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 : 부안반핵대책위 홈페이지(http://www.nonukebuan.or.kr)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 ...”
하지만 현실과 헌법은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전경차, 방송차에 막힌 시위대, ‘1001 1002’로 대표되는 경찰의 폭력진압과 경찰서에서 대신 내주는 집회신고문제는 헌법의 한 줄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집회, 시위의 권리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찬밥’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뿐인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교통을 방해하고 보행을 가로막는다고 눈총받기 십상이고, 모인 사람들이 모두 빨갱이로 몰리기도 한다. 헌법이 무시당하는 나라다.
정부, 경찰, 보수언론은 어떠한가. 그들의 발언에 집회, 시위의 ‘권리’라는 말은 찾을 수가 없다. 사회불안 조성, 불법폭력시위, 과격 등의 말만 난무할 뿐이다. 시위문화에 대한 기획기사까지 만들기도 한 중앙일보는 11월 19일자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불법 폭력시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때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날로 격렬해지는 집회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제시라 평가할 수 있다. 노동·시민단체의 집회가 과격해지는 것은 폭력시위에 대해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 2003.11.19. 중앙일보
‘집회가 과격해지는 것이 폭력시위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응 때문’이라는 것이 중앙일보식(보수언론 모두라고도 할 수 있다) 논리다. 그들의 눈으로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에 대한 항의․분노’와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마저 무시한 채 추진되고 있는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을 둘러싼 부안 주민들의 자발적 행동’마저도 과격, 폭력시위일 뿐이다.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의무마저 저버린 채, ‘눈만 뜨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집회, 시위의 원인제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하지 않는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국민들(대중들)의 소통과 공적 담론의 형성을 위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과 주장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권리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외교 공관 주변 100m 지역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면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특히 집회의 자유는 집권세력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사를 공동으로 표명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현대사회에서 언론매체에 접근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게 그들의 권익과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는 창구로서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집회의 자유는 소수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본권인 것이다. 소수가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장될 때, 다수결에 의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보다 정당성을 가지며 다수에 의해 압도당한 소수에 의하여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인 것이다.” - 2003.10.30. 헌법재판소
정부는 계속되는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과격시위에 대해 우려하기 이전에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권으로서 집회․시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노력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집회와 시위의 문제점을 논하기 이전에 ‘집회와 시위의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최준영 / 문화연대 정책실 ptrev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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