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부당해고자, "5년투쟁 법보호없어 목숨이라도"

삼성생명해복투 80여명 '원직복직' 요구 무기한 노숙 단식농성 "억울하고 분합니다. 회사의 잘못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까?"

지난 5년간 해고자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무노조신화'를 자랑하는 삼성재벌을 상대로 싸워온 (주)삼성생명보험 해고자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99년 5월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부근 상공회의소 앞에서 첫 시위를 시작한 지 1천602일째인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을 비롯해 부산·대구·호남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삼성생명 부당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삼성생명해복투) 소속 조합원 80여명은 같은 장소에서 '결사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대부분 기혼여성인 이들이 자식과 남편을 떠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이유는 "부당해고자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지난 5년간 벌인 사측과의 싸움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생명해복투 대외협력국장을 맡고 있는 성희애 씨(호남 대표)는 "지난 IMF금융위기 이후 사측에서 경영악화를 내세워 고참 여사원들 대상으로 퇴직을 강요했다"면서, 출산 휴가 중인 직원의 집에까지 찾아가서 사직을 강요하는 등 사측의 회유와 협박이 극심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단 회사를 살려야 하고, (회사가) 정상화되면 다시 부를 것으로 믿었다"는 성 씨는 사측이 강요한 '합의퇴직'이라는 문구를 사직서에 써야만 했다.

이들은 퇴직 후 삼성재벌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사측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원직복직을 위한 5년간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삼성생명은 IMF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5월 300여명의 노동자들을 '조용히' 퇴직시킨 데 이어, 그 해 9월 "약 3초4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경영체질혁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명목상으로 희망퇴직이지만, 사측이 장기근속이거나 기혼인 여성을 대상으로 퇴직을 종용했고, 퇴직을 신청하기도 전에 이미 명단이 통보되기 시작했다고 삼성생명해복투는 밝혔다. 당시 출산휴가 중이었다는 정 모씨(38)는 "너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2달간의 출산휴가를 받고, 둘째 아이를 낳아 몸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1차 구조조정(98년 5월) 당시 회사에서 6개월간의 유가휴직을 강요했고, (같은 해) 12월부터 회사에 다시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휴직 중에 회사에서 전화로 사표를 내라고 하더군요. 희망퇴직을 거부했더니 회사 사람들이 집에까지 찾아왔습니다. 이전에 승격이 되거나 기혼 여사원들은 대부분 퇴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삼성생명해복투에 따르면 사측은 사직서 작성 표준양식까지 만들고, 사직사유를 '개인사정'이나 '합의퇴직'으로 명시하도록 강요했다. 이로 인해 모두 1천723명(여성 1천200여명)의 삼성생명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謹 삼성재벌 弔' 삼성생명해복투 조합원들은 상복을 입고 출정식을 가졌다.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조]

삼성, 흑자 '생명보험' 구조조정은 경영실패 '자동차' 해결‥비정규직화

그러나 이들의 억울함은 곧 배신감과 분노로 바뀌었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이들을 거리로 내몬 삼성생명이 98년도 결산 결과 956억원의 흑자를 냈다는 사실이 이듬해 4월 밝혀진 것이다.

또한 삼성재벌은 인원감축이 실행되고 두달 후인 98년 12월 삼성자동차 직원들을 비롯해 계열사에서 1천여명의 직원을 전입하고, 이듬해 1월 신규사원을 채용하고 계약직으로 500여명을 다시 채용했다.

이에 대해 삼성생명해복투는 삼성생명이 회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한 것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경영실패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성자동차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비정규직 전환으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성 국장은 "사측은 그만 둔 여사원 중에 일부를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하고, 삼성자동차 직원을 그 자리에 앉혔다."며, 삼성재벌 계열사 직원의 전입이나 신규·계약직 채용으로 모두 1천650명이 '합의퇴직'을 강요당한 이들의 빈자리를 채웠다고 말했다. 성 국장은 삼성재벌의 행태에 치를 떨며 말을 이었다.

"사측은 집회 현장의 가벼운 접촉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명예훼손을 이유로 가압류를 남용했습니다. 해고무효소송은 대법원에서도 기각됐습니다. 사측이 재판비용을 청구하면서 부동산가압류를 신청해, 울산의 한 해고자의 경우 부담금 34만원 때문에 아파트가 경매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우리를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취급합니다."

삼성생명은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이들의 집회·시위에 대해 명예훼손·업무방해·손해배상 등 고소고발과 부동산가압류·급여압류·(사측의) 장기 집회신고로 대응했다. 삼성생명해복투는 일간지에 광고를 내려했으나, 삼성재벌의 압력으로 일부 신문사들이 광고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은 또 2000년 3월과 6월에는 삼성생명 본관과 종로타워(국세청 입주)에 엘살바도르 대사관과 온두라스 대사관을 각각 유치했다. 이로 인해 대사관 부근 100m 이내의 집회·시위를 금지시키는 법규정으로, 이곳에서 노동자들의 집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지난 99년 7월부터 서울·부산·대구·호남지역 해복투에서 제기한 해고무효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져 결국 기각됐다. 이에 대해 성 국장은 "당시 사측으로부터 사직서를 강요받으면서 '개인사정'이나 '합의퇴직'으로 명시했던 것이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삼성생명 주식상장은 삼성일가 배불리기' [참세상]

'무노조신화' 삼성재벌 노조는 있다?

그나마 해고자들이 기댈만한 곳은 노동조합이다. '무노조신화'를 자랑하는 삼성재벌에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있을까. 삼성생명에는 노동조합이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해복투에게 노조는 유명무실하다.

성 국장은 삼성생명노조가 사측의 어용노조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노조가 (해고무효소송과 관련) 법원에서 엉터리로 증언했다"고 주장했다.

정 씨는 "퇴직 이전과 이후의 투쟁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며, 노조가 있어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 씨는 "월급에서 매 500원의 회비를 떼이고, 명절에 노조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면서 "회비도 선별적으로 받고, (노조) 대의원도 사측에서 선발했었다"고 회상했다.

삼성생명해복투는 현재 실업자노조로서는 최초로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동조합 산하 단체로 있다. 역설적이게도 삼성생명노조는 같은 연맹에 기업단위노조로 등록돼 있다.

생명보험산업노조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노조가 협의회 수준의 형태로 연맹에 등록돼 있다"면서 "노조와 해복투가 상반된 관계에 있어, 생보노조로서도 드러내놓고 (해복투를)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삼성그룹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송수근 부의장은 "처음에는 노조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며 "(단위노조에서) 복수노조가 금지돼 있는 상황에서 현 노조가 사측의 방패막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송 부의장은 "더 어이없는 것은 현 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주적인 노조가 없다면 우리는 계속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뽑은 노조가 없다면 영원한 노예밖에 되지 않습니다. 해고자 문제 포기하면 안됩니다. 회사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노조활동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모진 고초를 겪어왔습니다."

삼성생명해복투의 단식농성과 관련, 삼성생명노조 관계자는 회의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거부했다.


△'결사투쟁' 선포식에서 윤진열 삼성해복투 의장의 삭발식이 거행되고 있다.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조]

"법보호도 못받는 이들 목숨 걸 수밖에.."

단식농성 참가자들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사측의 온갖 탄압과 보호받을 수 있는 구석이 눈곱만큼도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말했다.

송 부의장은 "지난 5년간의 싸움에서 사측은 대화할 의지도 없고, 더 이상 지탱할 여력도 없다"면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단식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본사 점거농성과 고공시위도 생각해 보았지만, 대부분 여성인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최후의 방법은 '배 곪는 것' 밖에 없다고 그는 토로했다.

송 부의장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삼성이 근본적인 문제를 집고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 사유로 이들이 퇴사한 것처럼, 법적인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삼성은 철저하게 구조조정을 진행했다"며 "법의 보호마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삼성이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조했다. "노동자의식으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당장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 씨는 "지난 싸움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지쳐있고,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면서 "지역으로 분산돼 있는 힘을 모아, 각오하고 전국에서 올라왔다."며 의지를 다졌다.

9살과 6살, 두 딸을 둔 정 씨는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그동안 이 싸움을 지켜 본 남편은 열심히 싸우고 돌아오라며 응원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상공회의소 앞 보도, 이들이 노숙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곳에 경찰은 차량을 동원,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고 있다. 현재 경찰은 집회신고를 한 이들에게 해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단식농성장인 이곳 한켠에서 이들을 감시하는 경찰들이 식사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서리내린 밤공기와 차가운 길바닥에 몸을 의지한 이들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단식농성 이틀째인 14일 5명의 삼성생명해복투 조합원들이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한 조합원이 병원으로 후송되기 전에 응급조치를 받고 있다. [서울경인사무서비스노조]


△'삼성은 죽었다. 도덕성도 인간성도' [참세상]


△"노동자 인정않는 노조가 노조냐?!" [참세상]


△단식투쟁 1일째 [참세상]


△"우리의 승리를 확신한다!"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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