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추방되느니 법에 의해 처벌받겠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2일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국정원 조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송교수는 '그간 활동에 대한 자성적 성찰'이라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남북을 동시에 사랑하고 동시에 비판하려는 나의 삶과 철학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게 비친 저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는데 대해 심각히 자성한다."면서 "한편 내 스스로 국정원에서 진솔하게 이야기한 것들이 일부 왜곡 보도되고 있기에 양심을 걸고 여러분들 앞에 섰다."며 심정을 밝혔다.

송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첫 북한 방문 때 받았다는 '주체사상교육'과 '노동당입당'은 1970년대 북한을 방문한 방문자들이 거치는 일종의 불가피한 통과의례였으며, 내 삶에서 아무런 의미로 남아있지 않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의혹에 대해 송 교수는 "후보위원을 수락한 바도 없고 활동한 바도 없으며, 북이 후보위원으로 활동할 것을 요구한 적도 없다."며 "통보 받은 바도 없이 사후 인지만 하고 있었던 상황이고, 북이 나에게 정치국원으로 일방적으로 모자를 씌웠던 상황, 아무런 권한을 행사해 보지 않은 조건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명칭에 의미를 둘 수도 없고 동의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이외에도 △공안당국에서 공작금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한국 학술연구원'을 되살리기 위한 경비였고 △일부언론이 말하는 '충성서약문'은 극히 형식적인 축하문이었으며 △95년부터 진행된 '남북해외통일학술대회'는 북의 공작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남쪽의 학술단체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참세상]

송 교수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약 30여분간 기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송 교수와 기자들 사이에 오고간 질의응답 내용이다.

약 15만불의 공작금과 12차례 방북 일정이 있었는데, 김철수로 사후인지 했다면 명시적인 거부를 했는가?

-15만불 이라는 계산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기자회견에서 밝혔다시피 여행경비 등을 합쳐서 2만불 정도다. 또 92년부터 94년 사이에 7-8만불 받은 것을 다 합치면 10만불 정도인데, 그 액수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남쪽부탁으로 학술교류를 위해 학회를 치루는데 쉽게 학회가 안 됐다. 정치국 후보위원이 학술대회 하나 성사시킬 힘도 없을 정도로, 사실로 느껴지지 않는 직책이다. 북에 가서 당간부들이 양담배 피우는 것 등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체제를 비판하며 거리를 두었다. 경계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려 했다. 그러나 거대한 국가체제에서 한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컸다.

한국행을 결정할 당시 국민들의 반응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가?

-그 동안 정말 오고는 싶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남북화해를 위해서 균형감각이 깨진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마음속의 욕구가 컸다. 40년 가까이 있으면서 남쪽의 추상적인 부분만 알았다. 가령 이번에 와서 교통지옥이라는 것을 처음 보고 느꼈다. 언젠가는 우리민족 사이에서 상생의 발상을 전환하기 위해, 체포 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조사에 나섰다.

황석영씨 인터뷰에서 한국에 남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향후 계획은?

-40년 가까이 외국 생활하면서 가르치는 게 내 직업이다 보니, 후학도 가르치는 그런 구상도 했으나 지금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강단에 서고 싶다.

황장엽 전비서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김철수라는 부분에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오늘 자료를 내 놓으면서 해명할 부분과 사죄할 부분을 사죄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을 사죄하겠다는 것인가?

-98년 10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계속 된 소송사건을 양측이 왔다갔다하면서 소송했다. 내가 실질적인 의미에서 정치국원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권력의 핵심에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민사를 진행했다.

무엇을 사죄할 것인지는 나도 실제로 잘모르겠다. 해당기관에서 법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다. 제일 상상하기 싫은 것은 추방당하는 것이다. 37년만에 추방당하기 위해 이 땅을 밟았겠는가? 법을 따르겠다. 37년만에 이땅을 밟고 이 땅에 속해 보려고 하는데, 추방되는 것 보다는 법에 의해 처벌받고 이 땅에서 활동하고 싶다.

이미 노동당 가입으로 볼 때 북한 체제를 선택한 것 아닌가, 경계인이라 볼 수 없지 않는가?

-경계인이라는 것은 호주에 사는 원주민과 백인 이주자 사이에서 언어를 소통해 주었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남북의 선택을 떠나서 경계인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남쪽사회를 모르고 경계인이 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37년만에 찾았다.

국정원이나 청와대 등과 사전교감이 있었는가?

-40년 걸쳐서 사전 교감이 있었겠는가. 개인적으로 가족이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같이 움직이기가 힘들어 이번 한 달이 마지막 기회라서 온 가족이 이곳에 왔다. 내가 가고싶고 느끼고 싶은 집념으로, 인터넷으로 알고 있었지만 삶들을 보기 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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