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이날 오후 3시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념식은 연단 배경으로 쓰인, 고일초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벽화('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노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 김창국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마지막 그림조각을 맞추면서 시작됐다.
인권활동가들의 손수건 침묵시위는 김 위원장의 기념사와 각계각층 인사들의 인권선언문 낭독이 끝난 후, 3시 20분경 노 대통령이 축사 말문을 여는 순간부터 벌어졌다.
행사장 좌석 가운데에서 뒤쪽으로 앉아있던 인권운동사랑방, 평화인권연대, 장애인이동권연대 등 소속 인권활동가 15명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근조 인권"이라는 말머리가 쓰인 손수건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손수건 말머리 아래에는 "인권을 짓밟지 말라", "테러방지법 제정 철회하라", "집시법개악 중단하라", "이라크 파병계획 철회하라", "노동인권 보장하라", "부안 경찰폭력 책임자 처벌",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등의 내용이 각각 쓰여 있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인권활동가들의 침묵시위를 의식한 듯 "원고를 만들어왔는데, 이 자리에서 느낌이 많아서 느낌을 말하겠다"면서, 미리 준비한 축사를 대신해 "오늘 이 자리에 오니 실감난다. 그 전보다 조금 자유롭고 개방적인 느낌을 받았다."며 즉석에서 말을 이었다.
"민주주의가 왜 고귀하냐고 물으면 민주주의가 인권을 존중하는 제도이기 때문이고, 민주주의에서만 인권을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민주주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자유가 보장됐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이 됐다."
"인권은 생존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가 첫 번째다. 힘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억압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던 시대에, 부끄러운 시대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워왔다."
인권문제, 정부 아닌 시장 탓?
노 대통령은 축사를 하면서도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의 눈길을 애써 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이날 침묵시위에 대해 "지금도 우리의 인권문제는 계속되고 있다"며 "몇 분들이 제게 호소하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자유를 침해받지 않더라도 경쟁사회에서 경쟁을 방치하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권리 위에 군림하고 약한 사람이 경쟁에서 불리한 여건에 있어, 인권이 존중되고 품위를 지키지 어려운 사회에 국가가 이 문제를 돕고 해결해줘야 인권국가가 되는 것이다. (인권활동가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구경하는 것을 인권국가냐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깊이 새기겠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장은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며 "(정부가) 시장과 항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경쟁에서 분리되고 낙오돼 시장 밖으로 밀리지 않도록 책임져야 하는 것이 국가다. 그러나 시장이 쉽지 않다."고 말해, 현 인권문제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축사가 진행되는 사이 인권활동가들의 침묵시위는 계속됐다. 침묵시위가 시작되자 청와대 경호원들은 이를 제지하기 위해 손수건을 빼앗으며 자리에 앉을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경호원들은 대통령의 축사가 진행되고 있고 참석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 경호원은 인권활동가에게 작은 목소리로 "뒤에서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며, 시위를 그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손수건을 빼앗기지 않은 몇몇 인권활동가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침묵시위를 계속 진행했다.
노 대통령은 이주노동자 단속추방과 관련해 "시장이 그러하지만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도 와있다. 불법체류로 실제로 붙잡혀 가는 사람도 있다."며 "국제질서가 국가단위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 인민들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아 모순과 갈등이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인권중심보다는 국가, 국민중심으로 사고되고 있다."며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 인권문제 해결의지 없다"
또한 노 대통령은 이라크파병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테러방지법안, 최근의 집시법 개정안 등과 관련한 인권위의 반대의견을 의식한 듯 "지도자가 먼저 나서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같이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인권위대로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충돌되는 가치도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얼마전 인권위가 대통령과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지적하며 "세상에 단 하나의 절대적인 가치도 없고 정책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각과 이익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끝내 안될 때에는 투표라든지 표결로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시간을 두고 조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며 "때때로 쓴소리 들을 때면 당장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인권위의 주장과 정부의 주장이 부닥치는 것이 민주주의의 당연한 현상이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18분간의 축사를 마치고 오후 3시 20분경 곧바로 행사장을 나섰다. 이와 동시에 인권활동가들도 침묵시위를 멈췄다.
이날 침묵시위에 참가한 손상열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는 "전국 27개 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반대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안과 집시법 개악안이 인권선언 기념일인 바로 오늘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파병문제, 노동인권, 부안문제 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해결할 의지도 없이 경찰력을 동원해 묵살하고 있다. 인권활동가로서 이에 대한 분노와 실망, 항의의 표시로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인권운동사랑방 범용 상임활동가는 노 대통령의 축사에 대해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일축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인권보장에 대한 더욱 철저한 의지를 밝히기 보다 정부가 어려움에 있으니 이해해달라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침묵시위를 마치고 행사장을 나서는 인권활동가들을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막아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인권활동가들은 "행사장을 나가지 못하게 막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으나, 이들은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세종문화회관 입구 계단까지 쫓아온 이들과 이에 거세게 항의하는 인권활동가들 사이에 한때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세종문화회관 입구 계단까지 쫓아와 한 인권활동가를 붙잡고 있다.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진 후, 인권활동가들의 거센 항의를 받자 이들은 행사장 안으로 되돌아갔다.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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