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인터뷰
즐겁게 정상화에 나서고 있는 에바다복지회
2000일이 넘는 길고 긴 싸움끝에 에바다투쟁은 비리 재단을 몰아내고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장애인투쟁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에바다투쟁에서 힘차게 싸워오신 권오일선생님을 만나봤다.
1. 에바다 투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와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96년 11월 27일 새벽 5시 경기도 평택의 사회복지법인 에바다복지회(학교, 농아원, 복지관)에서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어린 농아원생들이 기습적인 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강제노역에 시달린 것이 농성의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 구재단 비리집단들은 농아 어린이 70여명의 인신매매(모두 미국으로 팔아넘김), 사망.실종.변사체 발견 등 6건, 국고 횡령, 친인척으로 구성된 유령직원 15명, 주민등록증과 장애인수첩 2중 발급, 농아원 내 제본공장에서 어린 여학생들까지 새벽 1시가 넘도록 강제노동을 시키고 임금을 착취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비리투성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리재단 최씨일가는 주한미군들이 에바다를 드나들며 혹은 원생들을 미군부대로 데리고 다니는 걸 묵인함으로 성추행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합의금을 매번 받아챙기기도 하였습니다.
2. 에바다 투쟁은 2000일 투쟁을 넘는 장기간의 투쟁이었습니다. 이런 장기간 투쟁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수많은 동지들의 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없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 몇 명이 7년간의 장기가 투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역의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에바다비리재단퇴진과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그리고 중앙의 노동 시민 사회 인권 단체들로 구성된 <에바다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와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원주지역에바다연대회의> 등 수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오늘의 에바다는 없었을 겁니다.
물론 힘든 가운데서도 7년 동안 온갖 고통과 파면, 해임, 직위해제 등 징계 신분상의 위협과 수십차례의 고소고발을 당하여 수업 중에 수갑이 채워져 체포되고, 교실에서 똥오줌물을 뒤집어 쓰고, 커피포트의 펄펄 끓는 물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임신한 여교사가 배와 가슴을 폭행 당하여 실신하여 119에 실려 입원하고, 십수명에 둘러싸여 집단폭행을 당해 다리뼈가 부러지고 코뼈가 어스러지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오로지 제자들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뭉쳐 싸운 선생님들이 있었다는 것도 장기간 투쟁의 힘이었습니다.
3. 에바다 투쟁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탄압이 있었으며, 어떻게 극복해 갔는지요?
구재단측 구사대(최성창의 관리 하에 있는 불법 무인가 신학원생, 졸업생, 기타 일반농아인, 최씨일가 등)들에 의해 학생.학부모.교사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이 끊임없이 발생하였습니다.
커피포트의 끓는 물을 여교사 목덜미에 쏟아부은 사건, 똥?오줌을 몸에 끼얹은 사건, 수업중 교실에 감금하여 머리를 콘크리트벽과 바닥에 쳐박은 사건, 임신중인 여교사의 배와 가슴을 주먹으로 때려 실신시킨 사건, 칠판에 ‘씨팔년, 개새끼’라는 욕설을 써놓고 죽은 새를 여교사에게 집어던진 사건, 교무실.교실 등에서 교사를 감금하고 풀을 쑤어 와서 교사의 온몸에 풀칠을 하고 주먹과 발길질을 한 사건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만행들이 거의 매일 이어졌습니다.
이런 피해는 농성자측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재단측의 폭행이 두려워 스승을 구타해야 하는 구재단측 농아원생들의 파괴되는 심성이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들은 교사를 때리지 않고, 동료학생이나 학부모를 때리지 않으면 농아원 내의 구사대들에 의해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두려워 죽기보다 더 싫은 이런 패륜적인 행동을 해야 했습니다.
임신 중인 여교사에 대한 폭행도 이어졌는데 이수진교사(당시 임신 9개월)를 교사휴게실에서 교문까지 100여미터를 끌면서 밀어내고 발로 차기도 했고, 김정임교사(당시 임신 6개월)는 이사장 처남에게 주먹과 팔꿈치로 배와 가슴을 폭행 당해 실신하여 119구급대에 실려 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저희들은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면서 언젠가는 완벽하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싸웠습니다.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데 질 이유가 없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도덕적 명분을 갖고도 실패하는 것은 포기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10년을 버틴다면 우리는 20년을 싸울 것이고, 우리 대에서 안 되면 우리 자식 대에서라도 반드시 이루어 내겠다.”는 각오로 싸웠습니다. 우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라 생각하고 오늘부터 조급하지 않고 완전하게 승리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자.”라고 했고 모든 사람들이 호응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정말 즐겁게 투쟁을 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렵더라도 항상 웃으며 재미있게 싸웠습니다. 이왕 하는 싸움이라면 즐겁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인상쓰고 고통스러워한다고 해서 빨리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끼리는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싸웠습니다.
4. 지금은 에바다 정상화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현황은 어떤지요?
지난 5월 28일 드디어 에바다의 문을 활짝 열고 진입하여 비리주범 최성창을 끌어냈습니다. 물론 평택경찰은 7년 동안 해 온 행태대로 법원으로부터 출입금지가처분 대상자이면서 에바다를 불법으로 무단점거하고 있던 최성창을 경찰력을 동원해 합법적인 사람들을 폭행하면서까지 농아원 안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6월 3일 최성창과 그 일당들 중 일부를 강제퇴거 시켰고, 6월 7일 새벽 4시에 구재단측 하수인 40여명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고 돌을 집어 던지며 기습해 와 많은 동지들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결국 물리치고 이를 계기로 농아원 내에 남아 있던 구재단 잔당들을 모두 퇴거시켰습니다.
현재 에바다는 투쟁의 국면과 함께 정상화 과정을 급속히 밟고 있습니다. 학교와 농아원 건물 그리고 식당 화장실 건물 등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있으며 결과에 따라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을 수도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된 시설로 거듭나 장애인 시설과 사회복지 시설 운영의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이 과정에 동지여러분들의 지속적인 연대가 필수조건입니다.
많은 단체들과 학생들이 에바다에서 수련회나 세미나 회의 장애인봉사활동 등을 하고 있으며 특히 대학생들의 자원봉사활동은 저희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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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