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세계문화NGO총회(INCD, International Network for Cultural Diversity)’ 회의는 ‘세계문화부장관회의(INCP, International Network on Cultural Policy)’ 직전에 열리는 문화NGO, 예술가들의 회의입니다. 오는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크로아티아 오파티야에서 열리는 INCD 4차 연례회의에서는 문화다양성 증진에 대한 시민사회, 정부, 무역기구 간의 입장을 논의하고, ‘문화협약’의 체결을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입니다. 이번 INCD 4차 연례회의에는 한국에서도 20여명의 참가단을 구성하여 참가할 예정입니다.
“합의 없는 쪽이 나쁜 합의보다 낫다” - 월든 벨로
WTO 5차 각료회의는 결국 합의문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결렬되었다. 농업협상과 싱가포르 이슈를 둘러싼 WTO 회원국 간의 갈등은 끝내 조정되지 못한 것이다. 5차 WTO 각료회의의 결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WTO 개방정책을 추진하는 각 국의 이해관계가 조정되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적극적인 개방을 주장하는 선진국 내부에서조차 문화, 의료, 교육 등의 영역을 무역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는 EU와 이를 시장논리로 취급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각료회의 결렬의 주된 이슈였던 ‘싱가포르 이슈’의 경우, 단기성 투기자본도 투자로 규정하고 보호하려는 선진국들의 주장에 대해 개도국들이 끝내 반대하면서 결국 협상 결렬에까지 이른 것이 현실이다.
한편, 갑작스럽게 접한 한 농민운동가의 죽음은 칸쿤 현지에 갔던 한국투쟁단은 물론 한국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경해 열사의 죽음은, WTO 5차 각료회의의 결렬에 기여했음은 물론 WTO 협상이 전 세계 민중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전 세계 반세계화 운동진영에 큰 자극이 되었다.
지금, 반세계화 진영에 있어 시애틀에 이은 칸쿤에서의 ‘승리’는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5차 각료회담이 결렬되기 무섭게 각 국은 양자간 BIT, FTA 체결과 지역블럭화(FTAA, ASEAN+3,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게다가 2004년 협상 완료를 예고하고 있는 서비스협상의 경우, 에너지, 철도, 교육, 의료, 문화 등 국가기간산업과 사회공공영역에 대한 개방을 다루고 있다. 한국의 경우 FTA 체결과 자유무역지대 형성의 필요성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여론조성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자유구역에 외국학교 설립 및 내국인 입학허용을 포함하는 관련법 개정을 시도하는 등 이미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WTO, 이제 문화영역에서의 싸움을 준비하자
WTO를 필두로 하는 무역협정에서의 시장개방이 문화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차례 강조되어 왔다. 이제는 문화영역에서도 본격적으로 저항을 조직하고 싸움을 시작할 때이다. 2004년은 서비스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해이다. 서비스협상에서 다루어지는 문화란, ‘상품으로서의 문화’, ‘이윤창출의 수단으로서의 문화’일 뿐이다. 서비스협상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의 최선두에 문화영역에 자리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서비스협상의 위험성’과 ‘문화적 예외의 필요성’을 적극 알려낼 필요가 있다. WTO 서비스협상은 커뮤니케이션, 건설, 유통, 교육, 환경, 보건/사회, 금융, 관광, 운송 등 12개 분야의 시장개방에 관한 협상이다. WTO 서비스협상은 의료, 교육, 에너지 등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할 영역의 개방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미치는 위험이 크다. 문화영역의 경우, 무분별한 문화시장 개방은 결국 문화다양성과 정체성을 파괴할 것이다. ‘문화’는 WTO 서비스협상에서 다루어지듯 '상품'이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집단들과 개인들의 가치의 총체이자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는 서비스협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화영역의 개방 문제는 무분별한 문화시장 개방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사회가 자신의 고유문화를 보존, 발전시키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문화교류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최근 국제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화협약’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문화부장관회의(INCP)’나 유네스코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문화협약’은 문화다양성 수호를 위한 각 국 고유의 정책을 지지하고, 문화가 무역의 대상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다. ‘문화협약’이 유네스코 차원에서 결의된다면, 문화영역은 WTO의 무역체제 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의 문화부가 ‘세계문화부장관회의’에 가입하고,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협약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문화다양성 수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창동 문화부장관이 이번 INCP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채 문화부에서 실무단만 파견할 계획이고, ‘문화협약’의 체결 흐름과 무관하게 교육개방이나 양자간 무역협정 체결 시도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문화협약’ 체결의 흐름에 한국 정부가 적극 동참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문화공공성 개념의 확대와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대의 확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적극적인 대안 모색의 과정이기도 하다. ‘문화’는 그동안 사적 영역, 소비의 영역으로만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문화적 삶을 살아갈 권리, 즉 ‘자신의 삶을 문화적으로 구성하고 참여할 권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전환하는 이러한 ‘문화권’의 개념은, 결국 ‘문화’가 사회 공공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문화적 산물을 모든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공공성 실현을 통해 사회적 차원에서 문화적 자원을 평등하게 분배하고, 대중들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적 토대를 확대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모색을 통해 시장개방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 의료 등 사회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영역과의 연대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WTO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공동의 저항전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 ptrev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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