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캣' 현상과 소비문화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던 '스노우캣'(snow cat)이란 만화에 나오는 흰 고양이는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논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온종일 채팅과 게임을 즐기다가 심심해지면 벽지 무늬수를 세고, 낮잠자기를 좋아하고 도우넛을 먹는 게 취미이다. 우주 멀리서 친구 삼자고 비행접시 타고 찾아온 외계인을 문전박대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뭉갤 궁리만 하고 있다. 그러나 혼자 논다고 해서 이 흰 고양이를 가엽게 여기면 오산이다. 고양이는 그 누구보다 바쁘게 하루를 지내고, 시간의 무료함마저 재미난 놀이로 즐기기 때문이다. .

혼자 노는 것은 비단 만화 속의 고양이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혼자 노는 것이 유행이다. 하루종일 채팅과 게임을 하고, 지하철에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새벽 늦게까지 텔레비전 채널 속에 산다. 이른바 인터넷 커뮤니티의 새로운 취향을 탄생시킨 "아햏햏" 놀이의 진원지인 "디시인사이드" 사이트에는 '조리퐁'과 '콘텍600'의 알갱이 숫자를 세어 10개씩 분리해 놓고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카펫트에 달린 털세기, 밥알세기, 옥수수 수염세기, 다리에 난 털세기 등 그야말로 무의미한 행동을 편집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이 온라인을 통해 유행하고 있는 중이다.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코너에는 한 개그맨이 혼자놀이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건전지놀이', '시체놀이', '부침개놀이'와 같은 황당하고 썰렁한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친구가 무슨 소용입니까?"라고 시작하는 이 개그맨의 멘트는 '스노우캣'의 흰 고양이처럼 혼자 놀기에 익숙해진 청년세대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취향의 한 트랜드를 함축하고 있어 보인다. 왜 요즘 젊은 세대들은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할까? 그리고 무의미하고 귀찮기조차 한 사소한 일들을 계속해서 반복할까? 오늘 이야기를 해보자.

청년세대들의 혼자놀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외로움, 고독과는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현대사회의 소외"라는 일반적인 공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숨겨진 알리바이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 고독이나 소외는 진지한 개념이 아니며, 그것을 견뎌내기 보다는 즐기고, 종국에는 그것을 몸서리쳐지게 조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혼자놀기는 그런 점에서 탑골공원에서 혼자 하루종일 소일거리를 하는 외로운 노인의 일상과는 분명 다른 감정을 내장하고 있다. 이른바 '나홀로족'들의 혼자놀기는 역설적으로 더 자극적으로 놀고 싶어하는 편집증과, 소외를 조롱하고 희화화하기 위해 '소외' 자체를 놀이의 대상으로 치환하는 강박관념이 도사리고 있다. 혼자놀기는 오히려 나는 혼자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표현행위일 수 있으며, 개인을 획일적으로 집단화하는 것을 혐오하지만 개인의 독특한 취향을 가상의 동의집단에게 투사하려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행위일 수 있다.

물론 혼자놀기 현상이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소외나 고독감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아무것도 안하고 집 안에서만 혼자 가만히 있는 청소년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소위 원천적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무행동' 아이들은 아마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지식의 양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급속한 기술발전에 따른 일상의 편리함이 무기력증이라는 역효과를 낳게 된 탈산업사회의 개인의 소외현상을 보여준다. 혼자놀기가 조직과 집단이 강요하는 복종과 타협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고, 살벌한 경쟁사회가 개인을 끊임없이 나약하게 만들고 그래서 스스로를 자기 안에 가두게 만드는 자폐 증상이란 질병일 수도 있다. 그래서 혼자놀기의 현상은 자본주의적 소외의 대표적인 재앙으로 인식할 법도 하다.

그러나 혼자놀기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소외를 이야기하기에는 그 행동이 너무나 즐겁고 유별나다. 그것은 오히려 인터넷과 모바일 테크놀러지가 가져다 준 축복처럼 보인다. 혼자놀기가 가능한 것은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사이버공간에서는 가능한 모든 오락과 정보를 접할 수 있고, 24시간 방안에 갇혀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하고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사이버 '폐인'들은 방안에서 '콘텍600' 속에 있는 알갱이들을 10개씩 분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장면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행위들을 즐긴다. 모바일 역시 즐겁게 혼자 놀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익한 도구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모바일을 단순히 통화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모바일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게임을 하고, 컬러링음악을 다운로드받고, 영화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복합적인 디지털 미디어이다. 아이들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집에서 하루종일 모바일을 갖고 혼자 즐긴다. 엄지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이른바 "엄지족"은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터넷과 소비사회가 이 혼자놀기의 현상을 야기 시켰다고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서로 취향이 다른 사람과 몸을 맞대고 있기보다는 혼자서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 '나홀로족'들에게는 더 유익할지 모른다. 혼자놀기는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혼자 놀만하니까 노는 것이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 내가 놀고 싶은 모든 것은 인터넷과 모바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자놀기는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라 늘 누군가를 향해있고, 고독한 느낌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그 나름대로 바쁘고 조직적이다. 과거 대책없이 허송세월 하는 백수들의 하루와는 다르게 이들의 일상은 미세한 감각과 행동의 씨줄과 날줄이 얼게 지워져 있다. 그것은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외로움, 혹은 거리 노숙자들의 소외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일종의 풍요롭고 자의식적인 소비행위의 한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혼자놀기가 집단의 배제에 대한 강력한 공포심리를 드러낸다는 생각보다는 소비사회의 또 하나의 놀이현상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낳을 듯싶다. 소비사회는 개인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없다면 이들은 다시 거친 세속의 황야로 놀 건수를 찾아 나올지 모른다. 다만 아직까지는 인터넷과 모바일이 있기에 이들은 행복하게 혼자 놀 수 있다.

혼자놀기는 게임이자 유희이다. 혼자노는 것 자체가 즐거운 데 왜 다른 것을 찾으려 하겠는가? 다만 우려할만한 것이 있다면 이들의 나약한 자기도취 심리가 또 다른 즐거움의 미각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어린 시절에는 몸으로 부딪치고 머리를 맞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영화 <친구>에 등장하는 유호성과 장동건의 끈끈한 우정은 그야말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온몸으로 쌓아온 감정이 깊게 배어있다. 그러나 요즘 10대들의 우정은 인터넷과 모바일이란 정보통신 테크놀러지에 의존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10대들의 우정은 몸과 몸이 만나기보다는 정보와 정보가 만나는 일종의 디지털 게임같아 보인다. 혼자놀기가 단지 폐쇄공포의 심리만을 드러내지 않고, 늘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어한다 해도, 그러한 소통은 자기만족적인 한계를 극복하기가 어렵다.

이른바 "스노우캣" 현상은 디지털 정보사회와 소비문화가 만들어 놓은 몰개성적인 나르시시즘의 한 유형이다. 오프라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혼자노는 것은 바보같아 보이지만, 익명과 가상, 이미지가 지배하는 온라인 정보소비사회에서 혼자노는 것은 '쿨'해 보인다. 그러나 어릴 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하고 냇가에서 멱을 감던 시절이 더 좋았을 수 있다. 그 시절이 다시 올 순 없지만, 그 흔적만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놀기가 익명의 동일집단을 향하고 있긴 하지만, 익명의 집단을 현실세계로 호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또한 테크놀러지의 지나친 의존 때문에 더욱 물신화될 수 있다. 그러니 혼자놀기가 같이놀기의 '정'을 배우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다.


이동연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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