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스노우보드연구소 - X스포츠의 대표 '스노우보드'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 산업화 초기 우리는 어떤 스포츠에 열광했는가. 아마도 김일, 천규덕의 레슬링과 홍수환, 장정구의 권투쯤 될 것이다. 먹고 살만해질 때쯤 우리는 어떤 스포츠에 열광했는가. 축구, 야구, 농구라 하면 아마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회규모가 커지니 팀스포츠가 활성화되고 프로구단도 생겼다. 그러니까 그 초반은 개인스포츠가, 그 후반부는 팀스포츠가 주도했다는 얘기다. 시대적 구분은 이쯤에서 됐고, 그럼 공통점은? 노골적 승부를 전제로 하는 관람스포츠였다. 또 국가가 주도했고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신파극조의 드라마였다. 그게 아니면 하다못해 애향심이라도 끼워 넣어야 뭐가 되도 되었었다.
당시 사회가 분화되고 이웃도 모르고 사는 지경이 되었다고들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파트의 칸막이 속에 서로 격리되어 자기만의 비밀스런 일상을 산 것 같았지만 사실은 모두가 똑 같은 것을 보고,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살았다. 바로 텔레비전이라 불리는 바보상자의 위력이었다. 지금도 공장 안에서나 공장 밖에서나 우리의 하루하루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판에 박힌 일상의 연속이다. 사회는 다양화되었지만 일상생활은 오히려 단순해진 것이다. 이처럼 단순하고 일률적일 수 있을까.
‘극한 스포츠’라 번역되는 X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몇십만, 몇백만의 동호인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우선 가장 당연한(?) 특징은 ‘보는’스포츠 아닌 ‘하는’스포츠라는 점이다. 사회참여, 자원봉사가 늘어나는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 스포츠에서도 이제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 못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또 모두 (다시!?) 개인스포츠라는 점이다. 아무리 축구가 좋다 해도 열한명 두팀을 끌어 모으려는 것처럼 아둔한 짓이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X스포츠 즐기는 이들이 바라는 바도 언뜻 보인다. 회색빛 도시에 갇힌 현대인들이 자연과 벗하려는 욕구는 그 중 기본이 될 것이다. 또 X스포츠는 젊은층이 그 흐름을 이끌고 있긴 하지만 나이 먹은 이들도 그들의 젊음(?. 또는 남성성?)을 유지하고 과시하기 위해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골프는 ‘노인네’나 즐기는, 폼만 잡는 스포츠일 뿐이다.
그러나 X스포츠는 이 시대의 사회변화를 보다 절묘하게 반영하고 상징한다. 우선 새로운 정체성의 등장이다. 과거 우리는 국가, 기업, 가정 등 전통적이고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조직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후기산업사회의 우리는 개인주의 내지는 (특히 인터넷문화가 조장하는) 끼리끼리문화에 근거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여기서 차별화와 구별에 대한 욕구는 양념이다. 새로운 ‘나,’ 즉 부모와 다른 ‘나,’ 과거의 나와 다른 ‘나,’ 너와 다른 ‘나’를 추구하면서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구별짓는 것이다.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파편화된 소규모집단들이 생성되면서 다양성의 사회, 다차원적 일상을 만들어 나간다. 사실 남자와 여자, 아니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만 존재하던 사회가 어느새 청소년, 아줌마, 미시, 실버, 전문인, 커리어우먼, 386, 2030, X, 엄지 등 별의별 집단과 세대가 공존하는 사회로 전환되었다. 그 덕에 럭키치약 하나가 온 국민을 상대하던 시대에서 영문 모를 무수한 치약들을 놓고 요리 보고 조리 보며 골라야 하는 시대로 옮겨온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자기계발에 근거한 새로운 유형의 성취감이다. 과거엔 학생은 학업성적으로, 직장인은 회사에 대한 충성스러운 헌신으로 성취감을 맛보았다. 가정에서는 커져가는 집 평수나 남편의 승진이 성취감을 대신했다. 그러나 지금 사회구성원들이 소망하는 성취감은 소속된 조직에서의 충성도나 다른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닌, 자기계발을 통해 얻는 자기만족에 기인한 성취감이다.
사회변동 속 남성들의 고민이 엿보이기도 한다. 사실 존재와 성취에 관한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절박한 문제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남성들의 입지를 끊임없이 축소시켜왔고 또 노동에 있어서 남녀간의 차이가 모호해지면서 (특히 육체적 힘의 의미가 쇠퇴하면서) ‘남성됨’은 그 권위를 잃게 된다. ‘고개 숙인 남성,’ ‘어깨 쳐진 가장’들이 그들의 남성성을 과시할 수 있는 창구로 극한스포츠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정체성과 만족감을 현실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소비이다. X스포츠가 요구하는 장비와 X스포츠의 이미지는 때로 한가로울 수 있는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의 증명이다. 이런 X스포츠는 물질주의 세태를 반영하기도 하고 또 그 포스트모던한 이미지는 소비를 조장하는 광고에 차용되기도 한다. 결국 X스포츠의 영역은 단순히 장비제조업체와 여행사 뿐 아니라 자본과 기업과 미디어가 개입하면서 소비지향 문화산업의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내 훗날 쪽박 차는 한이 있더라도 내 오늘 신용카드(‘빚카드’를 지구인들은 이렇게 부른다 한다)를 휘둘러야겠다는, 그런 세상이 온 것이다. 저축은 무슨~!
나의 생각에 몇 명이나 동의할지 모르겠다. 지난번 인라인스케이트라는, 어찌 보면 X스포츠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글을 썼었는데 이를 두고 ‘글지랄’이라 평하시는 분들이 하늘의 별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사실 X스포츠를 두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려는 노력이 한편으로 우습기도 하다. 어찌 내가 그분들의 열길 맘속, 쾌감의 지형을 그려내겠는가. X스포츠란 과거 우리 삶의 근간이었던 규칙과 규율을 배제한 무규칙, 무정형의 새로운 문화형태이기 때문이다.
정희준 /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chunghj@daunet.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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