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류 미디어에서는 연예인들의 누드집 발간을 둘러싼 입담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무수한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포르노 사이트들은 활개를 치고 있고, 야릇한 포즈를 지은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이 도배된 스포츠 신문은 언제나 떳떳하다. 북한의 '미녀' 응원단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통일을 향한 염원으로 치환되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
가부장적인 시선에 갇혀 있는 여성 이미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문제 의식에 대한 공유가 확장된 듯 보이지만, 여성을 '창녀/처녀', '민족의 어머니와 딸'로 강요하는 뿌리깊은 이미지 권력들과 우리는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 여성 영화제 등 여성의 주체적인 시선을 강조하려는 노력들이 계속되면서 꽤 폭넓은 관심을 얻고 있으나, 이를 일상화되어 있는 가부장적 시선에 맞선 전면적인 저항으로 이끌어 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으로 보인다. 주류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여성의 성적 이미지들만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킨 영화들은 위협적인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반면, 간혹 등장하는 여성의 주체적인 시선을 견지한 영화들은 대부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여성주의적 문화에 토대를 둔 몇 편의 독립 영화들이 출현하여 열악한 배급 구조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 유의미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액티비즘'을 표방하여 기획, 제작되는 영화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한 것이 안타까운 국내의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http://www.indievideo.org/)의 주최로 8월21일부터 26일까지 7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즘: 미학과 정치적 노선'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작은 영화제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소중한 한 걸음으로 느껴진다.'유쾌한 전복, 달콤한 전위, 행복한 전율'이라는 캐치 프래이즈 아래 검증된 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즘의 고전들이 상영되는 이번 행사에서는 평소 접할 기회가 부족한 실험적인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어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형화된 영상 언어를 넘어 미학적으로까지 여성주의적인 실천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들과의 만남은 지루함, 진기함을 넘어서 기대하지 못했던 정치적인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페미니즘 액티비스트의 작품들을 주로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레즈비언과 게이 영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바바라 해머, 여성의 눈으로 본 일상적 생활에 대한 문제 의식과 신화적인 모습들을 표면화시킨 마사 로즐러가 주축이 된 제1대의 유쾌한 전복, 유쾌함과 쾌락의 코드로 여성성을 담아내는 시실리아 컨딧, 작품마다 사고의 전복을 갖게 하는 바날린 그린등 전복과 지향으로의 여성성을 강조한 제2세대의 달콤한 전위, 현재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리아 칭, 쟌느 핀레이, 수잔 오프터 링거 등 제3세대의 행복한 전율을 선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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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업 History Lessons/ 바바라 해머/ 2000년 /65분 /흑백 /35mm

<질산염 키스Nitrate Kisses>(1992), <바비일생Tender Fiction>(1995)과 더불어 잃어버린 퀴어 레즈비언 역사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역사 수업>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소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896년부터 1969년에 일어났던 스톤월 항쟁 시기에 이르까지 의학영화, 교육영화, 뉴스릴, 전쟁 홍보 영화, 자연주의자들의 다큐멘터리, 포르노, 드라마, 소설 표지등 온갖 시각 매체에서 등장한 여성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재편집했기 때문이다.
언뜻 무의미한 이미지들의 나열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통찰력 있는 유머와 아이러니를 구사하며 읽어버린 레즈비언의 역사를 복원시키기 위해 유의미한 충돌을 일으키는 감독의 재기발랄한 위트가 돋보인다. 극장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개념을 불어넣어 주어 사회 변화를 위한 정치적 행동을 취하기 위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다는 감독은, 분명히 역사에 개입하며 살아왔고, 숱한 영화에 등장하며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해왔지만,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였던 레즈비언들의 왜곡된 역사에 주목하기를 권한다. 풍부한 이미지들을 아우르면서 레즈비언에 대한 기존의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트는 편집이 발산하는 정치적인 효과는 명백히 급진적이다.
몇 편의 단편 퀴어 영화들을 제외하고,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은 가부장적인 시선을 전제로 한 포르노에 등장하는 성적 대상, 정신 이상자, 범죄를 공모하는 사회의 위협적인 존재로 영상 이미지화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쾌한 전복'이 절실한 지금, 영화 한편과 함께 그 단초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함께 하는 건 어떨까.
이진영기자[fjt79@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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