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이라는 말부터 생각해 보자. ‘개발’은 영어로 ‘발전’(development)이라고 통용되는데, 시각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사진용어인 현상(現像)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실재하는 물체의 상(象)을 거울이나 스크린과 같은 매체에 비추어 그 영상을 재현의 방식으로 현실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물체의 상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계발(啓發)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발의 관건은 개발대상에 잠재된 가능성을 얼마나 시각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잠재된 것을 가능성으로 변화시키고 눈앞에 현실화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잠재된 가능성이 단일한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공간은 역사의 질곡 속에서 이질적인 장소성을 부여받아 왔고 동시에 파괴되어 왔다. 특히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공간들을 모방하고 이식하고 대체해 왔던 한국의 공간들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와 양식들이 중첩되어 있다. 더불어 북한과 남한, 서울과 지방, 도심과 외곽 등의 차별적 공간구도가 아직도 팽배해 있다. 이러한 이질적이고 차별적인 공간의 맥락들은 무시되어 사라지거나 경험적으로 매끈하게 봉합되어 버린다.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되고, 차별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우월한 쪽을 지향하는 것이 현재의 공간정책이다.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국정과제이면서 서울은 더욱더 강력한 '경제수도'가 아닌가? 왜 여전히 모든 도시와 지역들이 서울을 지향하는가? 왜 동북아를, 세계를 지향해야 하는가?
공간을 둘러싼 ‘비가시적 형태’의 원격적 관계들은 따라서 가시성의 문제를 낳는다. 사라지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보지 않으려 하는 것 중에서 공간의 외연구조 외에 중요한 것이 공간의 문화이다. 여기서 공간의 문화는 공간을 살아 내는 삶의 방식, 즉 공간살이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공간을 점유하는 삶의 방식, 공간을 사용하고 배치하는 삶의 방식, 공간을 조성하고 변형시키는 삶의 방식, 공간과 역사를 섞는 삶의 방식, 공간과 자연을 섞는 삶의 방식, 공간과 몸을 섞는 삶의 방식, 공간에 꿈과 기억을 섞는 삶의 방식, 공간에 욕망과 환영을 섞는 삶의 방식 등이 되겠다. 물론 공간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삶의 방식이나, 공간과 이데올로기를 섞는 삶의 방식, 그리고 공간을 주물화/사물화/연물화하는 삶의 방식들도 있다. 단적인 예가 공간을 중심화하고 주변화하는 공간정책을 들 수 있다. 공간의 정체성은 따라서 지역 자체의 정체성보다 보이지 않는 외부의 사회적 영향력들에 의해 규정된다. 서울중심성과 동북아 또는 세계지향성은 지역개발의 가장 중요한 공간구조의 외연이다. 이렇듯 공간의 불평등은 계급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인 지방 사이에서 재생산된다.
여기서 개발과정에서 공간역학의 외연과 삶의 문화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특수성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남한 사회는 축적된 자본의 토대가 매우 약하고 천민자본주의의 개발지상주의가 아직도 팽배할 뿐만 아니라, 정치과 경제의 파급력이 다른 영역들보다 우세하고 공모관계가 뚜렷하며 이데올로기화되기 쉬운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 이성'이 사회 모든 영역들을 지배하는 제1원리로 작동함으로써 역사는 탈역사화되고 자연은 탈자연화되고 문화는 탈문화화된다. 이로 인해 궁극적으로 인간은 탈인간화된다.
국가영역에서 보면 복지와 공공성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교육, 의료, 법조, 주택에 대한 비용이 개개인에게 과다하고 부과된다. 돈이 많이 드는 사회,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하는 삶. 이 때문에 호객전통과 난민문화에 기반한 간판문화는 원색적이고 유치하더라도 손님을 많이 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前)시민적 측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개개인이 사적으로 복지를 책임지고 위험을 피해가야 하기 때문에 각종 공간경험은 개인 또는 가족단위의 먹고, 마시고, 입는 사적 행위에 의해 지배된다. 경쟁적 속도전을 통한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는 유흥공간에서 광기로 변화하여 폭발한다. 자본의 회전속도를 가속시키는 것을 무기로 삼고 있는 남한 자본주의는 유행의 순환을 더욱 더 빠르게 만들고 공간의 파괴-생성도 독려한다. 더군다나 '경제적 이성'에 기초한 한국 자본주의는 지방으로부터 끌어들인 노동력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윤을 창출하였고, 국가 외부의 시장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내부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남한 자본주의는 따라서 공간의 차별적 배치를 통한 착취에 크게 의존하여 성장해 온 것이다.
공간역학의 외연과 삶의 문화를 보지 못하게 하는 예의 정치경제적 구조들을 도외시하고 지역경제와 문화산업, 문화적 정체성, 나아가 '문화사회'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지 않은가? 생활공동체 중심의 지역운동들이 지역문화를 근본적으로 쇄신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경제문화적 구조를 그냥 두고 시-공간을 재조직하면 바꾸어 낼 수 있을까? 문화사회를 향한 욕구가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졸속으로 조성되는 공공공간의 정치적 이성과 공간장사의 무분별한 경제적 이성을 비판하고, 공간살이의 문화적 공공성을 확보하는 일과 더불어 자본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 무의미함과 비인간성에 대한 저항이 근본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류제홍 /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 jehhong_ryu@hotmail.com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