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다큐멘터리의 방영의 의미


사진 : 인디포럼2003 홈페이지(그 동안 독립다큐는 영화제를 중심으로 유통되어 왔다)



편집자주> 이번 호 포커스는 독립다큐멘터리의 방송 배급에 대한 내용으로 준비되었습니다. 포커스 1과 포커스 2는 독립다큐멘터리에 방송 배급에 대한 김이찬 감독의 글을 '방영의 의미'와 '쟁점'으로 나누어 게재함을 밝힙니다.

다큐멘터리는 ‘문화’로서의 공민권을 획득해야한다.

‘독립 다큐멘터리’는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서 ‘영상문화로서의 공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불과 8년 전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보랏빛 수건>의 제작자들은 그것을 당국에 등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다는 이유로 철창에 갇히기도 했다.
그 무렵 한국사회에서 ’다큐멘터리‘란 TV를 통해서 가끔 공급되는 것이 전부였는데, <동물의 왕국>과 같은 수입된 자연다큐, 혹은 <추적 60분> 등과 같은 르포, <인간시대> 같은 짧은 제작기간의 인물다큐들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 즉 우리사회의 삶과 현실에 대해 오랜 기간 기록하고 이를 동시대의 관객과 나누는 일은, 감히 ‘개인’이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방송사 사람들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뭔가 새로운 시선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어도, 방송사의 제작진들이 잘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독립다큐는 97년경부터 많은 검열 장치를 무시하거나 극복하면서 인권영화제등을 비롯한 ‘영화제’라는 공간에서 제한적으로 상영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은 ‘누군가에게 인기를 끌거나,’ ‘시간에 맞추어 급히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취재원들과 삶을 같이하며 신중하게 편집된 영화들이었다. 이 영화들은 주류 매체들이 외면하던 주제들을 과감히 파고들어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그려내고 있었다.
영화 배급의 양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즉, 시청 관객 수만을 고려한다면 이는 우리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배급의 질적 측면, 즉 다큐멘터리가 관객과 어떻게 만나는가를 놓고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의미 함축하고 있었다. 독립다큐를 상영관에서 관람한 관객들은 처음으로 ‘특정 방송사, 혹은 특정 권력, 혹은 광고주'의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새삼 각성하게 되었다. 또 이를 '영화'의 한 장르로 이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들의 열광적 지지자가 되었다.

그 이후, 독립다큐는 양적으로 성장하고 질적으로 다양해졌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매해 30-50편의 독립다큐멘터리들이 생산되고 있다. 상영기회는 여전히 많지 않고, 관객 수도 적지만, 이제 ‘독립다큐멘터리’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활동임을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이는 영상문화활동의 하나로서 자리 매김이 되고 있지는 않다. 정부의 문화담당부서, 방송사, 영화산업 관계자들도 이를 ‘문화’로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독립다큐멘터리들에 대해선 ‘아마추어 영화’, ‘운동권 영화’, ‘위험한 영화’, ‘화면이 깔끔하지 않은 영화’ 정도로 폄하하여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송사의 편성담당자들은 독립다큐를 ‘고유의 개성을 가진 영상문화콘텐츠’로 바라보고 있지 않는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니 우리 방송사에서 방영하지 않으면 된다’ 는 식이다.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방송사 직원들의 잘못된 ‘독점욕’ 과 ‘배타주의’가 깔려있다. 방송과 전파는 그 방송사 직원들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독립다큐멘터리는 한국의 영상문화활동 중에서 ‘창작정신을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침해받지 않고, 우리시대의 사실들을 작가적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 이다.

철저히 상업적 이해관계에 결박되어 있는 주요 매체들(극장, 민영방송사)은 책임이 없을지 모르나, 정부의 영상문화 담당부처, 공영방송사, 방송위원회 등은 이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가져야할 의무가 있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즐기는 것은 방송시청자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특히 이에 대한 방송관계자들의 인식전환이 중요하다. 현재 방송사들 중에 진정한 의미의 ‘독립적인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방송사가 스스로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의 경우 방송사의 입장(최근까지는 정치권의 입장, 투자자의 입장, 방송사의 수입원인 광고주)으로부터 자유로운 프로그램은 없다. 소위 ‘독립제작사’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이 있긴 있으나, 이 프로그램들은 방송사의 기획방향에 따른 제작 대행의 형태라는 점, 상업적인 주종의 하청관계에서 제작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그리고 작품내용에 대해 방송사 편성팀의 심각한 간섭을 받는다는 점에서 독립된 다큐멘터리라 보기는 힘들다.

결국 단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방송구조 속에서 한반도의 주민들은 유력 방송사들이 저널적 가치관에 따라 제작하거나, 주문 제작하거나, 구매한 다큐멘터리만을 볼 수 있고, 보아야한다. 한국의 영상문화에서 방송사들, 특히 공중파 공영 방송사들이 갖고 있는 막강한 매체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이는 막대한 연봉을 받으며 소속사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방송사 직원들에 의한 심각한 과점이고, 나아가 우리사회의 영상문화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다. 시청자들은 일반시민을 포함한 동시대의 가능한 한 많은 제작자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들을 접할 기회를 가져야한다. 특정 집단의 상업적 이해관계에 결박되어 있지 않고, 주제의식에서, 부당한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롭고자 노력해 온 독립다큐멘터리들이 ‘방영’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매체의 쌍방향성, 공익성, 다양성, 수용자 주권 등이 무엇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방송사들이 변화해 나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7-80년대, 한반도의 주민들은 <대한 뉴스>와 <배달의 기수>를 ‘다큐멘터리’라 생각해야 했다. 90년 대 들어 <동물의 왕국>, <인간시대>, <추적 60분>, <00 스페셜>, ‘VJ 물’ 등으로 유사 프로그램들이 생기긴 했으나, 그러나 이렇게 제작, 방영되는 프로그램들은 방송사가 정한 ‘제한된 표현양식’, ‘제한된 주제의식’만을 따르도록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에겐 이것이 마치 ‘다큐멘터리’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시청자들이 다큐멘터리를 편협하게 이해하도록 한 데는 방송사의 책임이 크다. 이제라도 ‘다큐멘터리’]란 특정 방송사의 계몽프로그램, 혹은 선전물이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누구라도 자유롭게 자기 주변의 사실들을 관찰하고, 표현하며, 논쟁을 벌이고, 교류를 하는 매체임을 말해주어야 한다.

독립다큐의 방영의 의미는 단지 독립다큐 제작자의 배급의 통로가 열린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로운 창작정신에 기반한 독립다큐멘터리가 주류 매체인 ‘방송’에 의해 공인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영상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고,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며, 퍼블릭 액세스 정신의 연장이기도 하고, ‘영화와 방송의 영역을 넘어’ 우리사회 전반의 건강한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여는 또 하나의 계기이기도 하다.

김이찬 /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정책연구팀 eem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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