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자살과 정부의 결단
요즘 뉴스를 보는 게 두렵다.
지난 97년 IMF 구제금융에 들어서면서 기업의 부도, 정리해고의 칼날이 수많은 이들을 자살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가족동반이란 끔찍한 형태로까지 나타났다. 부모와 자식간의 생이별도 허다하여, 사회복지시설에 맡겨진 아동들이 예년에 비해 얼마나 증가했느니...하는 뉴스가 우리의 귀와 가슴을 무겁게 흔들었다.
경기침체다, IMF 당시 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이 저자거리를 떠돌면서 우린 또다시 엄청난 비보를 접하고 있다. 국경일이었던 지난 17일 오후 한 가정주부가 자녀 3명과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간단했다. 빈곤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카드 빚 독촉, 딸 아이 병원치료비조차 없는 그 막막한 상황,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길고 어둔 터널에 갇혔을 터이다. 자식 대(代)에 가서도 그 깜깜한 터널은 쉬이 걷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지난 7월11일 40대 검찰 공무원의 생활고 비관 자살, 6월24일 30대 가장 카드 빚으로 인해 두 딸 살해 뒤 자살 기도, 6월5일 자녀 빚으로 인한 아버지 자살, 6월3일 시간강사 생활고 비관 자살. 일주일 간격으로 발생하는 자살사건의 원인은 가난이다.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의식주조차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 6년 전의 상황을 진단했던 '벼랑 끝 사회' 수식어를 우린 또다시 들추어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무엇보다 먹고사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즉 생존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최근의 빈곤이 예전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빈곤과 결핍이라고 한다. 100% 틀렸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살이란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인 것이다.
최근의 자살사례들을 접하면서 드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적 불평등은 불가피하게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대해 백번 양보해서 생각해보아도, 그 불평등이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회가, 국가가 시스템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파이를 키운 다음에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신자유주의발상을 수용해 일련의 정책을 펴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하는 시늉을 해왔다. 최근의 비보는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온 사회보장제도가 실패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국가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 생활고의 해결을 목숨의 끊음으로 대신해야 하는 사회는 분명 죽은 사회이며, 국가가 스스로의 책무를 방기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척도이다.
벼랑 끝 사회라 진단하는 이 정국에서 노무현정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경제자유구역정책에서 보여주듯이, 일단 파이부터 키우고 보자는 신자유주의경제논리를 따르고 있는 노무현정권은 최근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결단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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