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북경 대중문화’체험기(2) -‘신무기’(新舞器)의 탄생과 한류문화


사진 : 2001년 12월 개최되었던 'SM 4대 천왕 콘서트'에 대한 기사가 실린 중국의 한 일간지.


북경에 있은 지 3일째 되던 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북경사무소 대표로부터 왕푸징의 한 호텔에서 ‘신무기’(新舞器)라는 댄스그룹의 데뷔 쇼 케이스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분의 말에 의하면 ‘신무기’는 중국 현지 10대들을 캐스팅해서 한국에 데려와 춤, 노래, 스타일을 가르친 후 다시 중국에 데뷔시킨 최초의 ‘보이밴드’이다. 중국 대중음악시장 진출을 노리는 한국연예산업의 새로운 상품전략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제작한 중국의 댄스그룹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제작발표회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호텔 로비에는 ‘신무기’ 멤버들의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하얀색의 양복을 입고 각기 홍콩 느와르 분위기가 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4명의 스타일을 보니, 흡사 90년대 후반 ‘HOT’나 ‘신화’의 데뷔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브로마이드와 보도자료를 보고 나니 얼핏 이들이 한국의 10대 댄스그룹들을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2%부족한 무엇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텔의 대형 나이트클럽에서 준비된 제작발표회 장 안에는 이미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와 있었고, 100여명의 현지 10대 중국 소녀팬들이 운집해 있었다. 이들의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연이어 백댄서들의 안무와 함께 등장한 4명의 새로운 ‘춤기계’들은 현란한 블레이크 댄스와 ‘비보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10대 소녀팬들은 열광하고 현지 취재진들은 연신 플래쉬를 터뜨리면서, 쇼케이스는 “대박신화”를 예견하는 자리로 바뀌는 듯했다. 이어 4명의 멤버 소개와 인사말이 이어지고, 이들을 제작한 한국의 “우전소프트” 대표와 중국측 음반제작사가 한마디하고, 이들의 뮤직비디오 소개와 함께 쇼케이스는 끝났다.

‘신무기’의 제작발표회를 목격하고, 이들이 탄생되는 과정을 전해들으면서 현재 중국에서 불고 있는 한류문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는데, 내게 가장 흥미로왔던 것은 한 댄스그룹의 제작발표회와 같은 단순한 비즈니스 안에 한류문화, 아니 한류문화산업의 속셈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 중국에서 불고 있는 한류문화는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음반매장을 둘러보고, 현지 잡지들을 뒤적여보고,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음악 프로그램이나 한국 드라마를 보더라도 한국의 대중문화가 중국에서 일으키는 반향은 한국에서 떠들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미약한 수준이다. 물론 한국의 드라마인 “보고 또 보고”가 CCTV 8개 채널 중에서 시청율 상위에 올라있고,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불법복제 DVD를 포함해 총 7천만장이 팔린데다, 웬만한 한국영화는 이미 DVD로 출시되어 있어 한류 자체가 중국 내에서는 문화적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산업적으로 볼 때 과연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한류문화의 진원지 역할을 했던 HOT, NRG, 베이비 복스 류의 댄스음악과 안재욱의 발라드 음악은 음반판매나 공연 면에서 많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경에서 가장 큰 음반매장에 한국 가수들의 음반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 종업원들의 말에 의하면 판매면에서는 그다지 반응을 얻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대만 역시 하나의 중국이라는 인식이 대중화되면서 중국 본토의 음악팬들이나 젊은 세대들은 주로 홍콩이나 대만에서 활동하는 중국출신 뮤지션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한국 대중음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자본주의적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열망과 이른바 J-Pop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의 반사작용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을텐데, 현재 이미 소비자본주의 문화기로 진입하려는 상황에서 적어도 중국에 소개되는 제한된 한국의 대중음악은 그다지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또한 산업적으로 검토해보았을 때 “따오반”(불법복제품)의 천국인 중국에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고, 공연인프라나 메니지먼트의 제약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한류문화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는데, 바로 이 ‘신무기’라는 댄스그룹의 출연이 한류에 대한 문화적 성찰에 있어 역설적인 문제들을 보게 만든다. 정말로 역설적인 것은 신무기 제작에 참여한 ‘우전소프트’의 대표가 한 인사말의 요지와 ‘신무기’가 만들어지는 배경의 요지가 불일치하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주로 한국 가수들의 음반과 공연 프로모팅을 대행해 온 우전소프트의 대표는 신무기 제작발표회 현장 인사말에서 “신무기”가 한국과 중국의 대중문화의 교류에 기여하는 교량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 일종의 의례적인 말일 수 있지만, 현재 한국의 모근 연예산업가들은 한류문화를 이야기할 때면 한중문화교류, 우호증진이란 말을 사용한다. 지난 1월 19일에 있었던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출범식에 모인 문화산업계 인사들이나 정부관료들도 이구동성으로 한중문화교류증진, 우호협력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신무기’의 탄생은 다른 산업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석했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북경사무소 대표의 말에 의하면 “신무기”는 멤버들은 모두 중국인이지만, 이들의 노래와 춤, 스타일은 모두 한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일종의 현지인 복제품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은 6개월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춤과 노래 스타일을 맹훈련받았고, 다시 중국에 돌아와 중국의 보이밴드가 된 것이다. 자본, 제작, 프로모팅은 모두 한국 시스템을 활용하고 몸과 언어만 중국인이 담당하는 방식은 바로 현재 중국적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말하자면 한류 대중음악이 중국에서 이해타산이 맞으려면 중국 현지인들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 한국 댄스그룹들이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고 중국본토에 대한 언어적,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해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10대들을 키워서 댄스그룹을 만들면 경제적으로 절감효과를 가져오고, 정서적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무기의 탄생은 양국문화의 우호증진이 아닌 철저하게 상업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어도 현재 중국에서 존재하는 한류는 문화현상이라기 보다는 산업적 지배의 현상이라 볼 법하다.

또 한가지 역설적인 것은 소위 아이돌 댄스음악으로 환원되는 한류문화가 현재 지배적인 경향이지만, 이것이 경제적인 매리트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신무기”의 수익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수익의 핵심은 음반판매와 공연이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벤트 출연, 방송 출연, 모바일 콘텐츠 수익을 통해 수익 윈도우 효과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신무기”를 보면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위 10대 아이돌 스타들의 “뺑뺑이 신세”와 그들의 “비극적 말로”를 느끼게 만든다. 어쨌든 아이돌 댄스그룹들 중심의 한류는 현재 당면하고 있는 중국의 저작권 문제나 마케팅 문제를 고려해 볼 때, 결코 문화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다만 냉전 이후의 어설픈 화해외교를 위한 문화모병에 불과하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그 것 밖에 없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적 가치도 별로 없을 것같은 상황이 현재 적어도 대중음악 내에서 한류문화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그렇다면 한류문화는 부재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다만 흔적과 효과가 구릴 뿐이다. 한류문화의 지속성을 위해 정부가 하는 지원정책 역시 먼 미래를 보지 못한다. 아이돌 댄스그룹들이 중국에서 인기있다고 하니, 이들을 한류의 옥동자로 추앙하는가하면, 구체적인 현장조사나 장기적인 교류의 전략없이 내심 상업적인 쇼부를 당장에 보려고 안달이다. 현지 중국라디오 방송에서 한국의 대중음악을 독점 방송하는 채널에 공적 자금을 지원하고,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을 만들어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여할 계획을 잡고, 콘텐츠에 대한 물적 토대 없이 한류의 지속을 위해 상해에 한류문화센터를 만들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정부의 조급한 문화산업 정책을 그대로 보여준다. 돈과 상술 이전에 우리가 되물어야할 것이 있다. 과연 한류란 무엇인가? 한류에 담을 콘텐츠는 무엇인가? 도대체 교류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신무기’의 탄생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된 질문이다. 한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동연 /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sangyeun@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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