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전기 끊긴 상도2동 골리앗, 인권도 깜깜

갈곳 없는 주민들 골리앗 속에서 희망 일궈 사제총 논란에 "우리 주거권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 하겠습니까?"

*상도동 골리앗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참세상]


▲골리앗 안에는 재환(2살)재성(3살) 지연(4살)이 세아이가 있다. 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0만원에 상도2동에서 살아왔다. 아버지 김모씨는 갈데가 없어 골리앗에서 임대아파트 쟁취를 위해 싸우는 길밖에 없다고 밝혔다


불빛 없는 그 어두운 공간. 그리고 철거민
지난 12일 언덕배기 위에 외로이 서있는 상도2동 철거민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골리앗 앞에서 전국민중연대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소속 의사와 간호사들이 상도2동 철거민들의 건강 상태를 보러 어렵사리 망루로 들어갔다. 지원물품을 들고 들어가려던 의료 지원단들은 망루에 도착하기도 전에 경찰에 의해 제지를 받았지만 기자들이 많아서 지원 물품을 들고 골리앗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후 5시경 굳게 잠긴 철대문을 지나 전기가 끊긴 어둡고 좁은 계단을 통해 그 조그만 공동체 안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모든 창문을 철제로 막은 상태에서 단수까지 되어있어 골리앗 안은 퀴퀴한 냄새와 탁한 공기가 사람을 먼저 맞이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골리앗 안은 촛불 몇 개로 철거민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휘 감았다. 철거민들이 기거하는 방안에는 냉기를 막기 위해 이불이 겹겹 깔려 있고 아이들은 전부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철거민들은 대부분 감기에 걸렸다. 단전단수 후 가전제품이나 전기난로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찬바람에 이부자리를 두껍게 깔고 자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은 냉기가 스며들어 견디기 힘든 지경이다. 단전 단수가 진행된 컴컴한 망루 속 철거민들에게 인권이란 도무지 없어 보인다.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간 이유
"애초부터 서민들과 세입자들은 무조건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
▲망루위에서 규찰을 서고 있는 철거민
4월10일 주거권 관련 법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철연 사무실을 찾아가 철대위를 구성했습니다" 김영재 철대위 위원장은 그렇게 상도2동 철대위가 구성된 과정을 밝혔다. 그러나 철대위 구성 20여일 뒤인 5월3일 용역깡패 30여명과 경찰50여명이 동원되어 철대위 사무실을 강제 철거했다. 그때 한 세입자 부부가 많이 다쳤다. 이렇게 다친 철거민들은 돈이 없어 진료를 재대로 못 받는다. "이때부터 용역반원들은 지역에 상주하며 주민들에게 강제이주를 종용하고 심지어는 부녀자와 여학생에 대한 성희롱도 있었습니다. 그런 무법천지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더 이상 침탈 당하지 말아야 겠다. 두 번 다시 깡패집단에 당하지 말자며 망루를 만들었습니다. 하루하루 강제철거의 위협에 걱정하며 살아왔습니다"

2002년 10월28일 주민들은 현재 망루로 사용하는 건물로 이사하고 건물 아래부터 철판을 돌려 막았다. 그리고 11월 중순부터 망루를 올려야겠다 싶어 회의를 하고 주민들이 힘을 합쳐 직접 밧줄을 가지고 철판을 올려 현재의 골리앗을 만들었다. 망루는 이렇게 건설되었다.

2003년이 되자 철거민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회유도 많았다. 또한 지역에서 강도와 절도, 화재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밤에 규찰을 시작했다. 특히 인근 주변에서 생활 쓰레기를 투기해 동네에 악취가 풍겼다. "올 여름에는 파리모기 때문에 사람 사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동작구청에 민원을 넣으면 생활쓰레기는 안 치우고 망루철거만 요구했다"는 것이 김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리고 7월3일부터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수 백명의 용역과 공권력이 양쪽으로 들이닥쳐 싸운 것만 10여 차례. 각종 언론에 보도되었던 지난 11월28일 철거로 철거민들도 많이 다쳤지만 철거민들은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나갈 수도 없었다.

"대형 크레인에 포크레인 두 대를 앞장세우고 들어 왔어요. 그리고 용역반원들이 앞집 공가에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사는 사람이 있는데 용역이 불을 지른 겁니다. 안쪽부터 타들어 나왔기 때문에 누군가 안에서 지른겁니다. 그런데 불지른 용역깡패는 구속 안하고 죄없는 우리를 잡겠다는 겁니다. 떨어진 컨테이너에서 용역들 구출해서 밥 먹이고 옷까지 줘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인질을 잡아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우리 주거권 때문에 뭐하러 사람을 죽게 하겠습니까. 매스컴의 편파보도는 철거민을 죽이기 위한 겁니다. 하물며 친인척까지 전화해서 우리더러 자수하라고 하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자수합니까? 우리의 가장 큰 권리인 주거권 쟁취를 위해 싸운 거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 죽여서 주거권 쟁취 무슨 의미 있겠는가?
"사제총 논란은 철거민 죽이기 위한 기획시나리오"

김위원장은 경찰이 발표한 사제총에 대해 "철거민에 대한 살인 행각을 정당화하고 편파적으로 철거민을 죽이려는 기획시나리오"라고 일축했다. 곁에 있던 한 철거민은 "우리가 사제총을 구경이나 했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며 "문방구에서 파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삐리탄이 있는데 방패 들고 들어오는 용역에 경고하기 위해 삐-꽝하고 터지는 장난감 화약을 터트렸는데 그걸 사제총이라고 우기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콘테이너에 뚫려 있다는 구멍에 대해서는 "콘테이너로 용역이 실려 오는거 방어할려고 콘테이너 외부를 쇠창 같은 꼬챙이로 찔렀더니 구멍이 났습니다. 또 콘테이너가 떨어지면서 담장에 세워져 있던 아시바 파이프에 찍혀 구멍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당시 처음에 우리는 그 사람들 죽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콘테이너 안으로 화염병 던지고 불을 질렀으면 그들은 전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수용과 영구임대주택과 주거권을 위해서 싸울 뿐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죽여서 주거권을 쟁취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라며 사제총은 구경도 못했다고 밝혔다.

▲김영재위원장


갈곳 없는 주민들 악에 받쳐 골리앗에 남아
김 위원장은 상도동에서 산지 27년 되었다. 대부분 세입자들도 7-10년 이상 거주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보증금 300에 월세 10만원 혹은 200에20, 50에10만원 등의 월세를 살거나 전세로는 500, 600만원짜리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 돈으로는 인근의 전세가 두배 이상 뛰어서 옮길 수도 없다. 애초부터 못 나가는 이유가 있어서 못나가고 골리앗에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일용노동자나 운전, 파출부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고 한다. 노인들은 공공근로를 신청해 살기도 하고 종이를 모아 종이를 팔아서 살아왔다. 골리앗이 서 있던 그 곳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달동네로 촬영하는 그런 곳이라고 한다. 김위원장은 "우리는 다른데 가도 온전히 살수가 없다. 다른데 가도 또 쫓겨 날 수밖에 없다. 천상 돈 없고 빽 없으면 죽으라는 것 밖에 아니다"라며 "그 착실하게 살던 서민들이 이렇게 되었다"며 재개발을 규탄했다.

그래서 이곳 철거민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다. 나이 50이 넘은 김위원장도 희생을 각오하고 골리앗에 들어왔다고 한다. 특공대도 겁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10여 차례가 넘는 강제 철거로 인해 이미 악이 받칠 대로 받쳐 있다. 골리앗의 주민들 전체가 죽기 살기다.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김위원장은 "내가 싸워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 차원의 법령개정이 있고 모든 철거민들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면 내가 안고 가겠다"며 "이 동절기에 특공대를 투입하겠다는 것은 우리를 학살하겠다는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위원장은 자신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철거민들에게 희망이 생기고 임대아파트 쟁취의 선례가 된다면 이 싸움은 큰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대화거부 속에 철거민들 인권은 무시
이 지역의 토지는 지덕사(양녕대군 문중)토지와 개인소유의 토지로 구분 되어있었다, 이중 지덕사 토지의 가옥 소유주들은 지상권만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개인소유의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물론 세입자들의 입장도 달랐다. 재개발이 시작된다는 소식과 함께 뒤숭숭한 가운데 토지매입이 시작되었으나 토지매입에서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가옥주들에게 1,200만원을 이주비 명목으로 주며 "세입자들은 알아서 하라"는 조건으로 준 것이다. 이것은 세입자 문제를 가옥주들에게 떠넘긴 것으로 돈을 받은 가옥주들 중 어느 누구도 현실에 맞는 이주비를 세입자에게 나누어 준 사람은 없었다.

▲목숨을 건 상도2동 철거민들


지금 상도 2동 지역에는 세입자들이 임대 아파트가 아닌 입주권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철거민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요청하고 정부가 40-60%, 세입자 20%, 시공사 10%의 책임이 있으니 가수용과 임대주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철거민들의 대화요청은 전부 묵살되었고 헛소문만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 철대위 측의 설명이다. 지난 11월2일에도 노량진 경찰서 정보과에서 시공사, 시행사, 경찰, 동작구청과 5자회담을 주선했지만 경찰이 전철연을 차단시키고 전철연 관계자를 오히려 연행하려고 한일도 있었다.

이렇게 싸움이 길어지면서 골리앗속 철거민들의 인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단전단수로 인해 추위와 싸워야 하고 사제총 논란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단전 단수된 골리앗 속 철거민들은 이미 생필품이 떨어져 어린 아기들이 먹을 분유 및 이유식, 생리대, 속옷, 내복, 두꺼운 겨울 옷, 담요 손전등 및 건전지, 식료품, 식수, 의약품, 기타 생활용품을 간절히 넣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이런 물품을 가져다주는 것은 기자들이 많을 때나 가능하다. 동원된 용역반원들은 철거민들을 죽여도 좋다는 주문까지 받은 적이 있어 다시 한번 충돌이 있을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를 상태다. 그러나 추운 겨울 상도동 철거민들은 인권이 사라져 버린 삶의 터전에서 희망을 일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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