로 볼 수가 없지.

반면 손가락을 봐라. 평소보다 더욱 어둡지. 이건 시련..손가락이 손의 일부이듯 시련은 늘 붙어다닌다. 너무 눈부시다고 손가락을 붙이면 시련 뿐이고 너무 야망만을 쫓다 보면 햇빛에 눈이 상하듯 야망으로 너희 마음의 눈이 상한다.
이제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려봐라. 푸른 하늘이 보이지.. 이것 또한 눈이 시릴만큼 푸르지만 아까 그것과는 또다른 느낌일 것이다. 아름답지 않나? 저 푸르름.. 이것은 휴식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야망으로 눈이 시릴 것이고 시련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럴 땐 가끔씩 시야를 바꿔 여유로운 마음으로 휴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마음의 눈을 잃는다면 그 어떤 야망도 무슨 필요가 있겠나...』 - <호텔 아프리카>,Vol.3, P115-


틈새 / 문화사회 편집위원 rebel9@hanmail.net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클리핑기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