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일(금)은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 비정규직 투쟁위원회(비투위)의 깃발이 처음 오른 날이다. 4백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날 발기인 모임에 참여했다. "20-40명 수준을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많이 놀랐죠." 1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 비투위가 생기면서 그 동안 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대표해왔던 울산이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깃발 들고 다시 노동운동으로
"92년부터 노동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효성금속 노동조합 위원장을 하면서 93년도에 54일 동안 파업을 진행하고 구속이 됐습니다." 비투위 안기호 임시대표가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97년 노동법 개악 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죠." 두번째 구속된 그 해, 5년간 노동운동을 해왔던 효성금속도 문을 닫았다. 그 때부터 울산에 새롭게 둥지를 틀고 노동운동을 재개했다.
지난 해 대선 전까지는 민주노동당 울산시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정당운동에 몰두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그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안기호 임시대표는 대선을 앞두고 '사회변혁의 전망을 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참된 희망을 위해 민주노동당을 넘어서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힌 후, 몸담고 있던 울산 평등연대의 회원들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회사에 치이고, 정규직에 치이고
2만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대기업 노동조합 중심의 한국 노동운동을 대표해왔다. 그러나 98년 총파업 과정에서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해 회사측이 요구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수용하면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타락한 노동운동의 대명사가 됐다. 다큐멘터리 '밥·꽃·양'을 통해서 당시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알려졌으나 현장의 상황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
"파업을 하고 있는 동안에 비투위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게 비투위의 노동조합 직접 가입을 승인할 것을 요구했어요. 표면적으로 이것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내 노동운동가는 없어요. 하지만 아무도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을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비정규직에 비해 특권을 누리고 싶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을 사게 되는 게 두려워서이다.
결국 지난 4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회의 테이블인 현대자동차 미조직 특별위원회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 가입을 2004년 정기 대의원대회까지 미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위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때문에 비투위는 2004년도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통합을 목표로 하는 비정규직 노동조합 건설을 독자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규직의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란 쉽지 않아요."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의 탄압은 노골적이다. 현대자동차 공장 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의무실과 통근 버스의 이용권한이 없다. 실질임금도 정규직의 30% 수준이다. 관리직들은 '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노동자들을 자를 수 있었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음 현대자동차 공장에 오는 날이면 조장이 나서서 군기까지 잡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이런 탄압이 무서워 쉽사리 노동조합 가입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정규직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전망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쉽게 자를 수 있는 우리가 있는 한 정규직은 해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그래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속 이런 비참한 상태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울산을 향한 8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울산에서는 수 백여 명에 달하는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질주하는 파업 시위가 명물이 됐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한국 노동운동의 적자로서의 자긍심에 가득 차 있다. 파업이 진행 중인 요즘에도 수 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울산 시내를 누비며 오토바이 퍼레이드를 즐긴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1만 비정규직 동료들의 심정이 어떠할 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것이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그야말로 생존권을 건 싸움들로 전개돼 왔다.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그런 싸움들을 만들어왔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1만이 넘는 현대자동차 비투위의 앞날이 한국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있어서 중요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탄압의 대명사였던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안기호 임시대표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의 말 속에서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 활활 타오를 날이 머지 않았음을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대학생신문 임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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