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부에 대한 미국의 이라크 추가파병 요청이 15일 공식 확인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민중연대·민주노총·민주노동당·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361개 정당·시민사회단체들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정부합동청사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파병 요청은) 미 부시 행정부가 부도덕한 전쟁의 책임과 부담을 국제사회에 전가하려는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미국의 부당한 파병요구를 거부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국과 영국 등 전쟁도발 국가들이 제기했던 개전의 근거는 모두 실체가 없는 여론조작이었고, 심지어 증거조작 의혹까지 대두되고 있다"면서, 소위 '동맹국'에 대한 추가파병 요청은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전략 실패의 고백이자, 부도덕한 전쟁의 책임과 부담을 국제사회에 전가하려는 일방주의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가 검증되지 않은 실리를 앞세워 비전투병을 파병한 것만으로도, 명분 없는 전쟁폭력에 동참한 원죄를 씻을 수 없다."며 "(전투병력 파병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직접 총을 겨누는 것"이라고 이들 단체는 주장했다.
주한미군 재배치·북핵문제·통상문제 등에서 미국이 이라크 파병의 대가로 제공한 것이 무엇인지 이들 단체는 정부에 반론을 제기했다. 지난 파병 때 정부가 국익과 실리를 내세웠지만, 구체적으로 국민 앞에 제시하지도 않았고 입증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 단체는 "노무현 정부와 국회가 미국의 전투병 파견 요청에 단호히 거부할 것"을 촉구하며, "정부가 (미국에) 굴복해 파병을 시도한다면 전면적인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한국군에 '점령군' 역할 요구
지난 5월 1일 부시 미 대통령의 종전 선언에도 불구하고, 외신과 현지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라크의 현 상황은 테러와 게릴라전 등 국지적인 충돌로 전쟁 상황을 방불케 하고 있다. 또 미군은 종전선언 이전 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라크인들로부터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해방군'으로 자임하고 있지만, 정작 이라크인들에게 미군은 '점령군'의 위치에 있으며 이라크인들의 반미감정은 여전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이번 이라크 추가파병 논란은 전후 이라크복구를 명분으로 한 비전투병 파병이나 현재 동티모르에 주둔하고 있는 평화유지군과 분명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에 편입되는 동시에, 독자적인 작전수행과 비용부담으로 특정 지역의 통제권을 행사함으로써 한국군 또한 '점령군'을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추가파병 요청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가 또다시 '안보논리'를 내세워 파병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파병거부에 따른 경제보복이나 주한미군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이 감축문제를 들어 정부를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주권국의 정당한 정책적 판단에 보복행위가 운위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고, 그러한 부당한 압력이 있다면 그 실체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면서 "안보를 내세우는 것 또한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투병력 파병은 이라크 '치안유지' 아닌 '점령'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안보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을 폐기한지도 오래됐고, 그러할 의도나 능력도 없다."면서 "탈냉전시대에 미국에 대한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하고, 자주국방을 내세운 노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논리를 넘어설 배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27국제반전공동행동 조직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광일씨는 추가파병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정부가 국익을 내세워 지난 파병을 결정했지만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없었다"며 "미국은 오히려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고, 북핵문제를 들어 전쟁위기를 고조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라크전 등 미국의 패권전략과 한반도 전쟁위기 조성은 동일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며 "국익과 안보 문제는 이라크 파병 문제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들 단체는 향후 오는 27일 열리는 '국제반전공동행동'을 맞아 이라크 현지상황을 올바로 알리고, 학술회의와 언론을 통해 정치권의 '국익론'과 '안보론'의 허구성을 국민에게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유엔 결의를 통해 다국적군을 구성함으로써, 파병의 명분을 제공하려 하고 있다. 정부 또한 추가파병 요청에 대한 입장을 유엔 결의 이후에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 결의 유무를 떠나 정부가 추가파병을 계획한다면, 안보(한미동맹)와 국익을 명분으로 내세운 지난 파병 때보다 더욱 정교한 논리와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가 반전평화를 외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이라크 추가파병을 둘러싸고 올 하반기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립과 충돌은 불가피하다. 전투병력 추가파병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대한 '참전'이며, '치안유지'가 아닌 '점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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