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정작 문제는 한미투자협정



스크린쿼터제 폐지 혹은 축소론자들의 주요 논지는 '국익을 위한 양보'이다. 즉, 스크린쿼터제의 존속으로 인한 한국영상산업의 발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미국과의 투자협정 체결로 일어날 '국익'을 위해 영화계가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영상산업의 피해는 보조금 등 다른 수단을 강구해 보전한다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마치 '눈물을 머금고' 영화계에 호소하는 듯한 이러한 논지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다. 즉, "과연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면 국익이 증가되는가"이다. 그 동안 경제관료들이 주장해왔던 '40억불의 투자효과'가 이미 구체적인 근거가 없음이 드러난 상황에서, 한국영상산업을 포기하면서까지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해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한미투자협정은 지금까지 두 차례 체결논의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난 94년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였고, 당시 김영삼 문민정부는 검토과정에서 자체 폐기한 바 있다. 두 번째는 지난 98년 IMF 위기를 겪고 있던 김대중 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 미국에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투자협정문의 '이행의무부과금지'조항과 관련하여 스크린쿼터제의 폐지가 제기되면서 문화계의 강력한 반대투쟁으로 인해 체결이 무산되었다.
한미투자협정의 체결 무산과정은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갈등이 주요 논쟁지점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한미투자협정의 많은 독소조항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계·문화계에서도 다시 한 번 불거진 한미투자협정 체결 시도에 맞서 '스크린쿼터제 사수'가 아닌 '한미투자협정 체결 반대'로 투쟁의 방향각을 잡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미투자협정은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한미투자협정=한미'투기'협정

한미투자협정이 정의하고 있는 '투자'의 개념은 너무 포괄적이다. 주식·포트폴리오, M&A 등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나 고용증대 효과가 있는 투자가 아닌 '투기적 행위'까지를 광범위하게 투자로 인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투자와 관련한 해외송금에 대한 제한을 없앰으로써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 주고 있다.
그 동안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규제철폐와 자유화 조치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국인 투자가 사실은 '투기자본'이 대부분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미 한국 주식시장의 40% 이상이 초국적 투기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한미투자협정의 체결은, 오히려 경제의 불안정성을 가속화시켜 제2, 제3의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높이는 한미'투기'협정일 뿐이다.

노동권, 환경권, 인권, 문화권을 파괴하는 투자협정

한미투자협정을 이루는 16개 조항과 2개의 부속서에는 노동권, 환경권, 인권, 문화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미국의 노동조합연합체 AFL-CIO과 캐나다노동총연맹은, 각각 BIT와 동일한 문안으로 구성된 MAI(다자간 투자협정)에 대해 노동인권 침해와 반환경성을 지적한 바 있다. 투자협정은 일정한 환경관련 규제조치가 투자자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경우 보상을 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국가의 환경정책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또한 투자협정은 국가가 독립적으로 정책을 결정할 권한을 제약할 뿐 아니라 자연자원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국민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는 자연자원의 처분이 전국민적 복지를 위해 이루어지도록 규정한 국제인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이상 '노무현 정권은 한미투자협정의 망령에서 벗어나라!',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성명 중)
그리고 알려진대로 '이행의무부과금지' 조항은 직접적으로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영상산업에의 위협과 이로 인한 국민의 문화권을 침해할 소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미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한 45개국가 중 OECD 가입 전에 투자협정을 체결한 터키를 제외한다면, OECD 국가 중 미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한 나라는 없다. 미국과 투자협정을 맺은 국가는 대부분이 동구권 국가이거나 개발도상국인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경제관료들이 '세계적 추세'라거나 '미국과의 투자협정 체결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것이 별 타당성이 없다. 오히려 국민들의 인권, 환경권, 노동권, 문화권을 침해하고, 실제로 투기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뿐인 한미투자협정은 그 자체로 거부되어야 한다.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고, 한국영상산업을 보호·발전시키는 길. 그것은 바로 한미투자협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 ptrev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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