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가 시작할 무렵 반전단체 '다함께'와 함께 선전전을 마치고 돌아온 이주노동자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명동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이주노동자들은 집회도중에도 기자회견 도중에도 언제나 구호가 적힌 띠자보를 높이 치켜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집회가 끝나고 난 후에도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구호를 음악에 맞춰 부르며 성당입구의 천막주변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 이주노동자들은 그렇게 온몸으로 강제추방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명동성당 농성장에는 한국정부가 자신들을 나가라는 이유를 납득하는 이주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 요구는 3가지다. 노동비자 쟁취, 노동3권 보장, 단속추방 저지시키는 것이다" 한국에서 5년 있었다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나딤(33)씨는 이렇게 말했다. 농성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각오는 어떻냐는 질문에 "마음이 아프다"는 말부터 나온다.
이주노동자들은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잡혀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왜 나가야 하는지 한국정부가 자세히 알려준 적 없다. 여전히 우리가 필요한데 우리가 왜 나가야하는가? 이주 노동자가 한 명도 필요 없다면 할말이 없다. 단지 4년 이상이 되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 "고용 허가제도 만들어서 우리 인생이 흔들린다. 4년 미만 된 친구도 1년 후, 2년 후, 3년 후에는 똑같아 진다. 이것은 정부가 노동자를 속여먹고 새로운 친구들을 더 싸게 쓰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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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왼쪽이 나딤씨 |
이주노동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비록 한국정부가 그들에게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지만 다 알고 있었다. 소위 말해 한국정부는 더 부려먹기 쉽고 값싼 임금을 위해, 더 많은 착취를 위해 4년 이상 된 이주노동자를 전부 쫓아내고 새로 받으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성당의 이주노동자들은 추방의 위기 앞에 숨어 지내기보다는 투쟁을 선택했다. "마음이 좀 힘들어요. 우리는 농성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친구들 어디 숨어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연락 안 되는 친구도 많아요" 이주노동자들은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매일 어느 순간에 잡혀갈지 불안에 떨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투쟁을 선택한 이주노동자들은 많은 노동자들이 더 이상 갈곳이 없을 때 자리를 잡았던 것처럼 똑같은 투쟁을 각오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성당 밖을 나가면 잡힐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성당은 유일한 안식처이며 일종의 해방된 감옥이나 다름없다. 이전 수많은 민주인사들과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몇 평의 자유를 누렸듯이 말이다.
대부분의 농성 투쟁이 그렇듯이 겨울 농성에서 가장 힘든 것은 추위다. 농성 이틀째부터 감기 걸린 사람이 많아졌다. 또한 세수와 샤워의 어려움이 있다. 금요일(21일)까지만 해도 식사는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지금은 그나마 향린 교회에서 음식을 만들어 오고 있다.

샤말타파 - 이주농성투쟁단 단장
"싸우다 지면 잡혀서 추방 될 각오하고 명동성당 들어왔습니다"
슬픈 이야기다. 그들은 이 싸움에 지면 함께 일하고 함께 투쟁하던 친구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각오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잡혀간다는 것은 다시는 한국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회가 끝나고 천막 안에 들어가 샤말 타파(31, 네팔) 농성투쟁단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천막 안에는 30여 개의 침낭과 이불이 어지러이 있었고, 어두운 백열등하나. 이주노동자들의 단촐한 가방들, 천막 프레임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수건들과 '단속추방저지 몸자보' 등이 눈에 띄인다. 그리고 싸늘함이 느껴진다.
그나마 천막은 건설 노동자들이 평평하게 잘 수 있도록 바닦을 튼튼하게 만들어주어 바닦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면했다. 대부분은 한국보다 따뜻한 곳에 왔을 텐 데 입김까지 서리는 텐트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감기와 싸우며 생활하고 있었다.
"이주 조합원들은 싸우다 잡혀서 집에 가도 괜찮다는 심정으로 여기 들어왔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성단 계단에서 잡혀갈 수도 있고, 안에서도 끌려갈 수 있고, 농성이 오래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잡혀서 집에 갈 거라면 투쟁이라도 하다가 가자. 그런 생각 가진 친구들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사수대를 꾸려 이곳을 사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다.

힘든 질문을 던졌다. 투쟁하다 승리하지 못해 질 수도 있는데. 본국으로 추방까지 각오한 그 마음을 물었다.
"누군가 언젠가는 해야할 일입니다. 우리가 이 투쟁을 잘하건 못하건 우리가 주체가 되어 운동을 해야합니다. 우리의 당당한 목소리는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겁니다. 모두 어려운 거 알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이번 투쟁은 이주노동자가 투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직접 나서서 이기든 지든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민주노조 운동으로 가야합니다. 더 이상 상담소 등에 기대기만 하다가는 스스로가 노동자인지, 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기들이 왜 차별 받는지 모르게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운동의 주체로 서야할 때입니다"
샤말 농성단장에게 명동성당 농성은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2002년에는 직접 농성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농성에 돌입한 4명의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켜보고 그 농성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해 왔기 때문이다.
작년 농성투쟁을 선도적으로 진행한 네 명의 이주 노동자중 두 명은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한 명은 지난 10월 26일 비정규 노동자 대회 당시 경찰에 연행되어 현재는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렇게 다 잡혀가거나 한국을 떠난다 해도 샤말 단장과 성당에 농성중인 80여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주체로 나서 투쟁하고,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주노동자운동이 자리잡아 나가야 만 이주 노동자 운동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추방까지 각오하고 투쟁의 주체로 나선 이주노동자들에게 국경을 넘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진보진영의 더 많은 지원이 절실한 때다.
김용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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