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백혈병환자들에게 기적의 약으로 불리는 글리벡. 하지만 의약품 특허로 인해서 글리벡을 복용하기 위해서는 한달에 300만원에서 600만원이라는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사진은 지난 2002년 7월 18일 글리벡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 노바티스사 앞에서 열린 '글리벡 약가 인하 요구' 퍼포먼스 모습이다.
이전 GATT(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 하에서는 주로 공산품 교역이 협상의 대상이었다. 헌데, WTO(세계무역기구)의 출범으로 인해 GATT 때와 비교해 두 가지가 협상 범주에 추가되었다. 즉 서비스 및 지적 재산권이 그것이다. 그 중 지적재산권은 간단히 말해 '무형의 지적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뜻한다.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내용은 WTO하의 TRIPs협정(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서 협상되고 있다. 현재 TRIPs에서 의약품과 관련되어 있는 지적재산권의 논쟁은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단 강제실시란 뭘까. 강제실시란 'Compulsory Licensing'이란 말을 그대로 풀이한 것이다. 그것은 곧 '특허권자의 허락없이 제3자 등이 특허를 실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특허의약품인 글리벡을 다른 회사가 글리벡과 같은 성분인 약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받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강제실시를 실시할 수 있는 조건은 '국내 사용'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의약품을 복제해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들(최빈국이나 개발도상국)은 강제실시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특허를 소유하고 있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해를 추구하는 미국과 선진국들은 이러한 최빈국을 비롯해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실시할 수 있는 국가의 범위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이렇듯,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에 대한 논쟁은 WTO내의 선진국과 개도국 및 빈국사이의 이견으로 인해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가 국내적 사용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 국민들의 보건 문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전 세계 에이즈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민중들은 에이즈로 인해 저개발, 빈곤 심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생산능력을 갖춘 청장년층의 절반이상이 에이즈로 사망하고 있고, 국가의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당연히 특허로 인한 고가의 에이즈 약을 사먹을 수 없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에이즈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은 약값만 1년에 평균 만 달러정도가 드는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대부분은 1인당 GNP가 1,500달러를 넘지 못하며 반 이상은 1,000달러에도 못 미친다. 이를 인도의 제너릭(복제약)제약회사 시플라는 에이즈 치료약 평균 비용의 1/28정도인 350달러에 공급하고 있다. 국가가 보장해 줄 수 있는 보건영역이 특히 취약한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가 이렇듯 값싼 에이즈 복제약을 수입해야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들 아프리카의 빈국은 직접 값싼 에이즈 복제약을 만들 수 없는 국가들이기 때문에 인도나 브라질 등지에서 수출된 값싼 복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그 국가들의 존립을 위협하는 보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강제실시를 실시하려 할 때,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라는 조건 때문에 외국에서 수출된 값싼 복제약을 들여올 수 없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는 이들 빈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은 중진국/개발도상국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예로, '글리벡'을 살펴보자.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희귀 질환을 치료하는 항암제이다. 글리벡은 상당부분 공적기금의 원조 및 세금혜택 등으로 통해 비로소 개발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글리벡에 대한 특허를 소유하고 있는 노바티스사의 독점 권한으로 인해 글리벡의 약가는 전세계적으로 한 캅셀당 최소 2만원대로 책정되었다. 하루 8캅셀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는 보험이 전혀 적용되지 않을 때 한달 553만원(한캅셀당 23.045원 기준)의 약값을 고스란히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후, 인도의 제약회사 낫코에서 글리벡과 같은 성분의 항암제 '비낫'을 생산하였는데, 이는 글리벡 약가의 10분의 1에 불과한 가격이었다. 그러나 현재 TRIPs협정 하에서는 한국 정부가 강제실시를 허용하더라도 인도의 비낫이 들어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자체적으로 의약품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이고, 인도의 비낫은 한국으로 강제실시라는 명목으로 ‘수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도의 글리벡 복제약 ‘비낫’은 한국의 몇몇 환자들에게 ‘자가치료용’이라는 별도의 수단을 사용해서야 비로소 국내에 공급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에서도 보여지듯,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는 멀리 동떨어진 타국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과 같은 중진국의 민중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 것이다.
2001 년 도하선언 및 2003년 있었던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도 결의된 바 있듯이, 누구나 필요에 의해 의약품을 먹을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특허보다 공중보건 및 생명이 우선이라는 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특허권 보장을 빌미로 선진국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배를 불리는 것이 에이즈 및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최빈국 민중의 보건상태 개선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다가올 9월달의 제 5차 칸쿤 각료회의는 이러한 정신이 구현되는 자리여야만 한다.
민중의료연합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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