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통신] 오만한 미군

이 글(오만한 미국)은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IPT) 일원으로 유일하게 이라크 현지에 남아있는 이동화씨가 한국에 보내온 9월 21일자 '일지'이다. 이동화씨는 이라크 바그다드 내 뉴바그다드 지역에 위치한 '알 마시텔 헬스센터(보건소)' 내에 있는 어린이 공부방과 놀이

△공부방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동화씨(가운데 뒤쪽) [이라크반전평화팀]

오전과 오후는 살람과 함께 알 후리야 지역 식량지원 사업에 관한 전체 점검시간을 가졌다. 한 주간의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보안하고,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그들과 접촉을 할지를 정하였다.

오후에 놀이방으로 갔다. 새롭게 바뀌어 가고 있는 알 마시텔 헬스센터(이제는 제법 병원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어요.)를 지나서 놀이방으로 향했다. 미군 트럭 두 대가 놀이방 축구장 한쪽 구석에 있었다. 눈에 확 거슬렸다. 꽤나 크게 보이는 기관총 총구는 놀이방 쪽으로 향해 있고. 5·6명 정도의 미군이 오뉴월 늘어진 똥개 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거의 두 달 가량 놀이방에서 미군들을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왠 일인지 그들이 자기집 앞 마당처럼 놀이방 축구장 한쪽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었다. 놀이방 수영장 쪽에서 약 5분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사진기를 들고서 그들 곁으로 다가섰다.

두장 정도 사진을 찍고 가장 가깝게 보이는 미군에게 다가가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고, `이곳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니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군은 `너는 누구냐?` 라고 물었고, 나는 `이전에는 한국의 엔지오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자격으로 이곳에 남아있는 한국인이다.`라고 했다. 그는 비교적 미안한듯 `지금 이 곳에서 자신의 팀장(?)이 회의를 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를 기다려야 하고, 이 곳에 주차한 것은 저기 보이는 당 사무실 어떤 사람이 주차하라고 해서 주차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제기랄` 항상 놀이방 바로 옆에 있는 이슬람 종교 정당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어김없이 또 아이들 공간을 무시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에게 `다시 말하지만 이 곳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고, 정당 사무실의 누가 말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사 그들이라도 이 곳,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함부로 주차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저번에 그들이 이 곳에 주차를 했을 때도 내가 항의를 해서 다시는 이 곳, 아이들을 위한 공간, 에 주차하지 못하도록 이야기 했다. 그러니 지금 다른 곳으로 당신들 차량을 이동해주길 바란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근처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미군이 조용히 다가와서, 오분 있으면 회의 끝나고 갈거라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오 분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 분이 지나도 그들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약속한 오 분이 지났다. 지금 바로 차를 이동시켜주길 바란다.`나와 이야기 하던 미군은 난감했던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던지 나를 피했고, 다른 미군이 와서 나에게 비아냥 거리는 듯한 말투로 `우리는 저기 보이는 입구를 지켜야 한다. 지금 이동을 하면 저기 보이는 입구를 지킬 수 없다.`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그러면 적어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피해서 저쪽으로 움직여 달라`고 이야기 했다.


△집 앞에서 환한 미소를 보내는 아이들. 미군의 폭격으로 골조만 남은 집에, 건축 폐자제로 울타리를 치고 천막으로 하늘을 가렸다. 이러한 모습은 바그다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라크반전평화팀]

그 때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던 또 다른 미군이 갑자기 `움직이기를 바란다면 네가 움직여라.`라고 이야기 했고, `네가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를 하느냐? 네가 이 곳 땅 주인이라도 되느냐?`라고 본격적으로 비아냥 거렸다. 바로 옆에 있던 미군이 우스운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면서 뭐라고 지껄였다. 너무도 빨리 이야기 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비웃는 듯한 이야기인 듯 싶었다.

화가 났다. 내 말 밑에 있는 돌맹이를 던지고 싶었다. 내게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했다. 내 옆에는 알라위가 있었는데, 계속 알라위가 `아메리키, 아메리키 셀림, 셀림`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려고 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러니깐 너희들이 이 곳에서 깡패라는 이야기를 듣는거야`, `여기가 너희들 땅이냐?`, `너희들이 있으면 아이들이 싫어해, 그러니깐 빨리 꺼져` 등등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리속에서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말들을 하지 못했다. 그들을 제압할 어떤 것도 나에게는 없었다.

모멸감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화가 난 채로 말 없이 비아냥 거리는 미군과 약 십분간 서로가 말 없이 그렇게 대치 했다. 머리속에 오만 가지 욕이 생각 났고, 내게 어떤 힘이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영어로 된 욕을 퍼 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내 옆에 있는 알라위 머리에 손을 한번 얹으면서 '돌아가자'라는 몸짓를 취했다. 돌아오는 내내 씁쓸했다. 화가 났다. 나를 비아냥 거리는 미군도 싫었지만, 그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얼마 전에 살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이라키(이라크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에 대해서, 무력감에 대해서 절실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 곳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을 아주 자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없는 주권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이 곳 이라키에게는...

잠깐 딴 생각이 났다. 아마도 한국의 전투병이 미군을 대체하기 위해서 이 곳에 오면 그들과 똑 같은 오만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한 개인의 성품을 논하기 이전에 이 곳의 상황은 총을 들고 이 땅의 주인인 냥 행동하는 군인들에게 서푼 어치도 안 되는 오만과 거만을 심어준다. 그러한 모습을 일상 속에서 보고 있는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인 이라키에게는 심한 모멸감을 줄 것이고, 그러한 모멸감은 반미의 감정으로 변화될 것이다.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대체되었을 때 그들의 반미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반한의 감정으로 옮겨 갈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근처에서 살고 있는 알라위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물어보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저녁 늦게 나를 찾아온 아부알리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셀림(이 곳에서의 내 이름) 굿, 굿`이라고 하면서 조금이라도 미군에게 저항했던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창피했다.

만에 하나 한국 전투병이 이 곳에 파병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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