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관광부는 2002년부터 국어정책의 강화 및 종합적-거시적 수립을 목표로 해서 연동된 3대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이 3대사업은 국어발전 종합계획(마스터플랜), 국어기본법 제정(법적 제도화), 국립국어연구원 기능강화(정책기구의 재정비)이다. 그러나 이 3대사업은 낡은 패러다임의 확대재생산이라는 기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국어정책’은 ‘언어정책’으로 바꾸어야 하고 언어정책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 호출용으로서의 ‘어문정책’/‘국어정책’은 존재해왔으나 ‘언중(言衆)’을 위한 ‘언어정책’은 존재해오지 않았다. 또한 자발적 시민참여 및 민주주의의 진전과 인터넷 시대의 도래 등 언어사용 주체성의 형성과 그 환경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가 촉발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개념의 어문정책/국어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과 내용을 갖는 언어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이라는 요구 속에서 ‘올바른 국어’ 및 어문규범 논리가 지배적 정책기조로 일관되어 왔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꾀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한다. 또한 개혁적 언어정책의 수립 및 수행은 이미 어문영역에서 고유하게 필요한 과제이기도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문화정책 개혁 추진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어발전 종합계획과 국어기본법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연구원이 밝히고 있는 국어발전 종합계획의 8대 중점 추진과제는 국어정책 기반조성, 국어사용 환경개선, 국어사용 능력증진, 국어정보화 기반구축, 한국어의 범세계적 보급, 한글 우수성 선양 및 국어 문화유산 보존, 남북한 언어교류의 활성화, 특수언어 표준화 지원 등이다.
그러나 ‘국어발전 종합계획’은 다음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1) 여전히 ‘국어’라는 용어틀을 고수하고 있다. 2) 어문규범과 ‘올바른 국어’ 논리를 종합적으로 강화,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3) 국어발전 종합계획을 정당화하는 ‘국어사용 능력’의 개념이 편협되어 있다. ‘어문규범 능력’을 ‘국어사용 능력’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4) 새로운 문화와 언어시장으로 급부상한 인터넷언어(통신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일탈적 언어사용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5) 각국의 언어정책을 아전인수식으로 소개하면서 국어발전 종합계획을 정당화하고 있다. 가령, 캐나다 퀘벡주 사례를 들면서 사복 언어경찰관을 편성하고 있음에 주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캐나다는 우리처럼 표준어나 맞춤법과 같은 강제적인 어문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6) ‘정보화’/‘세계화’를 매우 중요한 언어정책 마인드로 삼고 있는데, 그것들이 갖는 신자유주의의 지배전략적 측면이나 권력 재구조화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적 성찰도 없이 맹목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7) ‘문화국가’의 구현을 목표로 하면서도 국어발전 종합계획에는 문화 마인드가 희박하며, 단지 ‘국어적’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8) 기존의 어문정책/국어정책에 대한 종합평가 없이 국어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국어정책 활성화, 21세기 세종계획, 사이버한글박물관, 국립국어연구원 등에 대해 종합평가가 없다.
국어기본법안은 지난 4월에 공개하였으나 각계의견을 반영, 대폭 수정하여 입법예고에 들어갈 예정이다. 문화연대와 민주노동당은 ‘올바른 국어’ 및 규범주의 논리를 문제삼아 6월 30일 국어기본법 제정 반대 성명을 냈으나 문화관광부가 이를 수용, 법안 기본논리를 대폭 수정하고 있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국어’의 용어 문제 등 여전히 상당부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정체성 개혁
국립국어연구원은 크게 어문규범 연구, 어문실태 조사, 어문자료 연구, 사전편찬, 국어순화 및 우리말 바로쓰기, 어문정책 등의 사업을 해왔다.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 국어생활 규범화 및 계몽 둘째, 어문정책 관련 전반 조정 셋째, 국어연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능과 방향은 ‘국립국어연구원’으로서 제대로 된 정체성이라 할 수 없다. 1) 어문규범주의의 논리로, 그리고 일방적 어문규범으로 모든 국어생활/언어현상을 판단하려는 낡은 틀에 갇혀 있다. 2) 국립국어연구원은 ꡔ표준국어대사전ꡕ과 같이 직접 사전편찬 작업을 해서는 안되며 그 연구 및 지원을 해야 한다. 3) 국립국어연구원은 국어순화사업을 할 수는 있어도 국민들을 상대로 직접 ‘올바른 언어생활’ 계몽활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4) 국립국어연구원이 제시하는 국어사용능력의 개념에도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이 정의하는 국민의 국어사용능력이란 어문규범 숙지도에 다름 아니다. 5) 국립국어연구원은 존재이유의 핵심 중 하나인 언어정책 및 정책연구의 인프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국어연구원도 개혁적 언어정책의 대상이자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문화관광부는 국어발전 종합계획의 일환으로 국립국어연구원의 기능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은 현재 3부1과로 36명인데 4부1국 80명으로 연구인력을 대거보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일거리를 늘려 거기에 조응하는 인력을 증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국립국어연구원의 연구지표 정체성에 대해 종합평가를 하고 새로운 전망의 마스터플랜이 나와야 한다. 즉 기능강화에 앞서 개혁적 언어정책의 일환으로 국립국어연구원의 정체성 개혁이 먼저 일어나야 하고 그 정체성 개혁에 따라 기구/기능을 조정하고 연구인력 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을 ‘국립언어문화연구원’으로 고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언어정책 개혁의 방향
무엇보다도 근대적 낡은 틀(부정의 원리)을 버려야 한다. ① ‘국어’라는 용어의 공식적 사용 폐기 및 대체 지시어 채택(‘한국어’ 등) 공론화. ② 어문규범의 규제 기능 및 그 정책 포기. ③ ‘올바른 국어’ 캠페인 및 ‘국어의 통일성 지향’ 폐기(언어의 다양성 지향). ④ 한글이냐 한자냐의 이분법적 문자정책 극복. ⑤ 남북언어 ‘동질성 회복’ 관념 폐기 및 차이의 공존과 상생으로 전환. ⑥ 낡은 틀 패러다임 재생산하는 어문기구, 법률, 예산, 인력 배치 검토. ⑦ 각종사업 중간 및 종합평가 및 계획중인 국어정책 재고. ⑧ 어문정책 60년(1945-2003) 평가 및 비판적 성찰 등이 이루어져야한다. 이의 변화를 위해 언어정책감리제도 및 언어규범영향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기존 정책들에서 배제되어 왔던 소수자집단의 언어적 권리와 시민적 접근성을 보장하는 문화민주주의 실천과 연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① 민중/서민/시민의 전문적, 법률적, 공무적(예; 의료, 법률, 행정 등) 공공 담론구성체에의 접근성 보장과 생산적 참여 능력 확보. ② 소수자(장애인,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 조선족, 탈북자, 지방언어 사용자, 여성, 어린이, 노동자, 농민 등)의 차이의 언어적 권리 보장과 문화민주주의 확보가 정책화되어야 한다.
언어(한국어) 사용능력과 언어문화교육과의 연계
우리의 어문정책은 어문규범의 논리를 ‘올바른 국어’라는 미명하에 언어사용의 윤리성으로 주입시켜 왔으며 또한 그 장치들을 만들어오는 데 초점을 두어 왔다. 이것은 언어에 본성적으로 내재한 표현 및 소통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행위라는 성격을 배제 및 억압하고 언어를 ‘국민’이라는 코드 즉 ‘국어’라는 코드로만 획일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제는 규범주의로부터 벗어나 언어의 다양한 사용 및 표현 능력을 긍정함으로써 한국어 사용능력 및 한국어 경쟁력 강화를 꾀해야할 것이다. 한국어의 발전은 국가주의적인 국어의 범주나 일의적 어문규범에 종속시키는 근대적 민족언어틀을 벗어나 자율적이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할 때 더 가능해질 것이다. 언어의 다성적 사용을 통해서 각 개개인들은 창의적이며 주체적인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며, 언어 자체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문화자산으로 증대될 것이다. 한국어의 발전은 바로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갖는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어 사용능력에 관한 정책적 입안은 언어문화교육과 연계되어야 하며, 따라서 학교교육의 문화교육으로의 전환과 연동되도록 해야 한다.
고길섶 / 월간 <문화연대> 편집위원장 speak2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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