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정책, 문화재단



‘서울’은 그 자체로 개발독재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던 그 때부터 몇 번의 국제스포츠대회를 유치하고, 동양 ○위, 세계 ○위의 빌딩을 짓던 때의 상처와 기억을 안고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그런데 불과 30여년 만에 몇 번의 ‘기적’을 거치다보니, 서울의 모습과 그 속에서의 삶은 급속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변화’는 - 변화라기보다는 ‘부작용’은 - 근본적으로 민중들의 삶의 질 하락을 동반한 것이었다. 아파트와 빌딩, 다리가 무너졌고, 큰 대회 때마다 판자촌은 부서졌다. 녹지는 점차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인구의 천만의 대도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세계의 도시들과 경쟁하는 국제적인 도시 서울의 ‘그림자’는 깊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면, 행정수도 이전, 용산미군기지 이전, 청계천 복원, 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의 광장 조성 등 최근 제기되고 있는 몇몇의 사업은, 늦었지만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시작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사업별로 논란도 많지만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문화, 생태, 인권 등 인간의 삶에 천착하여 공간을 사고하고 재구조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앞서 언급한 공간적인 문제와 함께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여건의 성숙, 여가시간의 증대, 여가활용에 대한 관심 증대 등 주․객관적인 조건의 변화는, 그 동안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삶을 구성했던 사람들에게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문화정책의 수립과 시행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데, 특히 ‘서울’의 경우 그 규모와 효과의 측면에서, 다른 지자체로의 파급의 측면에서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서울 문화재단의 출발은, 이런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정된 재원 확보와 운용,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정책의 시행은, 다가오는 ‘문화의 세기’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문화재단을 둘러싸고 안팎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불안하기만한데,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와 시민의 참여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구성 초기단계인 만큼,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문화정책, 그리고 서울 문화재단이 수행해야 할 문화정책의 방향은 어떤 것일까? ‘문화 공공성 확대와 문화복지 향상’이라는 기본 방향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서울 문화재단의 경우, 단순히 ‘기금 나눠주기식’의 방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 공공성 확대와 문화복지 향상’의 정책방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말하자면, “돈 없이도 문화활동 할 수 있는”, “늙어서도 문화활동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자는 말이다. ‘20대 80의 사회’, ‘신자유주의의 시대’에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화정책의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 즉 ‘문화적 권리’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에 해당한다는 전제를 가진다. 또한 이러한 방향 수립은 정치, 경제, 문화영역을 넘나드는 고민과 구체적인 정책까지를 포함하는 실천적인 대안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문화 공공성 확대와 문화복지 향상’의 기본방향에서 제기되는 정책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공 문화인프라의 확대가 필요하다. 공원, 광장, 문화기반시설(박물관, 도서관, 문화의 집 등) 등의 절대숫자의 확대는 국민들의 문화활동 참여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어느 집이건 ‘OO공원 옆’이라 설명할 수 있다는 영국의 예와 직접 비교는 무리겠지만, 여가시간이 나더라도 가까운 거리에 문화활동을 향유할 공간이 있어야만 문화활동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하드웨어의 확충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즉 운영프로그램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시설은 있느니만 못할 것이다. 문화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에 지원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둘째, 정규교육과정 및 공공문화기반시설 등에서의 문화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 특히 대다수 국민들의 문화활동 증진을 위해서는 정규교육과정에서의 문화교육 실시가 매우 중요하다. 창의성과 자발성,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문화교육의 실시는,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극복할 수 있는 공교육 개혁방안임과 동시에 졸업한 이후 사회에서도 문화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셋째, 소외계층 문화활동 지원 또한 시급하게 확대되어야 한다. 당장에 경제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성․청소년․저소득층․노령층 등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공적 영역에서의 문화활동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분배주의에 근거한 시혜적 차원의 정책이라기보다는,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임을 인식하고 현실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다.

서울 문화재단의 출범이, 새로운 문화정책의 수립과 시행의 ‘첫단추’가 되길 바란다.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 ptrev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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