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 앞을 쳐다봐도 뒤를 돌아봐도 행복한 인생 지도를 그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더욱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오늘까지 달려왔다. 이제 40대인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이다. 아이들은 큰 말썽없이 커주고 있고 아내와도 별 문제없이 단란한 편이다. 더우기 남들이 그래도 안정적이라고 봐주는 현대자동차 정규직으로 직장도 갖추고 있으니 이런저런 불만을 토해내면 ‘배부른 소리한다’는 타박이나 얻어들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답답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 남아 있는 나머지 인생의 밑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이 직장에서 98년 정리해고 때처럼 거리로 내몰리지만 않으면 정년인 58세까지 공장생활을 계속할 것이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노후가 장미빛 인생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경기가 나빠진다는 소리만 들리면 98년과 같은 소용돌이가 언제 다시 닥칠지 내심 걱정스럽다. 그래서 주위의 동료들도 “벌 수 있을 때 벌어놓자”고 저토록 몸을 혹사하며 달려드는 것 같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라 고향에 가야 한다. 가족들과 만나는 일년에 몇 번 안되는 즐거운 자리이건만 왠지 그는 마음이 불편하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직원들의 연봉이 6천이라는 언론의 뻥튀기 보도가 나간 후 현대자동차 사정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로부터 ‘좋겠다’는 얘기를 종종 인사치레로 듣는다.
사실 이런 저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뭐해서 ‘허허’ 웃어 넘기고 말지만, 마음은 공허하기만 하다. 게다가 ‘좋겠다’고 하면서도 시선은 어째 곱지 않은 것 같아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가면 가뜩이나 가족 친지들에게 그동안 마음뿐이지 잘해온 것도 별로 없는데,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올까 벌써부터 마음에 걸린다. 선물도 예년처럼 가볍게 준비해도 될까?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아는 형님의 소개로 울산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88년 9월이었다. 마침 울산에서 사람을 많이 뽑을 때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해 이제 15년차가 되었다.
한달에 절반은 잠자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를 깨울까봐 살금살금 다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커 가는데 언제부터인가 대화마저 단절되어 가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가족을 위해 청춘을 이 공장에 다 바쳐왔는데, 어느덧 돌아보니 아버지·남편의 자리는 비어 있고 돈버는 기계가 되어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참 이상한 것은 15년 정도 일해 온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가운데 그래도 돈을 좀 모은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놀음을 하거나 비싼 술집에 가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성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들도 그러했다.
그렇게 공장에서 주야 맞교대로 일해온 지 15년이다. 그는 정말 이 주야 맞교대가 없어지면 좋겠다. 야간작업을 하다보니 신체리듬도 엉망이다. 야간작업을 할 때는 낮에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아마도 이름을 붙이자면 직업성 스트레스라고나 할까?
여하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절반뿐이니 가정생활도 절반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울산의 이혼율이 전국 최고라는데, 아무래도 주야 맞교대 이 근무형태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요즘 삼산에는 아줌마들을 위해 낮에도 나이트클럽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화가 치미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한달에 절반은 잠자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를 깨울까봐 살금살금 다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커 가는데 언제부터인가 대화마저 단절되어 가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가족을 위해 청춘을 이 공장에 다 바쳐왔는데, 어느덧 돌아보니 아버지·남편의 자리는 비어 있고 돈버는 기계가 되어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참 이상한 것은 15년 정도 일해 온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가운데 그래도 돈을 좀 모은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놀음을 하거나 비싼 술집에 가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성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들도 그러했다.
퇴직금 중간정산하고 대출이라도 얹어 그저 내집이라고 가지고 있으면 그 중 나은 편에 속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이 착실한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노동자 가족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활비 좀 보내드리고 형제간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아이들 키우고 교육보험이나 암보험 정도라도 넣을라치면 빠듯하다.
왜 그럴까? 전부터 궁금했던 터라 아픈 곳 찌르는 것 같지만 내친김에 물어 보았다.
“빚만 없으면 좋겠어요.”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러하단다.
그 빚의 한가운데는 98년 IMF와 정리해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친지, 동료들에게 부탁을 받아 서너개씩 연대보증을 서고 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IMF 당시 곳곳에서 부도가 나고 무너지면서 그나마 직장생활을 하며 연대보증을 선 이들에게 고스란이 그 여파가 돌아왔다.
적금 깨서 이자도 갚고 원금도 갚고 그렇게 그 빚을 지금까지 떠안고 있다. 아내는 노후에 어떡하려고 하냐며 뜯어 말리고 있지만 그는 “빚없이 살려면 퇴직금 중도정산 한번 더할까” 고민 중이다.
본인이 어찌어찌하다 진 빚이면 몰라도 이렇게 보증서서 떠안은 형제·친척·친구 빚 청산하면 15년 세월이 다 사라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하고 싶단다. 정신없이 달려와도 제자리 걸음인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도 그는 98년 정리해고 소용돌이를 무난하게 넘긴 편이다.
당시 옆자리의 동료가 자리를 떠나게 되었을 때 정말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는 계속 다니지 않겠나.”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한 곳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에서 강제로 밀려나고 무급휴직에 정리해고가 벌어졌다.
지금은 마치 그 아픔도 봉합된 양 보이지만 98년이 가져다 준 정신적 충격은 말로 다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평생직장이 아니다. 내가 다니고 싶어도 언제 어떻게 거리로 밀려나갈지 모른다는 중압감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는 같은 반원끼리 유대관계도 좋았는데 요즘은 개인주의라 해야 하나, 현장분위기도 달라졌다. 98년 이후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기·친구들마저 사라진 것 같아 서글프다. 다들 일이 많이 늘어나고 몸이 피곤해 짜증을 많이 내기도 하지만 이렇게 현장의 분위기가 삭막해 진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리라.
과로사로 동료들이 쓰러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주5일 근무가 실시된다고 해도 전혀 피부에 다가오지 않는다. 전이나 지금이나 일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어찌 보면 특근하나 더 생겨 일만 더 늘어난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15년차인 그는 연봉이 4천만원을 간신히 웃돈다. 그나마도 잔업하고 한달에 1~2개 정도 특근을 해야 그렇다. 특근을 더 많이 하는 동료들은 그보다 몇 백만원 더 웃돌기도 하지만 그만큼 몸은 망가지고 있을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몸이 축나면 영원히 문제가 아닌가? 몸이 가 버리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 그는 일요일만큼은 반드시 쉬려고 한다.
이제 40대인데 벌써부터 몸은 이곳저곳에서 아프다고 난리다. 자동차 업종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병임이 밝혀져 산재로라도 인정받게 되어 다행이지만 어디 몸이 건강한 것에 비할 수 있겠나.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산재로 인정받든 아니든 크고 작은 근골격계 환자들일 것이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거창하지 않다. 어찌 보면 너무도 소박하다.
병들지 않을 만큼 일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여가생활도 즐기며 단란한 한때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지금처럼 큰 말썽 없이 잘 커주기만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꿈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지 절감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쳐다봐도 예전 같은 신뢰가 솟아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믿을 구석이라곤 나 자신뿐인 것 같은데.......
이제 40대에 접어들었건만 고된 노동으로 구겨진 몸이 말하는 인생 나이는 위태하기만 하다.
“미래가 안보이네.” 내뱉는 외마디 말속에 그의 고뇌가 짙게 묻어난다.
쳇바퀴 인생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늘상 제자리 걸음이고, 새 출발을 하고 싶어도 길이 보이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힘든 지점인가 보다. 월급에서 꼬박꼬박 국민연금은 떼 가지만 그마저 미지수 아닌가? 노후 설계를 해보려 해도 머리만 아플 뿐이다.
오늘도 그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그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공장을 향한 발걸음 속에 아픈 머리를 싸 메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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