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정부가 제출한 시장개방 양허안에는 보건의료부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상황에서 시장개방과 보건의료부문의 변화를 말하고자 하는가? 우선 시장개방은 DDA 협상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한일 FTA, 한미 BIT에서도 의약품을 비롯한 보건의료부문이 협상의 쟁점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만 갖추고 있을 뿐 시장 원리로 작동되는 남한의 보건의료시장은 다국적 의료자본에게 좋은 먹이감이고 다국적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 시장개방의 추동력은 DDA 협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의료시장개방은 이미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권이 다국적 자본의 유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스스로 문호를 개방한 경제자유구역이 그 시작이다.
시작된 시장개방, 경제자유구역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주장하면서 우리는 경제자유구역 내 설립된 외국 병원에 의해 남한 보건의료체계가 점차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장된 주장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인천시가 경제자유구역 활성화의 핵심적인 관건이기 때문에 반드시 허용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외국 병원의 내국인 진료가 남한 보건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의료와 교육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어떠한 신문 기사를 보더라도 찾을 수 있다.
인천시가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존스 홉킨스 병원은 그 진료비 수준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고급’ 병원이다. 인천시는 경제자유구역 내에 유치하는 병원에 대해 상당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외국 병원의 입장에서는 이윤을 뽑아낼 수 없는 곳에 분원을 설립할 이유가 없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 병원으로서는 현재 수도권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종합병원을 운영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외국 병원의 유치가 관건인데, 그 유치를 위해서는 외국 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게끔 의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자유구역 내에 설치되는 외국 병원은 현재 진료 대상을 외국인에 한정하는 대신 영리법인의 지위가 인정되고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의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남한의 병원이 언제는 수익과 무관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겠냐마는, 영리법인 인정과 건강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의 철폐는 국내 의료자본․의료인에게 오래된 소망이다. 이 최소한의 규제마저 없어진다면, 소위 잘 나가는 병원--이를테면 삼성병원이나 서울대 병원은 제공하는 서비스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고 환자를 거부할 수 있고 막대한 이윤을 축적할 수 있게 된다.
보건의료부문에서 강화되는 자본의 지배
즉, 우리는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만을 시장개방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외국 자본의 진출을 위해 기존의 규제를 풀어 보건의료부문에서 의료자본의 운동을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까지를 아울러 ‘시장개방‘이라고 부른다. ‘시장개방’은 국제적인 이름은 다국적 자본의 운동이고 국내적 수준의 이름은 생존권과 사회권의 파괴이다. ‘시장개방’은 이렇게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섣부른 '시장개방‘ 때문에 낭패를 봤던 몇몇 국가들의 예에 겁을 집어먹어서가 아니다. 국가 단위를 넘어 확대재생산을 꾀하려 하는 다국적 자본의 운동의 벡터가 이 방향이기 때문이다.
남한의 보건의료체계가 엉망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보장성이 낮은 건강보험보다 민간보험을 사고 능력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구매하는 게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런 비관마저도 건강권이 사회권으로써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던 과거의 결과이다. ‘시장개방’ 이후 우리가 목도할 현상은 ‘지금의 체계 속에서’ 의료서비스를 능력에 따라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엉망진창인 지금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환경 아래에서 의료서비스를 공급받아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이라는 재정적 기반 위에서 성장한 일부 의료자본은 더 큰 규모로 성장하기 위해 건강보험을 거추장스러워 하고 있다. 건강보험 때문에 자유로운 진료를 할 수 없다는 의사들의 불평은 이런 상황에선 그냥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건강보험이 포괄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성장하던 민간의료보험 역시 병원과 결탁하여 비상(飛上)할 준비를 끝냈다. ‘시장개방’ 이후 국내에 유입될 다국적 자본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존재지만, 국내 의료질서 재편의 과정에서 다국적 자본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어 자본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 민중의 건강권 파괴에 앞장서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공공의료강화 공약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료기관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노무현 정권의 약속을 실현시키도록 촉구하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세계화’ 혹은 ‘시장개방’을 일면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우리는 공공의료기관 확충이나 본인부담금 상한제 등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방안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빠르게 시행될수록 좋다. 다만 노무현의 약속이 ‘시장개방’에 대한 대응일 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의 운동을 촉진시켜주는 정권이 자본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좁게 할 정책을 펼 수는 없다. 노무현 정권의 공공의료강화 약속은 무절제한 의료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부문에서 자본의 지배력이 커져서 파생할 일부 사회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현재 남한의 공공의료체계로는 민간보험을 구매할 수 없어 건강보험에 남게 될 사람들과 민간병원에서 거부당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영리법인 불인정이나 건강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 등의 규제를 풀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특히 정부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정도의 것일 뿐이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리는 자본 앞에 던져진 노동자․민중을 위해 이것이라도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노동자 민중의 건강하게 살고 노동할 권리나 전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 요양기관강제지정제도란? 의료보험이 도입될 당시에는 보험조합과 의료기관이 서로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전체 인구를 포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500인 이상의 직장만을 가입대상으로 한정했으며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굳이 낮은 수가의 의료보험을 계약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모든 보험조합들이 몇몇 유명한 대형병원만을 선호하여 소수의 의료기관에만 계약이 집중되었고, 의료보험 계약제도는 더욱 힘들게 유지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이미 개설된 의료기관을 모두 요양기관으로 지정했고 새로이 신설되는 의료기관도 개설하면서 동시에, 요양기관으로 지정되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이 정부 통제 아래에 있게 되고,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