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어린이를 보호하라

검찰 전담검사제 도입, 경찰 비디오 진술 활용

성폭력 피해 어린이들의 인권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그동안 경찰 조사와 법원 진술 과정에서 피해 아동들이 정신적·심리적으로 2차 피해를 입는 문제가 지적 받아온 가운데, 경찰과 검찰이 아동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2일 마포경찰서는 어린이집 운전기사 김모(59)씨를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혐의로 구속했다. 피의자는 자신의 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김모(3)양과 조모(4)양을 성추행 하여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마포경찰서는 피해 어린이들을 직접 조사하는 대신 전문 아동상담기관에 의뢰해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비디오로 녹화해 영장을 신청함으로써 범인을 구속했다.

사건을 의뢰 받은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는 학대 아동을 위해 놀이치료실, CCTV 촬영시설, 일면경(한 쪽에만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는 관찰실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놀이치료실에는 몸의 구조와 똑같은 인체인형이 준비돼 있어 성폭력 피해 어린이들의 진술을 받는 데 유효했다.

지난달 13일 경찰청이 ‘13세 미만 성폭력 범죄 피해아동의 인권보호 강화를 위해 관련 범죄 발생시 아동전문기관 등에서 피해 아동들의 진술을 녹화, 증거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공표한 바 있다. 경찰청의 공표 이후에도 피해 어린이의 엄마가 한 달 추적 끝에 직접 범인을 잡은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일선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어린이집 운전기사 성폭력사건은 경찰 일선에서 이러한 지침을 조사 과정에 최초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특히 이 사건의 담당 경찰은 지난달 말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시행한 ‘가정폭력·성폭력 관련 교육’을 받고 전문 아동상담기관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경찰, 검찰 피해 아동 보호
제도적으로 뒷받침

마포경찰서 이성렬 계장은 “첫 시간에 아동복지센터 소장의 아동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며 “사건을 접하고 바로 연락을 취해 아이들의 진술을 녹화하고 영장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교육을 통한 일선 경찰의 의식변화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피해 아동들의 진술을 비디오로 녹화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비디오가 법원에서 증거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 아동들에 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줄었을 뿐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해 아동의 진술 내용을 피의자가 부인할 경우, 피해 아동이 다시 법원에 출두해 진술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16일 검찰은 아동 성폭력 전담검사제와 1회 조사를 내용으로 하는 ‘아동 성폭력 사건 조사 지침’ 시행을 발표했다. 이는 법원 진술 과정에서도 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를 확연히 줄일 수 있어 획기적인 변화라 하겠다.

지침에 따라 검찰은 전국 지검·지청에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 피해사건 전담검사를 지정했다. 전담검사는 경찰이 피해아동에 대한 조사를 할 때 참석, 아동에 대한 조사를 가급적 1회에 마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보호자 동의를 받아 피해아동의 진술을 녹화하고, 진술조서에 녹화사실을 기록하도록 했으며, 필요할 경우 성폭력전담 전문가, 아동심리전문가 등을 조사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변화의 뒤에는 “성폭력 피해 어린이들이 사건 조사 과정에서 2차적인 인권 침해를 받는다”는 아동성폭력피해자가족모임 등 단체들의 꾸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또 최근 영국에서 정신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 어린이에게 법원 출두를 요구한 사실과 성폭력 피해 아동의 엄마가 직접 범인을 잡은 사건 등이 알려지면서 경찰과 검찰의 아동 성폭력 사건 처리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거세진 점도 크게 작용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일 본지 주최 여성계 만남에서 일련의 사건을 지적하며 피해 어린이의 녹음, 녹화 자료를 증거로 활용하는 방안 등 아동 성폭행 사건에서 절차상 피해자 보호방안 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현장의 의식변화,
소급적용 문제 등 과제 남아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고 경찰도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아동성폭력피해자가족모임 송영옥 대표는 “지침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아동 성폭력 사건을 1차적으로 접하는 일선 경찰들에 대한 의식 교육이 시급하다. 한 번에 피해 아동에 대한 조사를 마칠 수 있도록 전담 검사와 경찰의 협조가 원활히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검찰의 지침이 시행된 16일 이전 사건들은 여전히 기존 수사방식에 따른 인권침해 소지를 갖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소개한 어린이집 운전기사 성폭력 사건의 경우, 전담 검사제가 시행되기 전인 12일 피의자를 구속해 지침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경찰이 피해 어린이들의 비디오 진술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계속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어린이들의 재차 법원 진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담당 판사는 “보육교사, 피해자 가족의 진술 등 정황을 통해 구속영장이 발부됐지만 비디오가 증거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지침의 소급 적용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이외에도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과 의료기관의 통합적 대처 시스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위한 재정 지원 등이 과제로 남아있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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